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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슬릭. 안은재기자 eunjae@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안은재 인턴기자]“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 저 그렇게 과격한 사람 아니에요. 하하”

래퍼 슬릭(30·본명 김령화)은 힙합이 아직 국내에서 자리잡기 전인 2012년 5월 믹스테이프 ‘위클리 슬릭’(Weekly SLEEQ)으로 데뷔했다. 그는 “‘정식 데뷔’라기 보다는 하나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며 “그냥 노래를 만들고 싶은 사람은 노래를 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후 래퍼 제리케이가 운영하는 1인 레이블에 소속돼 2016년 6월 2일 정규 1집 ‘콜로서스’(COLOSSUS)를 발매했다.

쌈디부터 제리케이, 팔로알토 등에게 샤라웃(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받으면서 ‘여성 래퍼’로서 자리를 잡아가던 중 그의 인생을 뒤바꾼 사건이 발생한다. 2016년 엠넷 프리스타일 랩 프로그램 ‘마이크 스웨거 시즌2’에서 ‘페미니스트’ 선언을 한 것. ‘게이 같다는, 계집애 같다는 말을 욕으로 하는’ 국내 힙합 신을 디스했다. 그후 슬릭에게는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Hell of Feminist)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

강남역 살인사건(2017), 이수역 폭행사건(2018) 등으로 대한민국이 페미니즘 담론으로 들끓을 때 슬릭도 2018년 11월 디스곡 ‘이퀄리스트’(Equalist)를 발표했다. 폭행사건 이후 래퍼 산이(SanE)가 신곡 ‘페미니스트’(Feminist)를 공개한 다음 날이다.

현재 슬릭은 Mnet ‘굿걸:누가 방송국을 털었나’(이하 ‘굿걸’)에서 ‘순둥한 외모에 그렇지 못한 가사’로 ‘야망 순두부’로 활약하고 있다.

실제로 만난 그는 악명높은 별명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순둥한 외모로 인터뷰 내내 빵빵 터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자신의 신념과 관련된 주제에서는 눈을 반짝이며 열변을 토했다, 영어 글씨가 적힌 검은 티셔츠와 편안한 청바지를 입은 채 그의 팔뚝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 컬러풀한 타투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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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슬릭. 안은재기자 eunjae@sportsseoul.com

-자기소개해주세요.

한국에서 음악하는 사람 슬릭입니다. 힙합을 시작했고 지금은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싶습니다.

-최근 촬영 중인 Mnet ‘굿걸’은 어때요? 출연자들과 많이 친해졌나요?

‘굿걸’ 촬영은 재밌어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라 촬영을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경계가 모호해 편안하게 촬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극 초초 내향형이라 잘 못친해져요. MBTI가 완전 찐 인프피(INFP)! 처음에는 친해지는 데 애를 먹었는데 10명이나 돼서 같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두루두루 친해졌어요.

사실 퀸 와사비 씨가 제일 친한 사람이에요. 와사비랑 대기 시간이 많이 겹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제일 맘이 통했죠. 그 다음에는 무대를 같이 했던 제이미 씨, 윤훼이 씨랑 친해졌어요. 또 함께 무대를 했던 효연 언니는 좀 내향적인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둘이 엄청 눈이 마주치면 같이 웃는데 그게 다예요. ‘아아 반가워~’ 하고 웃기만 해요. 효연 언니가 방송을 오래 하셔서 알려주는 게 많아요. 어떻게 하면 제가 표현하고 싶은 바를 잘 표현할 수 있는지 알려주세요.

-‘이퀄리스트’ 곡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건가요?

이 노래는 강남역 살인사건, 이수역 폭행사건 이후 제가 만들고 싶어서 만든 노래예요. 강남역 살인사건과 같은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각성이나 페미니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고 안티 페미니즘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기분이 나빴어요.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제 친구들 가족들이 그런 흐름에 상처를 받았어요. 같이 페미니즘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사람들한테 대리 사이다를 먹일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보자 해서 만들어봤습니다. 저는 원래 그렇게 과격한 사람이 아니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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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슬릭. 안은재기자 eunjae@sportsseoul.com
-‘페미니스트’ 선언 이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페미니스트 선언 후 한번도 힙합 신에서 불러준 적이 없어요. 그때 ‘마이크 스웨거’라는 비디오 콘텐츠에 나가서 “나 페미니스트다”라고 선언한 게 엄청난 파장이 됐어요. 주변에 페미니스트 친구들이 많아서 심각한 건지 몰랐는데 나보고 “페미랜다” 라며 조롱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오더라고요. 모든 예술계가 그렇지만 힙합 신에도 안티 페미들이 엄청 많았는데 제가 그걸 꼬집으니까 발끈한거죠.

그때부터 힙합 신에 있는 사람들이랑 척을 지게 됐고 옛날에는 행사도 많이 섭외됐는데 많이 줄었죠. 힙합이 워낙 브라더후드(형제애)가 심하고 아는 사람이 연결해주는 게 있거든요. 그 ‘아는 사람’ 바운더리에서 쫓겨났어요.

-또 비건이라고 들었는데요. 비건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지금까지 잘 하고 있는지, 힘든 점은 없는지 궁금해요.

처음 비건을 시작할 때 거부 반응이 되게 컸어요. 페미니즘은 제가 차별받는 집단의 중심이라면 비건은 내가 가해자 입장이 되는 거라 더 그랬죠. 그런데 육식에 관한 다큐멘터리나 책을 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환경, 경제와 같은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이 채식주의로 해결될 수 있더라고요.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더 이상 동물을 소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건이 된 지는 1년 좀 넘었습니다. 한국은 ‘비건’으로 살기 정말 힘든 나라예요. 그렇지만 못할 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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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슬릭. 출처|Mnet·슬릭 개인 SNS
-평소 오마이걸 ‘승희’의 팬이라고 들었어요. 승희를 영업해준다면? 승희 말고 ‘덕질’하고 있는 다른 연예인이나 작품 등이 있나요?

승희 씨는 최근에 좋아하게 됐고, 저는 원래 배우 박소담 씨 완전 팬이에요. 옛날에 박소담 팬클럽 창단 1기에 갔어요. 1기가 10명이었거든요. 거기에 제가 포함돼 있어요. 하하 팬클럽 팬미팅에서 음향 담당을 했어요. 어떻게든 봉사를 하고 싶어서 음향을 했죠. 박소담 씨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다닐 때 찍은 단편영화를 다 소장하고 있고요. 처음 입덕하게 된 건 영화 ‘경성학교’ 보고 팬이 됐어요. 저는 그분이 잘 될 거라고 무조건 믿었어요. ‘이 사람의 진가를 모두가 알게 될 거야’ 라고 생각했어요.

-이상형을 말해본다면요?

이상형 이라고 하면 애매한데… 어떤 사람한테 반했는지를 보면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좋아요. 자기 일에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볼 때 심장이 ‘두근’ 했어요. 누군가가 직업이나 직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반한 적이 많아요. 처음 좋아했던 사람들은 선생님이에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 반합니다. 일터에서 사랑에 빠지는 스타일? (웃음)

-처음 힙합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그건 정말 단순한 흥미로 시작했어요. 어느 날 학교 갔다 와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엠넷 음악 전문 채널에서 누가 나와서 랩을 하는데, 그게 너무 이상하고 재밌고 멋있더라고요. 그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써놓고 그 사람처럼 읽어봤습니다. 첫 믹스테이프를 집에서 스스로 만들었어요. 근데 쌈디 씨가 트위터에 ‘이 사람 되게 멋지다. 잘한다’ 하고 올려주셔서 그때 처음으로 주목을 받은 것 같아요. 그때는 2011년, 2012년 힙합 초창기라서 힙합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어요. 그때 제 기대보다 많은 분들이 제 음악을 들어주시니까 흥이 나서 이것저것 많이 해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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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슬릭. 안은재기자 eunjae@sportsseoul.com

-보통 힙합을 한다고 하면 부모님들이 별로 안 반기잖아요? 어떻게 설득했나요?

소속사 사장님, 제리케이가 서울대를 나왔다고 그랬죠. 하하. 제리케이가 서울대 나왔다고 하니까 ‘안돼 하지마’ 라고 하진 않았어요. 그때 2016년 정규앨범 발매 후 첫 음악감상회를 했는데 그때 할머니와 엄마를 초대했어요. 첫 음감회인데 사람이 엄청 많이 왔어요. 그걸 부모님이 보시고 허락을 한거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앞으로 밴드를 할 생각이에요. 피아니스트 ‘남메아리’ 분이랑 밴드를 해요. 늦은 감은 있지만 둘이 음악을 만드는 게 재밌어요. 올해는 남메아리 님이 솔로준비해서 저희 노래는 내년쯤에 나오지 않을까 해요.

최근 관심있는 것은 피아노와 재즈 등을 힙합에 차용하는 거예요. 요즘 피아니스트랑 재즈 신에 있는 연주자들이 힙합을 많이 차용하기 시작했어요. 이전에는 힙합이 재즈를 많이 차용했는데 이게 흐름이 바뀌었죠. 힙합을 차용한 재즈 곡을 만들고 싶어요.

eunj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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