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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정하은기자]“바른 이미지였는데 섹시해졌다고…아직 철은 없어요.(웃음)”

배우 이지훈(33)이 최근 종영한 KBS2 ‘99억의 여자’에서 운암재단 이사 윤희주(오나라 분)의 남편이자 아내의 친구인 정서연(조여정 분)과 불륜관계인 이재훈 역을 맡았다. 정서연과 함께 우연히 발견한 현찰 99억을 탐하다가 결국 가족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아내 윤희주를 지키기 위해 레온(임태경 분)에게 죽임을 당하며 엔딩을 맞는다.

종영 후 만난 이지훈은 다소 무거웠던 드라마 속 분위기와 달리 “서른 세 살 이지훈입니다”라고 해맑은 웃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지난해 꽉 찬 한 해를 보내서 속이 시원하네요”라며 허심탄회한 소감을 전했다.

실제로 이지훈은 지난해 MBC ‘신입사관 구해령’부터 ‘99억의 여자’까지 쉼없이 연기하며 안방극장에 눈도장을 찍었다. ‘신입사관 구해령’에서 강단있는 사관 민우원 역을 맡은 이지훈은 ‘99억의 여자’에선 이재훈으로 180도 변신해 눈길을 끌었다. 불륜관계로 위험한 만남을 즐기는 능청스러운 모습부터 아내 앞에서 꼼짝하지 못하는 무능한 남편 그리고 돈을 향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눈빛까지. 다채로운 연기로 호평을 얻었다.

단시간 내의 연기변신이 쉽진 않았지만 이지훈에겐 그런 고민마저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지훈은 “민우원이란 캐릭터는 항상 올곧고 올바른 말만 하는 사람이었는데, ‘99억의 여자’ 이재훈은 정반대의 감정선을 가진 인물이어서 더 재미있고, 한편으론 후련하기도 했다”며 “사실 부담도 됐다. 재훈은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인물이어서 호기심이 많이 갔고, 상상 속 인물에 제가 살을 붙여 가는게 재밌었다. 캐릭터를 구현하는 과정에서의 고민들이 저를 즐겁게 해줬다”고 연기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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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억의 여자’에서는 조여정부터 김강우, 오나라, 정웅인 등 베테랑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대선배들 사이에서 연기를 펼치기 부담스럽진 않았을까. 이에 이지훈은 “원래 겁이 없다”며 웃었다. 이어 그는 “워낙 대선배님들이 많은 현장이어서 긴장을 하긴 했는데 막상 촬영장에 오니 너무 설레더라. 선배님들과 부딪히며 얻어가는게 많겠다 싶었다. 잘 즐기고 버텨보려 했던 거 같다”고 말했다. 선배들 곁에서 가장 많이 배운 건 ‘태도’였다. “연기를 대하는 태도뿐만 아니라 현장을 대하는 태도도 절대로 설렁설렁 하시는게 없었다. 그게 저한테는 더욱 자극이 많이 됐고 기를 쓰고 하려고 했던 거 같다.”

실제로 14살의 나이차가 나는 오나라와 부부호흡을 맞춘 이지훈은 오나라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고마운 마음도 숨기지 않았다. 특히 극중 재훈이 희주에게 전화로 고백하며 목숨을 잃는 장면에 대해 “전날 밤에 대본을 받고 새벽에 오나라 누나에게 촬영 때 실제로 통화해 주시면 안되냐고 문자를 드렸다. 흔쾌히 ‘나한테 전화해’라고 해주시더라”라며 “중요한 장면이어서 혼자 하기 벅찰 거 같았는데, 실제로 수화기 너머로 누나 목소리가 들리니까 몰입이 확 되며 감정이 올라오더라. 여섯 번을 촬영했는데 모두 함께 해주셨다. 제가 우니 같이 우시더라”라고 비화를 전했다.

오나라와 ‘여보’ 호칭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평상시에 누나랑 촬영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자주 통화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은 꼭 한 것 같다”는 이지훈은 “대본리딩 때부터 ‘여보’라고 불렀다. 이 말을 터야 선배님들 사이에서 내가 내 연기를 할 수 있겠구나 해서 큰 마음 먹고 제가 먼저 했는데 누나가 엄청 놀라시더라. 이후 현장에서 여보란 말이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하면서 서로 여보라고 호칭을 불렀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지난해 영화 ‘기생충’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누구보다 빛난 한해를 보낸 조여정에 대해 존경심도 표했다. 이지훈은 “수상을 하신건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연기에 있어서 선배님은 그냥 선배님 그 자체였다. 늘 현장에서 남들과 똑같이 열심히 하시고 인간적으로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느꼈다”며 “현장에서 웃지 않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정말 아담하신 분인데 그렇게 모든걸 아우르는 모습을 보며 역시 주인공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구나 배웠다”고 말했다.

이지훈 역시 지난해 연말 ‘신입사관 구해령’으로 MBC 연기대상에서 조연상을 수상하며 진가를 인정받았다. 아쉽게도 당시 ‘99억의 여자’ 촬영 때문에 시상식에 불참했던 이지훈은 “촬영을 마치고 매니저와 집에 가는 중이었다. 핸드폰이 계속 울려서 봤더니 어머니한테 부재중 전화가 13통이 와 있더라. 전화를 드렸는데 제가 상을 받았다며 소리를 지르셔서 정말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중요한 상을 주셨는데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해 정말 죄송했다. 실제로 무대에 서서 수상소감을 말하라 했으면 너무 떨려서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을 거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끝으로 ‘신입사관 구해령’ 민우원과 ‘99억의 여자’ 이재훈 중 어떤 인물이 본인의 성향과 가깝냐고 묻자 “전 멜로하고 싶다”는 엉뚱한 대답이 돌아와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이지훈은 “특별히 제가 멜로가 어울린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댓글을 찾아보니 제 눈빛을 보고 ‘멜로 눈깔’이라고 하시더라. 그런 반응을 듣다보니 ‘나도 할 수 있나?’ 생각이 들더니, 이젠 한 번은 해보고 싶어졌다. 하게 된다면 로맨틱 코미디 장르보다는 정말 슬프고 가슴 아픈 멜로를 하고 싶다”고 했다. 누구와 하고 싶냐는 물음엔 “조여정 선배님”이라고 웃더니, “나라 누나와는 코미디 장르에서 만나자고 했다”고 덧붙였다.

jayee212@sportsseoul.com

사진 | 지트리크리에이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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