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귀신' 불렸다던 손흥민 父 현역 시절…실패가 위대함 낳다[원픽, 그땐 그랬지⑦]
    • 입력2020-04-22 08:00
    • 수정2020-04-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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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웅정
손흥민의 부친인 손웅정씨의 현역 K리거 시절의 모습. 야생마처럼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는 모습이 2010년대부터 한국 축구 아이콘으로 활약중인 아들 손흥민의 플레이와 흡사해 보인다.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평가받는 손흥민의 탄생을 이끈 건 아버지이자 축구 선배인 손웅정(58) 씨다. 손 씨는 다소 불운한 현역 시절을 보냈다. 춘천고~명지대를 거치면서 청소년 국가대표로 활약한 그가 프로 선수로 남긴 기록은 K리그 통산 37경기 7골이 전부다.

지난 1985년 상무 소속으로 K리그 무대를 밟은 그는 현대(1987~1988)와 일화(1989)를 거치면서 5시즌 프로 선수로 뛰었다. 키 167㎝ 단신임에도 폭발적인 스피드를 앞세워 최전방 공격수와 윙포워드를 소화한 그가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건 부상 때문이다. 일화 시절인 1989년 5월9일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대우와 경기에서 후반 40분께 측면 돌파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그라운드 바깥 패인 곳에 발목이 꺾였다. 손 씨는 오래전 스포츠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발목을 다친 뒤 출혈이 발생했다. 당시 교체 카드를 다 소진한 상태였다. 참고 뛰었는데 후반 막판 문전에 서 있다가 크로스를 받아 골을 넣었다”고 웃더니 “꾸역꾸역 버텨서 경기를 마쳤는데 밤새 잠을 못 잤다. 고통스러웠다. 결국 축구화를 벗었는데 1년간 경기하는 모습이 꿈에 자주 나오더라. 눈물이 나고 허무했다”며 아픈 기억을 더듬었다. 당시 만 28세에 불과했다.

손 씨의 아픈 선수 시절의 기억, 쓰라린 실패는 전화위복이 됐다. 스스로 “한국에서 프로 선수를 했다고 말하기 창피할 정도로 경쟁력이 부족했다”고 말한다. 축구에 관한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는 “선수 시절 별명이 숙소 귀신이라고 할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말 그대로 단체 훈련 시간 외에도 개인 일과에 축구가 전부였다. 불의의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조기에 접었지만 그저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만 여기지 않았다. 스피드라는 장기가 있었지만 좀 더 기본기와 더불어 실전에 이행할 기술을 보유했다면 부상도 방지할 수 있었으리란 생각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손 씨는 축구 재능을 갖춘 둘째 아들 손흥민을 일반 학원 축구에 보내지 않고 직접 교육했다. 볼 리프팅을 시작으로 고교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지겹도록 기본기에만 충실하게 했다. 고교생이 돼서야 슛이나 전술 훈련 등을 익히게 했다. 어려서부터 승부 세계에 노출돼 경기 위주로만 축구를 익혀 무릎이 고장 나고 성인이 됐을 때 재능을 키우지 못하는 여러 선수를 지켜본 결과다. 이는 ‘손흥민 신화’의 디딤돌이 됐다. 함부르크~레버쿠젠~토트넘 등 그가 거친 클럽의 유스 관계자가 손 씨의 지도법에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그는 자신만의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현재 춘천에서 손(SON)축구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다.

짧은 선수 시절인 만큼 그를 추억할 만한 영상이나 사진 자료는 찾아보기 어렵다. 스포츠서울 데이터베이스엔 다행히 그의 열정을 추억할만한 사진이 몇 장 남아 있었다. 예스러운 유니폼과 축구화를 신고 동료를 향해 소리 지르며 드리블을 펼치는 손 씨의 모습에서 당시 열정이 느껴진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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