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삼미 감독 시절인 1983년 장명부(왼쪽)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김진영 감독. (스포츠서울 DB)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인천야구의 대부로 불린 김진영 전 감독(삼미, 롯데)이 지난 3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자택에서 숙환으로 영면했다. 향년 85세. 김 전감독은 ‘미스터 인천’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은 SPOTV 김경기 해설위원의 부친이다.

김 전감독은 1935년 인천 승봉도에서 태어나 인천고를 세 차례나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끈 스타 플레이어였다. 고인이 삼미 지휘봉을 잡고 있던 1983년 롯데 감독으로 지략대결을 펼쳤던 박영길(롯데 삼성 태평양 감독) 본지 객원기자는 “투지 하나로 일가를 이루신 분”이라며 “호탕한 성격에 과격할 때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선수들을 사랑한 지도자”라고 돌아봤다. 박 전감독은 “한국전쟁 이후 모든 것이 엉망일 때 고교야구 무대에서 인천 시민들에게 재기 희망을 던진 스타 플레이어였다. 훗날 중앙대, 인하대 감독을 거치면서 대학야구를 중흥시킨 인물”이라고 말했다.

김경기
고(故) 김진영 감독은 태평양, 현대, SK등에서 활약한 김경기 SPOTV해설위원의 부친이다. 1984년 당시 삼미 감독과 인천고 선수였던 부자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포츠서울 DB)

실제로 김 전감독은 육군 경리단과 교통부, 철도청에서 유격수로 활약하며 국가대표 유격수 계보의 시초로 평가받고 있다. 박 전감독은 “공격력은 강하다고 보기 힘들었지만 수비만큼은 발군”이라며 “어떤 어려움에도 물러서지 않는 강한 투지로,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스포츠가 국민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린 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1959년 일본에서 치른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국가대표 유격수로 준우승을 일궜는데, 이 활약이 훗날 실업야구 부흥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고(故) 이종남 전본지 이사가 쓴 ‘인천야구 이야기’에는 ‘실업야구 시절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크게 다쳤는데, 중요한 경기에는 환자복을 입은채 동대문야구장에 와서 유니폼을 갈아입고 대타로 홈런을 치고는 다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병원으로 돌아갔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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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롯데 사령탑 시절 김진영 감독.(스포츠서울 DB)

프로에서는 1983년 삼미 감독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삼미 초대사령탑을 지낸 고(故) 박현식 전감독과 ‘인천 야구의 대부’로 통한 김 전감독은 프로 원년 꼴찌였던 삼미를 전, 후기 2위로 끌어 올리는 등 지도력을 인정 받았다. 1983년 6월 1일 MBC전 도중 심판 판정에 항의하는 과정에 심판진에게 폭력을 행사하다 구속 당했다. 군사정권 시절이라 가능한 얘기였지만, 김 전감독은 100만원 벌금을 내고 약식기소로 풀려났고, 구단이 ‘일시 퇴진’ 징계를 내린 탓에 시즌 끝까지 더그아웃에 들어가지 못했다. 삼미가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 이유다.

1984년 장명부의 부진 등으로 최하위 수모를 겪었고, 1985년에는 18연패 기록을 썼다. 당시 전반기 도중 해임됐다가 삼미가 청보로 바뀐 뒤 복귀했지만 반등에 실패했다. 1990년에는 롯데 감독으로 부임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다. 프로 통산 성적은 121승 8무 186패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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