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감독_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스포츠서울 조성경기자] “맨날 화만 내고 있을 순 없다. 어떻게 관객들에게 잘 전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다.”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을 다룬 금융범죄극 ‘블랙머니’가 13일 개봉했다. 앞서 석궁테러 실화를 모티브로 한 ‘부러진 화살’(2012)로 사법부의 실상을 고발하며 호평받은 정지영 감독이 만들었다. 정 감독은 ‘부러진 화살’ 때 흥행성을 입증했듯 이번에도 흥미롭게 영화를 전개했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끝내 영화는 통탄할 상황으로 치달았다. 주인공인 검사 양민혁(조진웅 분)이 실상을 파악하고도 현실에 타협한 사람들에게 부딪치며 우리가 아는 결론이 나고야만다.

블랙머니 조진웅

‘남부군’(1990)부터 ‘남영동 1985’(2012)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화로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을 갖게 한 정지영 감독이 이번 ‘블랙머니’로는 금융자본주의의 속내를 파헤쳤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을까. 영화로 문제제기는 하지만, 해답이나 힌트는 주지 않은 정 감독은 스스로 답을 구했을까도 궁금했다. 정 감독은 “많은 사람들이 뭔가에 분노하고 있지만, 그 정체를 모른다. 그래서 일단 알아야한다. 영화를 통해서 ‘이런거야’ 하고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이런 (금융자본주의)현실이 내몸에 들어와 있다고 아는게 중요하다. 알고 나면 극복하는 방법은 자기가 찾는거다. 현실을 모르면 방법을 찾기도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뒤이어 “현실이 그랬기 때문에 어쩔수 없었다”고 서글픈 결말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 사회가 그런거다. 그 약자들은 빨리 힘을 키워야한다”고 말했다.

블랙머니 이하늬

영화를 보면 아무리 참으려해도 씁쓸한 한숨이 삐져나오는데, 감독은 영화를 위해 사건을 취재하고 준비하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얼마나 개탄스러웠을까. 이에 정 감독은 “그 사실을 확인했을 때는 그랬다. 그래도 시나리오를 쓸때는 이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재밌게 관객들과 만나게 하는게 더 중요했다. 이야기가 일단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쉽게 관객들과 만나게 할지 고민했다”면서 “맨날 화만 내고 있을 순 없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감독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영화가 재밌는 영화가 되길 기대했다. 메시지가 있는 묵직한 영화들로 필모그래피를 가득 채우면서도 “나는 상업영화 감독”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이유는 뭘까. 정 감독은 “내가 만들고자 하는 영화는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는데, 관객들은 그걸 싫어한다. 그런데 관객들은 재밌기만 하면 만족한다. 나는 이런 문제를 끄집어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냐’ 따져묻게 하고 싶으니까 이런 영화를 재밌게 만들어야한다”면서 그만의 영화 만드는 방향성을 설명했다. 이어서 “관객들이 보든말든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아티스트면 괜찮은데, 나는 그렇지 않다. 내 생각을 공유해서 토론 좀 해보자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재밌게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메시지와 재미를 조율하며 관객들을 설득하는 정 감독의 한결 같은 모습은 단지 뚝심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고결하고 대범한 기운이 느껴지는 정 감독에게 수그러들지 않지 않고 늘 비판의 칼날을 세울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올해 우리나이로 일흔셋인 그는 “내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주변에서 말리면 더 하고 싶다. 아직 애다”라며 웃었다.

“내가 떳떳하면 몸을 사리고 싶지 않다”고도 한 그는 과거 블랙리스트 1호였던 시절도 있었다. 정 감독은 “그안에 들었을거라는 생각은 했다”고 덤덤하게 말하면서 “하지만 그게 내 생존권까지 압박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사회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라 멜로드라마를 만드는 것까지 못하게 하진 않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넌 영화를 못해’ 하는 차원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내가 영화를 안 하겠냐. 그게 말이 안되는거다”라며 천상 영화인인 마음을 내보였다. 또, “내가 진짜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하는건,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남이 안 한 걸 하려고 한다. 새로운 작업을 하려고 한다. 남이 한걸 따라하려 하지 않는다”면서 “그건 생각 자체가 진보적인거다”라고 밝혔다.

늘 새로운 작업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정지영 감독에게도 변신의 로망이 있을까 궁금했다. 매작품 사회적 메시지를 주는 의미 있는 영화를 한다는 점에서는 일관된 모습을 보이는 그이기 때문이다. 정지영 감독은 “모든게 다 새로울 순 없다. 그래도 끊임없이 새로운 걸 담아내려고 하는거다”라고 답한뒤 “정지영 말고 다른 사람이 이렇게 사회현상에 조금은 예리하고 조금은 깊이있게 파고든다면 난 빨리 다른 걸 찾아야한다”고 했다. “후배들이 과감하게 나와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하기도 한 정지영 감독은 “사실 오락영화든 무슨 영화든 우리들의 삶을 반영하는거다. 그런데 우리의 삶을 좀더 진지하게 반영하는게 내가 바라는 바다. 우리의 살을 빌어서 재미만 추구하지 않고 싶다”는 소신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의지가 굳건하지만, 너무 외롭거나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을까. 그동안 제작에 대한 외압을 받거나 투자가 안 되는 경우를 경험한 그이기 때문이다. 정지영 감독은 “이젠 그런것도 정확히 잘 모르겠다”면서 “그래도 그렇게 흔들려본적은 없는 것 같다”고 돌이켰다. 이유인즉 “아마 내 영화가 관객들로부터 외면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것 같다”고 했다. 그는 “관객들로부터 외면당하면 좌절할거다. 방향을 틀거나 영화를 그만하거나 했을거다”라고 상상하면서 “그런데 흥행을 못한 건 있지만, 그렇다고 내 영화를 외면하고 있다고까지 생각해본 영화는 없는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런 마음이기에 정 감독은 “지금이라도 관객이 내 영화를 떠날때는 영화를 그만할 생각이다”라고 전했다.

외로운 작업을 흔들림없이 하는 모습에 든든한 버팀목이 있을 듯했다. 정 감독은 뜻밖의 대답으로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는 “재미있어서 하는거다. 대한민국에서 영화를 힘들게 하는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소재로 관객들을 보게 하려면 얼마나 어렵겠나. 그렇게 관객들이 재미없어하는걸 재밌게 만드려하는 재미가 있다 그 재미가 보통 쏠쏠한게 아니다”라며 껄껄 웃었다.

cho@sportsseoul.com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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