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현
제공 | 실업축구연맹

[스포츠서울 도영인기자] 잊혀졌던 ‘레인메이커’가 내셔널리그의 마지막 득점왕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그것도 시즌의 절반만 뛰고 리그를 평정하면서 말이다.

2006년 K리그에서 프로에 데뷔한 서동현(34·경주한수원)은 지난해 여름 태국 2부리그 치앙마이로 이적하면서 첫 해외진출에 도전했다. 올해 초에는 같은 리그의 카세사FC에서 활약하다 지난 8월 내셔널리그 경주한국수력원자력의 유니폼을 입었다. 서동현은 “태국에서 적응을 못한 건 아니다. 한국 축구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계속 있다보면 나태해지고, 축구를 그만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기억을 떠올린 뒤 “태국에서 득점 선두권을 달리고 있었지만 그곳의 시스템을 경험해보니 게을러 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자신을 긴장시키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밝혔다.

수원 삼성, 강원, 제주, 수원FC 등을 거치며 K리그 304경기에서 68골을 넣은 국가대표 출신 공격수 서동현의 실업리그행은 의외였다. 30대 중반의 나이지만 프로 무대에서만 뛰었던 그에게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동현의 생각은 달랐다. “내 나이도 많은 편이고, 같이 축구했던 형들이나 동료들이 많이들 은퇴했다”던 그는 “어디서 뛰느냐보다 운동장에서 뛸 수 있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경기력이 떨어져 내셔널리그에서 뛴다고들 했지만 난 그런말에 신경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음을 비우고 새롭게 출발한 서동현에게 내셔널리그는 ‘기회의 땅’이었다. 그는 데뷔전에서 득점포를 가동하면서 킬러 본능을 뽐냈고, 시즌 막판에는 9경기 연속골로 내셔널리그 최다 연속골 기록을 새롭게 썼다. 후반기만 뛴 서동현은 13경기에서 15골을 뽑아내면서 2019시즌 내셔널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는 “첫 경기 부담이 컸다. 그 경기에서 골을 안 터졌다면 많은 골이 안 나왔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면서 “득점왕을 수상했을때 솔직히 많이 좋았다. 축구 인생에 이런 순간이 언제 다시 오겠나 싶은 마음이었다. 팀 상황이 좋지 않아 모든 선수들이 그 시기를 벗어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팀 동료들의 노력이 내가 기록을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공을 돌렸다.

서동현1
제공 | 실업축구연맹

그는 3부리그격인 내셔널리그에서 뛰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서동현은 “내셔널리그에서 활동하면서 기사도 많이 나오게 됐다. 댓글을 보면 예전 수원 팬들이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다. 그래도 아직은 축구를 잘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모든것이 순조롭게 이어졌지만 올시즌 단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 바로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한 것이다. 리그 3연패에 도전했던 경주한수원은 전반기 부진을 털어내면서 극적으로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랐지만 결국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올해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와 전국체전 정상에 올랐던 경주한수원은 사상 첫 내셔널리그 트레블을 노렸지만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서동현은 “사실 마지막에 웃었으면 했다. 우리가 챔프전에 올라가는 과정에서 중간에 전국체전도 있었고, 플레이오프 진출하기 위한 노력으로 피로가 누적된 것이 힘들었다. 되돌아보면 후회되지만 거기까지 간 것도 뿌듯했다”고 말했다.

내셔널리그의 마지막 득점왕이 된 서동현은 적어도 마흔살까지는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내년에 어떤 리그와 어떤 팀에서 뛸 지 아직까지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자신의 부활을 도운 경주한수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분명히 있다. 그는 “아직 거취가 결정되지는 않았다. 여러 고민을 하고 있지만 날 일으켜 준 팀인 경주한수원에서 뛰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전하면서 “K리그 팀에서 선수 생활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다. 다만 아직은 마지막이 아니다. 난 40세까지 볼 차겠다고 후배들에게 항상 이야기 해왔다”고 말했다.

dokun@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