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김응룡 회장 팔순잔치
10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김응룡 회장(앞줄 가운데)의 팔순잔치에서 프로야구를 호령한 제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이환범기자

[스포츠서울 이환범선임기자] “미안했다. 너무 미안해 무릎 꿇고 사과의 절이라도 하고 싶다.”

팔순의 노 감독은 흐뭇한 미소속에서도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있었다. 감독시절 선수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계속해서 “미안하다. 정말 미안했다”고 거듭 사과의 말을 전했다. 무엇이 그렇게도 미안했기에 제자들이 마련해준 팔순잔치에서 거듭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을까.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김응룡 회장은 지난 10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팔순잔치에서 “오늘은 내 생애 최고로 기쁜 날이다. 그렇지만 과거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너무 미안해 죽겠다. 프로야구 출범 38년이 됐는데 초창기는 프로야구의 ‘프’자도 모르던 때였다. 그때는 내가 너무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프로야구는 돈이 중요하지 않은가. 출전 기회도 주고 개개인의 성적도 챙겨줘야 하는데, 오로지 이기기 위한 야구만 했다. 오늘 지면 죽는다는 각오였다”며 선수들을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을 피력했다. 당시의 장면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김 회장은 “5-0으로 리드한 5회, 방수원이 3점을 내줬다. 아웃 카운트 1개만 잡으면 승리투수 요건을 충족하는 상황이었다. 방수원이 교체되기 싫어 2루로 도망갈 정도였지. 내가 참아야 했는데 내 욕심에 그냥 투수를 교체했다. 내가 좀 너무했다. 너무 미안했다”고 말했다.

선수들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야구원로로서 프로야구의 선구자로서 후회와 반성도 곁들였다. 김 회장은 “당시 해태는 2군도 가장 늦게 만들었다. 요즘 같은 데이터 야구가 어디 있나. 그냥 감독 마음대로, 내 감으로 했던 시절이었다. 내가 프로야구 더 연구하고 공부했다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텐데 머릿속에 미안한 생각만 가득하다”고 반성했다.

“불만과 서운했던 점 있으면 다 말하라”는 노 감독의 말에 이제는 반백살을 대부분 넘긴 제자들은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화답했다. 선수시절엔 ‘승부사’ 감독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던 제자들이지만 어느덧 코치 감독을 거치며 야구인생이 숙성되다보니 서운함과 원망은 눈 녹듯 사라지고 고마움만 남는다. 그의 지도 덕분에 한국프로야구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활약할 수 있었고, 지도자 생활을 경험하며 감독의 어려움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이 날 팔순잔치는 김응룡 회장이 해태 삼성 감독 시절 지도했던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과 이순철 SBS해설위원 등 제자들이 모두 뜻을 모아 마련했다. 해태 왕조의 주역 김성한 한대화 이건열 유승안 선동열 조계현 이강철 이종범 등과 삼성에서 함께 했던 류중일 이승엽 마해영 등 프로야구를 호령한 수많은 제자들이 함께 했다.

김응룡 회장은 60년대 국가대표 4번타자를 뛰었고, 70년대 말부터 1982년까지 한일은행 감독과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한 뒤 1983년부터 2000년까지 해태 타이거즈 지휘봉을 잡고 9번의 우승을 일궈냈다. 2000년말 삼성으로 둥지를 옮겨 2002년 삼성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겼다. 프로야구 감독출신으로 최초로 삼성 라이온즈 사장을 역임했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그의 인생이 바로 한국 야구 현대사와 괘를 같이하고 있다..

white@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