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강지윤기자] '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웨일북), 줄여서 지대넓얕. 제대로 발음하기도 힘든 이 책은 한동안 사람들을 인문학의 세계로 이끌었다. 역사와 경제부터 과학과 신비까지 채사장(40·채성호)의 간결한 문장을 따라 걷다보면 독립된 영역으로 여겨졌던 각 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공부하는 인문학이 아닌 세상을 보는 데 필요한 인문학, 이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해준 '지대넓얕' 시리즈는 누적 부수 200만 이상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밀리언셀러 반열에 올랐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방송한 동명의 팟캐스트 '지대넓얕'의 인기도 책 만큼이나 뜨거웠다. 장기간 1위를 기록하며 단단한 팬층을 만들었고 책의 초반 판매율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 종료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굵직한 프로그램 사이에서 여전히 순위를 지키는 중이다.


팟캐스트 시즌2를 기다리던 팬들이 기뻐할 만한 소식이 있다. 지난 3월 그가 유튜브 채널 '채사장 유니버스'로 돌아온 것. 일상을 이야기하는 '일상연구'와 팟캐스트 출연자였던 이덕실과 한 해씩을 들여다보는 '늬-우스룸'이 주콘텐츠다. 다른 출연자였던 깡선생과 김도인은 왜 출연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평생 4명이 함께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라며 웃었다.


채사장은 "어떤 목표가 있거나 수익 수단 만들어 보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놀아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유튜브를 시작했다. 올해 초 출간한 '지대넓얕 제로'를 쓴 후 "이 정도면 내가 할 일을 마친 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며 동시에 "내가 구체적인 현실이나 일상 돌보지 않은 채 평생을 살았구나" 싶었다고.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출판사 웨일북 사무실에서 채사장을 만났다. 매 순간을 가치있게 있으려 노력한다는 그의 짧은 순간을 차지할 수 있었다.



Q.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마지막 책 '지대넓얕 제로'가 나온 지 6개월이 되었어요. 책이 나온 후 유튜브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며 놀고 있습니다.


Q. 처음 팟캐스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심심해서였던 것 같아요. 어른이 되면 재미있는 게 별로 없잖아요. 유일하게 재미있는 게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는 건데, 날씨나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 말고 진짜 재미있는 건 자기 내면에 대한 것이나 삶 안에서 배워나갔던 그런 것들 같아요. 그런 걸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Q. 팟캐스트에서 유튜브로 자리를 옮긴 이유는요?


팟캐스트는 당시 가장 핫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노화된 것 같아요. 음성만으로 진행되는 한계도 있었고 예전에는 대중이 영상을 보는 것을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지금은 기술 발전과 함께 영상이 친숙하게 다가왔고요. 그 시대에 가장 적절한 플랫폼을 찾아가다 보니 유튜브까지 오게 되었어요. 만약 다른 플랫폼, 예를 들어 텔레파시를 쓰게 되었다면 그걸 써야겠죠.



Q. 유튜브에서 어떤 콘텐츠를 선보이나요?


'늬우스룸'은 제 욕심 때문에 만들었어요. 우리가 국사나 사회탐구 시간에 근대든 일제강점기든 먼 과거는 배우잖아요. 차라리 옛날은 알겠고 현실은 어른이 되었으니 알겠는데, 30~40년 전 제가 어렸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 역사 안에 있었음에도 들여다보지 못해 답답했어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1990년부터 1년 단위로 주요 뉴스를 다뤄보고 있습니다.


'일상연구'는 제목 그대로 일상에 대해 연구하는 거예요. '지대넓얕 제로'까지를 쓰고나서 내가 인생에서 해야 하는 특정한 역할을 해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나니 내가 구체적인 현실이나 일상을 돌보지 않은 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마음속의 질문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 같아 일상을 보기 시작했고 일상을 이야기하는 콘텐츠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습니다.


Q. 언급하신 특정한 역할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죠?


우리가 중학교 2학년 때 하는 생각들 있지 않습니까? 나는 누구고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 인생에 던져진 목표가 있는가. 사회에 나가는 시점에서 보통 내려놓는 질문들이 제 인생에서 너무 컸어요. 그거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중 '지대넓얕1, 2' 썼고요.

많은 분이 이 책이 지식을 정리한 것으로 생각하시는데 막상 읽어보면 아니에요. 실제로는 마지막 주제인 신비로 수렴되어있거든요. 여기서 말하는 신비는 자아에 대한 문제고요. 독자분들께 그걸 제대로 설명 못한 것 같아 그 부분을 제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지대넓얕 제로'를 쓰게 되었죠. 이번 건 좀 만족스러워요. 표층적인 종교나 철학을 넘어서 심층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는 좋은 안내서가 된 것 같아 이 정도면 내가 할 일을 마친 건 아닌가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Q. 사람들이 '지대넓얕' 시리즈에 열광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티벳 사자의 서'의 서문을 칼 구스타프 융이 쓰는데 첫 번째 단어부터 마지막 단어까지 읽는다고 해서 이 텍스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준비된 사람만이 이 비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해요. 그게 모든 텍스트의 특성 같아요. 우리가 같은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준비를 했는가에 따라 들어가는 정도가 다 다를 거예요.


책도 그렇고 팟캐스트와 유튜브도 그렇고 각자 길어 올리는 것 같아요. 어떤 분은 정보를 긷고 어떤 분은 역사를 긷고 또 어떤 분들은 작가가 의도한 내면의 깨달음에 도달하시고. 결론적으로 그걸 전부 포괄할 수 있는 범용성이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Q. 인문학 열풍이 불었을 때 이게 굉장히 중요하고 꼭 알아야 할 것만 같더라고요.


인문학이나 지식이라는 것을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그것 자체를 향유해요. 아는 것이 즐겁고 놀이가 되는 거죠. 반면에 인문학을 수단으로 쓰며 자기 내면 안의 질문으로 닿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지식을 딛고 지혜로 가는 분들인 거죠. 아니면 제3의 입장에서 그런 건 관심 없고 건강하게 삶을 느끼면서 살아가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인문학이 중요하냐? 중요한 분도 있고 안 중요한 분도 있는 거죠. 특별히 이것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건 의미없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인문학 붐이 일었던 이유도 한국 사회의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거든요. 구조적인 면을 봐야 하는데, 97년 이후부터 고학력자들은 많아지고 일자리는 줄어들며 경쟁이 심화되었잖아요. 인간 개개인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아요. 아주 미묘하죠. 일자리가 줄어드니 그 안에서 경쟁하는 이들은 아주 디테일한 걸 가지고 싸우게 돼요. 학벌, 토익 토플, 외모 그러다 인문학까지 온 거죠.


Q. 그런 경쟁 안에서 자란 세대에게 추천해줄 만한 책이 있으신지.


젊은 분들이 느끼는 과도한 경쟁이나 현황을 파악하고 문제 해결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책이요? 아무리 고민하고 객관적으로 봐도 제 책이 제일 적절한 것 같아요. 내 책만큼 잘 설명하고 있는 게 어디 있나? (웃음)

'지대넓얕' 1권에 사회가 어떻게 계급대립이라는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고 내가 누구와 갈등하고 있는지가 나와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루는 '시민의 교양'도 괜찮을 것 같아요.


꼰대처럼 들릴 수 있는 이야기인데, 사회 전체가 '해야 한다'라며 분주한 분위기고 성장한 상태로 태어난 게 아니라 성장하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세계가 나에게 지시하는 대로 쉽게 휩쓸릴 수 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제가 어렸을 때는 개근상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아파도 학교에서 아파야 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아무것도 아닌 걸 알게 되었잖아요.


막상 인생에서 정말 가치있는 것엔 대부분 돈이 들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을 안는다거나 도시의 밤을 걷는다거나 하는 것들요. 삶에 대한 관심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게 내 소중한 일상을 짓밟고 있는 게 아닌가, 가치 있는 것들을 병행하고 있는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어요. 실제로는 굉장히 아름다운 젊음을 보내고 있으니까.


Q. 니체의 영원 회귀를 설명하시는 걸 들었어요. 이 인생을 반복해서 살아도 만족스러울 것 같나요?


만족의 여부나 그것을 긍정하고 부정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삶이 반복된다는 영원 회귀를 통해 니체는 지금 이 순간을 깨치고 일어날 것을 이야기하죠. 수능도 다시 봐야 하고 군대도 다시 가야 하고 지금도 되풀이된다면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빛나는 일을 해야 되겠다. 그걸 아는 순간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 결론을 지어주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가치있는 삶을 살 것을 요구하는 거예요.


처음 대답으로 귀결되는데, 그래서 놀려고요.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사로잡혀 일상을 짓밟고 빛나는 현실을 보지 못한 것 같아요. 노력하고 있습니다. 순간순간 좀 가치 있게 있어야지.



사진ㅣ강지윤 기자 tangerine@sportsseoul.com,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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