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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에세이스트 조이한. 김효원기자 eggroll@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효원기자]남녀갈등, 여성혐오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한국사회에 미술사를 통해 여성 억압과 젠더 문제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책이 나왔다. 아트 에세이스트 조이한의 에세이 ‘당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거짓말’(한겨레출판)이다. 그동안 미술사가들이 바라보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바라보고 해석해 망치로 머리를 맞은듯 강렬한 충격을 전한다.

‘당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거짓말’은 아름다움과 여성성을 강요당하며 살아온 한국 여성들에게 “거짓말에 속지 말고 당신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라”고 이야기한다. 조이한은 “지금까지 한국 여성들은 아름답지 않다는 말을 무수히 듣고 살아왔다. 이상적인 미에 비추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수정하면서 살아간다. 오랜 역사동안 세뇌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움에 관해 글을 쓰기로 결정하고 약 9개월 동안 집필에 매달렸다. 자료를 찾고 글을 쓰면서 지금까지 그 어떤 책보다 재미있어 힘든 줄 몰랐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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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한은 “우리가 시민으로 살면서 당연히 했어야 하는 질문들이 있다. 그런데 우린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 불편하다고만 느껴왔지 특정한 방식에서 벗어날 생각을 못했다. 이 책을 통해 페미니즘적인 안경을 쓰고 방향을 바꿔서 작품을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알려주고 싶었다. 왜 불편했는지, 이게 어디서부터 온건지 역사를 추적하는거다. 책을 쓰면서 내 뇌가 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천편일률적인 권위에 눌린 해석에서 벗어나면 남녀 모두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책에는 새로운 해석이 가득하다. 1장 아름다움과 추함의 이분법, 2장 누가 아름다움을 정의하는가, 3장 그녀는 왜 ‘악녀’가 되었나, 4장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5장 여성·섹스의 발견 등 각 장마다 유의미한 그림과 해석이 흥미를 이끈다. 그중에서도 가장 도발적인 부분은 아담과 이브의 신화에 관한 대목이다. 저자는 소수의 연구서를 통해 아담에게 첫 번째 아내인 릴리트가 있었으며 아담의 가부장적인 태도에 릴리트가 집을 뛰쳐나갔다고 주장했다. 아내의 가출로 외로워하는 아담을 위해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어냈다는 것. 저자는 아담의 옆구리에서 이브가 태어나는 그림을 재해석해 이브가 아담의 딸일 수 있다는 상상을 내놓았다. 메두사와 포세이돈의 신화도 남성적 시각임을 지적했다. 메두사는 아테나 신전에서 포세이돈과 사랑을 나누다가 아테나 여신에게 들켜 머리카락이 뱀이 되는 벌을 받는다. 함께 잘못을 저지른 포세이돈은 처벌받지 않았다.

조이한은 “신화를 통해 여성 억압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여성이 어떻게 악마화되지 그 과정을 탐구했다. 그중에서 메두사와 아테나의 관계에 대한 부분은 참으로 남성적인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아테나를 내세워 위대한 어머니 여성을 죽이고 아름다운 여성을 살린 것은 남성적 시각이다. 오늘날 여성들은 그것이 남성적 시각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다. 그걸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들보다 더 젊고 아름다워서 더 가련해보이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제우스가 백조로 변해 레다를 강간하는 장면을 그린 사이 톰블리의 ‘레다와 백조’ 등 남성중심의 역사, 여성 억압의 문제 등에 대해 인식하게 되면서 책을 보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남녀 구분 없이 모두 이 책을 보고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좋겠다는 그는 “단지 페미니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뇌를 말랑말랑하게 할 필요가 있다. 순수한 눈과 자유로운 창의력을 가지면 좋겠다. 권위에 주눅들지 않는 상상력이 우리사회를 발전시킨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젠더갈등이 심각한 것에 대해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갈등은 나쁜 게 아니다. 갈등이 표면화돼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갈등 없이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해결책을 내놓으면 좋겠지만 인간은 그렇게 이성적인 존재는 아니다. 당장은 힘들지만 역사를 긴 안목에서 보면 좋게 나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eggroll@sportsseoul.com

<조이한 프로필>

성신여대 심리학과 졸업,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 미술사·젠더학 공부. 인하대, 성균관대 등에서 강의. 지은 책으로 ‘조이한·진중권의 천천히 그림 읽기’, ‘위험한 미술관’, ‘혼돈의 시대를 기록한 고야’, ‘그림에 갇힌 남자’, ‘젠더: 행복한 페미니스트’, ‘그림 눈물을 닦다’, ‘베를린, 젊은 예술가들의 천국’, ‘뉴욕에서 예술 찾기’, ‘칠레에서 일주일을’ 등이 있다. 번역서로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가란 무엇인가’, ‘아틀라스 서양미술사’, ‘여자 그림 위조자 1, 2’, ‘한 가족의 드라마: 독일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 ‘이 그림은 왜 비쌀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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