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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맥의 인기가 하늘 높이 찌르고 있다.

#1 회사원 김창순(44·서울 구로)씨는 자칭 ‘치덕후’(치킨 마니아를 일컫는 인터넷 용어)다. 잦은 술자리에서 안주를 고를 때도 닭을 찾지만 평소 간식으로도 즐길 정도다. 주 2~3회 이상 닭을 먹는데 아예 닭으로 시작해서 닭으로 끝내는 경우도 많다. 김 씨는 “가격 대비 영양가가 높은 닭고기는 맥주 안주나 식사 뿐 아니라 야식으로도 좋고 남녀노소 모두가 선호한다. 요즘 뭐 먹을 때는 치킨이 정답”이라고 엄지손가락을 곧추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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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도 한국치맥의 인기가 뜨겁다. 대만 야시장에는 ‘별그대 치맥’이 등장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

#2 어학연수를 준비 중인 대학생 유진영(23·여)씨는 “처음엔 치킨이 가장 무난해서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먹다보니 이만한 게 없다. 그러니 ‘치느님’(치킨을 높여 부르는 인터넷 용어)이라고 하는 것”이라며 “특정 업체 것을 고집하지 않고 오늘은 바비큐 풍, 내일은 튀긴 것 등 골라먹을 수 있어 각각 다른 스타일 덕에 물리지 않는다”고 치킨의 매력을 강조했다. 유 씨는 “다른 육류나 생선회는 아무리 종류가 달라도 별다른 차이를 못느끼겠다”며 “오직 치킨 만이 여러 맛이 가능한 재료 같다. 이제 미국에 가면 한국식 치킨이 무척 그리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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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치킨 전성시대다. 현재 한국에는 200개에 가까운 치킨전문점 프랜차이즈가 난립하고 있다.

생물학적 특성은 배제하고, 적어도 산업적인 측면에서 현재 치킨은 어떤 가금류보다 높이 날고 있다.

치킨의 인기는 국내에서 한정된 것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까지 날아갔다. 이게 모두 ‘치맥’(치킨과 맥주의 조합)의 인기 덕이다. 스포츠서울 먼데이 이슈추적에선 혼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지만 서로 융합해서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는 대한민국 ‘치맥’의 현주소에 대해 알아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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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치맥은 다양한 조리법의 진화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에 달했다는 평이다.

◇세계 치맥의 수도, 대한민국

맥주를 곁들였다 뿐이지 뭐 새로울 것도 없는 ‘치맥’은 이제 대중과 소비자 속에서 문화가 됐다. 치맥을 테마로 한 축제, ‘치맥 페스티발’이 열리는가 하면 그 축제가 해외로 수출돼 중국에서 문전성시를 이뤘다.

지난 7월 말 대구광역시 두류공원 일대에서 열린 제2회 ‘치맥페스티벌’에는 역대 최대 방문객(약 62만 명)을 기록했다. 축제 현장에선 대구의 대표 치킨 브랜드 부스와 맥주 업체들이 참여해 무료 시음과 다양한 판촉 행사를 펼쳤다.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 맥주 축제인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에 버금갈 정도의 성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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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맥이 해외에 수출됐다. 중국 닝보시에서 열린 치맥페스티벌.

불과 2회 째인데도 벌써 해외로 진출했다.

지난해 치맥축제를 준비했던 주최측은 중국으로 치맥축제를 수출했다. 지난 8일부터 중국 닝보시에서 개최된 ‘치맥페스티벌 인 닝보’(위원장 백윤하)에는 연일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렸다. 개막 3일간 40만명이 몰렸다는 것이 주최측의 설명이다.

축제장에는 한국의 치맥 뿐만 아니라 대구시 관광홍보 부스가 마련됐고, 국내 치킨업체들의 홍보전도 전개됐다. 닝보~대구 간 전세기도 띄웠다. 치맥의 본고장으로 대구를 알리겠다는 의도였다.

현재 치맥은 창업 프랜차이즈 부분에 있어서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치킨과 생맥주 수요 증가로 인해 잠시 주춤했던 치킨 전문점 창업 수요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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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후 3일간 40만명이 찾은 중국 닝보시 치맥페스티벌.

현재 국내 치킨전문점 창업 프랜차이즈 회사는 192개(2014년 3월 기준)에 이른다. 이중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곳은 그중 10%인 약 20여개 업체. 튀기거나 굽는 조리 방식과 소스를 차별화해서 가맹점을 모집 중이다.

한때 300여개에 근접했던 치킨전문점 프랜차이즈가 오히려 줄어든 것은 바로 치맥 열풍 때문이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퇴근·하교 후 치맥을 자주 먹다보니 오히려 ‘동네 형’ 배달전문 업체들은 매출이 줄고 시내 도심과 부심 중심 치맥 집들이 성업 중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케이블TV에서 ‘맛있는 대박’을 진행하는 프랜차이즈 시스템 연구소 윤태식 소장은 “최근 드라마의 영향 덕도 있지만 그보단 한국 치킨은 맛과 품질이 월등해 해외에서 ‘치맥’ 트렌드는 더 많은 인기를 누릴 것”이라며 “해외 진출은 청신호지만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품질보다는 스토리를 덧씌우는 것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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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느님의 권능을 넘을자, 그 누군가. 치맥의 인기가 높자 이에대해 감맥(감자+맥주)과 피맥(피자+맥주)의 도전이 거세다.

◇“치맥 넘겠다”며 피맥, 감맥, 호맥도 출시

상황이 이쯤되니 치킨의 인기가 부러운 건 다른 업계의 공통적인 상황이다. 외식업계에선 맥주와 연관시켜 ‘제 2의 치맥’을 만들기 위해 고심 중이다.

소규모 맥주 체인점에선 ‘감맥’(감자튀김+맥주)을, 피자업계에선 ‘피맥’(피자+맥주)을 띄우기 위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치맥처럼 쉽사리 문화로 정착하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그래서 이들 업계에선 치맥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기도 하고, 칼로리가 높은 프라이드 치킨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피맥에 비해 감맥은 성공적으로 연착륙했다. 치킨에 비해 저렴한 감자튀김과 생맥주를 내세운 것이 바로 감맥인데, 소규모 점포에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젊은 대학생 층을 대상으로 한 ‘스몰비어’(작은 면적의 맥주전문점)로 쏠쏠한 인기를 끌고 있다. 주 고객층이 젊다보니 인테리어나 슬로건도 위트를 곁들이는 등 타깃에 대해 맞춤형 마케팅을 펼치는데 이것이 주효했다는 평이다.

감맥 스몰비어의 원조격으로 꼽히는 봉구비어나 봉쥬비어, 춘자비어, 오봉자비어, 청담동 말자싸롱, 달자비어 등이 대표적인 감맥 체인이다.

평소 치맥의 성공 신화를 눈여겨 보던 특급호텔업계에서도 ‘호맥’(호텔 치맥)을 내세워 직장인들의 회식을 유치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그랜드앰배서더 서울은 여성들에게 인기높은 해피아워 프로그램을 지난해부터 상설로 선보이고 있다. 치킨을 포함해 샐러드, 찹스테이크, 디저트 등 다양한 요리를 2만~3만5000원 대에 제공하면서 생맥주를 무제한 제공한다.

밀레니엄 서울힐튼 호텔 역시 야외에서 생맥주와 치킨 등 바비큐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오크룸의 바비큐 해피아워(4만7000원)로 주변 직장인들의 회식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소공동 롯데호텔 서울도 노천 카페 쿨팝스 프라자에서 2만원 대 ‘치맥세트’(국산맥주 2잔+치킨윙)를 내놓아 인기몰이 중이다.

명동 세종호텔 뷔페&그릴 엘리제 역시 치킨을 포함한 다양한 안주를 무제한 슬러시 맥주와 함께 제공하는 비어플라자를 주중에 운영하고 있다. 2만9000원에 ‘호맥’을 실컷 즐길 수 있다. 명동의 지리적 특성답게 ‘치맥’을 이미 알고 있는 외국인들도 자주 찾아온다는 설명이다.

◇어떻게 치킨은 ‘치느님’이 되었나

왜 하필 치맥인가. 치맥은 이제 외국인들에게 떡볶이나 불고기 등 한식의 한 부분처럼 인식되고 있는 형국이다. 굽거나 튀긴 닭에 곁들이는 생맥주는 과연 우리나라에만 있는 음식일까. ‘이를 한식으로 봐도 될까’ ‘언제 생겨났을까’ 등 여러가지 의문이 생겨난다.

중국에는 양념통닭의 원조 격인 간풍기(乾烹鷄)와 라조기(辣椒鷄), 닭샐러드 유린기(油淋鷄) 등이 있으니 맥주와 함께 마시면 치맥이 되고, 일본에는 가라아게(唐揚げ) 등 닭 튀김을 놓고 ‘나마’(생맥주)를 마시는 문화가 일반적이다.

치맥이란 별안간 생겨난 문화가 아니다. 70년대 영양센터가 등장하며 한국식 치킨문화가 꽃을 피우던 시기. 이때부터 ‘통닭에 맥주’는 있었다. 다만 ‘치맥’이라 따로 이름붙여 부르지 않았을 뿐이다. 80년대 초에도 동네마다 ‘OB베어’ 간판을 건 소규모 비어홀이 있었고, 이후 양념치킨이 등장하며 퇴근길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맥주와 함께 치킨을 즐기는 문화가 생겨났다.

80년대 후반부터 프랜차이즈 치킨집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부터 한국의 치맥은 더욱 발전하게 됐다. 저마다 맥주라는 주류에 딱 어울리는 닭튀김을 개발하다보니 궁합은 더욱 맞아 떨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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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술문화가 소주 중심에서 맥주로 이동하는 가운데 맥주와 궁합이 좋은 치킨이 전성기를 맞고 있다.

가장 핵심은 한국인의 술 문화가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 1차는 고깃집에서 소주, 2차는 맥주 한잔(안주 없이 맥주만 먹던 시절)이 당연한 공식이지만, 고도주(알콜 도수가 높은 술)를 기피하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됨에 따라 맥주의 점유율이 크게 올랐다.

소주가 지난 반세기 동안 차지했던 ‘국민주’의 위상을 이제 맥주가 호시탐탐 위협하고 있는 현실 속, 치맥이 삼겹살을 밀어낼 만큼 급부상하게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맥주를 ‘국민주’로 가장 즐기고 있는 일본에서도 치킨 시장이 상상 외로 거대한 것도 이에 대한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 대표적인 치킨 프랜차이즈 전문업체 굽네치킨의 홍경호 대표는 “치맥은 젊은 세대의 식음 문화 변화로 인해 가장 수혜를 받은 식품”이라며 “아직 한국은 같은 식문화권인 일본보다 치킨 시장 규모가 작다. 치맥 열풍은 국내 치킨 시장 규모를 좀 더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석기자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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