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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태초에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이 있었다. 1986년 결성된 이 팀의 원년멤버는 故 김현식(보컬) 故유재하(키보드) 김종진(기타) 전태관(드럼) 장기호(베이스)였고, 故 유재하가 탈퇴한 자리를 곧 박성식(키보드)이 메웠다. 이들은 김현식 3집을 함께 만들게 된다. ‘전설’의 시작이다.

이 팀 멤버는 한명 한명이 80~90년대 가요계의 ‘전설’이 됐다. 팀 리더였던 故 김현식은 80~90년대를 대표하는 ‘가객’으로 남았고, 故유재하는 1987년 발표한 단 한장의 앨범으로 기존 가요계의 문법을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김종진과 전태관은 1988년 ‘봄여름가을겨울’로, 장기호와 박성식은 1990년 ‘빛과소금’으로 가요계에 데뷔해 90년대 가요계 르네상스에 음악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는 팀으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결성 33년주년을 맞은 지금, 원년멤버인 유재하, 김현식, 전태관은 세상에 없다. 남은 3명의 멤버는 지난해 암 투병 끝에 별세한 故 전태관의 기일인 지난 27일에 맞춰 새 앨범을 발매했다. 앨범 타이틀은 ‘봄여름가을겨울 리유니언(Re:union) 빛과소금’, 여기서 ‘봄여름가을겨울’은 2인조가 아닌 원년 6인조를 가리킨다.

최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김종진은 “태관을 기리는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면 한번 해보자는 뜻에서 시작했다. 아무래도 음악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라, 결국 음악으로 발표된 것 같다”며 “1986년 이후 우리 셋이 음악을 하기 위해 만난 적이 없다. 33년만에 스튜디오에서 만났다”고 말하자 박성식은 “신혼여행을 간 것처럼 설레는 느낌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장기호는 “태관이에 대한 생각도 있고, 하늘에 있는 현식 형이나 재하에게도 ‘우리 아직 음악 하고 있어, 너희 생각하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장기호와 박성식은 김종진의 후암초등학교 1년 선배들이기도 하다. 새 앨범명 ‘동창생’이 더없이 어울리는 이유다. 특별한 인연이 있는 세 멤버가 처음 함께 프로젝트를 하게 된 데 대해 장기호는 “젊을 때 나와 김종진은 음악적으로, 개인적으로 정말 많이 싸웠다. 티격태격, 아옹다옹 말이 참 많았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만나니 조금만 힘이 없으면 서로 당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관계가 서로 위하고, 이해하는 차원으로 바뀐 것 같다. 함께 작업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고 전했다.

김종진은 “1950년대 악기와 장비를 가진 스튜디오를 잡아 작업했다. 전태관이 졸업한 학교(서강대) 앞이라 의미가 있었다. 셋이 무턱대고 함께 합주하는데 33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았다. 33년전 우리가 연주한 느낌 그대로, 정말 잘 맞아떨어졌다. 며칠 연주하다가 기호 형에게 ‘너무 행복하다. 뮤지션이 악기를 들고, 음악을 연주하는 게 이런 기분이란 걸 오랜만에 느꼈다’고 말했다. 빛과소금 형들은 대학 강단에서 한국 실용음악 교육의 선봉에 있어 스튜디오 작업을 하기 어려울 텐데 첫 연주 때 알았다. 초절정 고수가 아직 있다는 걸. 인간 세상에 있는 연주자만 늘 만나다 이번에 신선급 연주자들을 만났다”고 전했다.

새 앨범에는 김종진, 장기호, 박성식 세 사람이 각자 쓴 세 개의 신곡과 봄여름가을겨울과 빛과소금의 명곡을 다시 녹음한 두 개의 리메이크까지, 총 다섯 트랙이 수록됐다. 김종진이 작사 작곡한 타이틀곡 ‘동창회’, 장기호의 ‘난 언제나 널’, 박성식의 ‘행복해야 해요’ 그리고 리메이크 된 ‘보고 싶은 친구’, ‘오래된 친구’가 실려있다.

이번 앨범에서 장기호가 부른 ‘보고 싶은 친구’는 김종진이 故유재하를 그리며 봄여름가을겨울 1집에 수록했던 곡이다. 이번엔 장기호가 부르며 故유재하와 故전태관, 그리고 故김현식을 기렸다. 김종진은 자신이 작사·작곡한 타이틀곡 ‘동창회’에 대해 “예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삶에 대한 노래였다면 동창회는 죽음에 대한 노래라고 할 정도로 반대”라고 소개했다.

김종진은 이번 앨범의 정신을 타협 없는 ‘음악 순혈주의’로 명명했다. 김종진은 “빛과소금 형들과 작업해 보니 이 형들은 ‘음악 순혈주의’가 있다. ‘나는 음악 외엔 아무 것도 못해. 음악만 지켜야해’라는 정신을 갖고 있더라. 가슴이 찡했다”고 전했다.

앨범 발표 이후 예능 프로그램 출연 제의 등이 줄을 이었지만 이들은 모두 고사했다. 김종진은 “형들이 ‘종진아, 우리가 예능 나가서 농담하는 모습으로 소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시대에 여전히 ‘진짜 음악’이 남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 오직 음악으로만 보여주자’고 했다. 그말을 듣는 순간 망해도 좋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성식은 “예능 안 하려는 건 김구라 같은 분이 직업을 잃을까봐 그렇다. 우리의 아날로그 감성 개그를 펼치면 김구라가 직업을 잃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이 이번 앨범에서 선보인 ‘진짜음악’, ‘아날로그 감성’은 어떤 것일까. 장기호는 “우린 팝의 르네상스라는 70~80년대 밴드와 가수에게 영향을 받았다. 이후에도 그들을 능가하는 아티스트는 없는 것 같다. 모두 재탕의 느낌이다. 나는 그런 아날로그 감성의 영향을 받았기에 그런 걸 지향하는 게 당연하다. 할 수 있는 게 그것 뿐”이라고 전했고, 박성식은 “요즘 음악하는 친구들은 수학적으로 계산해 이론이나 코드 진행에 의존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우린 20~30대 뮤지션이 흉내낼 수 없는 감성을 연주할 수 있다. 매주 엄청난 히트곡이 쏟아진 팝의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기에 그런 감성에 지배를 받는 게 당연하며, 그 감성은 끝까지 생명력이 지속될 종류의 감성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김종진은 “전태관이 잠든 용인 평온의 숲에 셋이 함께 다녀오며 우리가 차 안에서 들은 음악은 카펜터스였다. 오늘날 음악가는 음악의 바다를 행하하는 선원이다. 육지에 계신 분들은 멀리 나오고 싶어도 못나오는 바다에, 우리처럼 철이 안든 사람들이 배를 띄우고 나와, 육지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걸 발견하면 육지를 향해 비둘기를 띄우는 것이다. 육지에 계신 여러분이 잃어버린 아날로그 감성, 레트로 감성을 우리는 아직도 갖고 있다. 그걸 이번 앨범에서 전해드린 것”이라고 정리했다.

monami153@sportsseoul.com

사진 | 봄여름가을겨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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