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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권오철 기자] 바야흐로 정금(政金)유착의 시대다. 2003년 투기자본인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로서 외환은행을 불법 인수한 ‘론스타 사태’에서 당시 청와대와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감사원의 관료들이 비밀회동을 통해 외환은행 경영진 및 론스타와 결탁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7년이 흐른 현재 우리 사회는 과거 정금 유착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라임, 옵티머스펀드 등 정치권이 깊숙이 개입한 금융사태로 진통을 겪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라임, 옵티머스 펀드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는 검찰이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또 복수의 공공기관이 투자한 옵티머스 펀드에 대해 검찰의 수사와 별개로 정부 차원의 조사를 하라고 지시했다. 이들 펀드에 청와대 및 여권 관계자들이 개입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시점이 수개월 전인 것을 고려하면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대통령의 지시를 통해 적극적인 수사가 진행된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사실 문 대통령의 한마디면 웬만한 금융사태는 종결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말을 아끼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금까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금융사태 중에는 키코(KIKO)가 있다. 2008년 등장한 키코는 금융권이 1000개에 달하는 중소기업을 상대로 수조원대 피해를 입힌 금융사고다. 배상은 지금껏 전무한 수준이다. 2013년 대법원이 키코 민사재판에서 판매사인 은행들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진실을 가릴 수 없었다. 키코는 사기성이 너무 농후해 금융 적폐로 불렸으며,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키코에 대해 ‘불완전판매’라고 결론냈다. 이는 금융 전문가들이 키코를 진단한 최초의 결정이다. 과거 대법원 판결은 비전문가들 간의 합의였으며 사법농단의 결과물이었다. 다수 전문가들은 키코가 사기였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키코 배상이 이뤄지지 않은 결정적인 배경에는 산업은행의 배상 거절이 있다. 국책은행이 앞장서서 배상을 거절하는 마당에 다른 시중은행이 배상할 리 만무했다. 산업은행의 수장인 이동걸 회장은 지난 16일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키코는 불완전판매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국감에서 기업들에게 키코를 판매하며 “(키코 옵션의) 가격 정보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격 정보를 밝히지 않은 것은 은행업 감독세칙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상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도 불완전판매가 아니라는 이 회장의 논리는 ‘술을 마시고 운전을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말과 동일하는 지적이 나온다. 이 회장은 진실에 의해 코너에 밀렸고 그곳에서 무의식 중에 진실을 내뱉은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이 최근 서울 중구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열린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출판기념회에서 건배사로 “가자! (민주당의)20년!”을 외쳤다. 이후 그는 “부적절했다”고 사과했으나 그의 정치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란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회장은 산업은행장이기도 하지만 민주당을 지지하는 일원이다. 일각에선 키코와 관련한 그의 인식이 당 차원의 정치적 결정일 수 있다는 의심도 나온다. 이용우 의원이 이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키코 관련 이슈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 지 오래다. 키코의 불완전판매 결정을 이끈 윤석헌 금감원장이 금융권의 사주를 받은 청와대 인사의 압박을 받았다는 의혹도 잊을 수 없다. 이 회장을 비롯한 당정청 관계자들은 키코와 관련된 정금유착에서 자유로운가? 그들은 수많은 키코 피해자와 역사 앞에서 엄숙히 답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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