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스포츠서울] 배급사 리뷰라는 게 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배급사들끼리 경쟁작들을 함께 보여주면서 함께 서로의 영화들을 모니터링 하는 구조다. 일반적으로 언론 배급시사, 극장들이 관을 어떻게 운영할지를 결정하는 극장시사와 함께 이뤄진다. 흥행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평가인 만큼 흥행 여부를 가늠하는 가장 확실하고도 정확한 리뷰라고 할 수 있다.

올 가을, 배급사 리뷰와 흥행간에 이변이 있었다. 영화 흥행은 워낙 예측이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배급사 리뷰의 방향성이 크게 엇갈리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많은 배급사들은 한국 영화의 전형성을 많이 갖춘 퍼펙트맨이 무난하게 300만 관중 이상을 가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같은 날 개봉한 조커는 너무 어둡게 표현됐다며 100만 전후, 100만 관중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찌질한 조커는 어떻게 완벽한 남자를 뒤집었을까.

◇ 조커

영화에서 예술을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을 잡았다. 영화제 수상작이 흥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통설도 보란 듯이 깼다. 혹자들의 말처럼 사회가 병들어서 흥행을 한게 아니라 사회가 빚어낸 나약한 인간의 광기를 영화적으로 표현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공감을 얻는데 성공했다. 늘 경쟁사 마블에 치이던 DC의 캐릭터 영화치곤 큰 반전을 이뤄낸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DC코믹스와 마블코믹스의 차이 한 가지. DC코믹스와 워너브러더스가 만든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에 비해 마블코믹스와 마블스튜디오의 아이언맨, 토르, 캡틴아메리카 등은 훨씬 인간적이고 고뇌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이 같은 세계관의 차이는 DC 히어로 영화와 마블 히어로 영화의 흥행 격차와도 무관치 않았다. 지난해 타계한 스탠 리 마블 명예회장은 스파이더맨, 헐크, 베놈 등 모든 영웅 또는 악당(빌런) 캐릭터에 인간적이고 나약한 모습을 부여한다는 점을 매우 강조했었다.

그러던 DC가 이번에는 조커라는 악당을 아예 찌질하게 환상에 젖어 사는 나약한 인간으로 표현했다. 조커가 뿜어내는 강력한 악의 기운은 엄청난 힘이나 초자연적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았다. 아무리 싸우고 죽이고 쓰러져도 크게 다치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언제 어떤 범죄를 저지를지 모르는 불안과 심리적 공포를 내뿜는 인간으로 표현했다. 태생부터 버림받고 다친 인간, 사회에서 소외된 나약한 인간이 빌런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영화적으로 표현했다. 영화의 색깔에 꼭맞춘 우울한 미장센, 톤과 음악은 예술을 소비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퍼펙트맨 스틸1
영화 ‘퍼펙트맨’
◇ 퍼펙트맨

언제부턴가 한국영화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 많았다. 적당히 폭력적이고 적당히 웃기면서 적당히 감동적이지 않으면 관중을 모으기 어려워보였다. 음식에 비유하면 단맛, 짠맛, 매운맛, 쓴맛, 신맛이 적절히 버무려져야 티켓이 팔렸고 거기에 교훈이나 메시지까지 담기면 사람들의 호응도 커졌다. 조폭이나 검사, 경찰 등이 단골로 등장하는 것도 굳이 비유하자면 매운맛, 쓴맛을 내기 위한 전형적인 시도로 보여졌다.

퍼펙트맨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잘 조합된 선물세트 같아 보였다. 조폭, 부자, 유머, 폭력, 휴먼 코드와 영상미가 모두 적정한 수준으로 잘 조화된 느낌을 줬다. 배급사들이 무난한 흥행을 예측했던 점도 이런 포인트에서였다. 하지만 그 선물세트가 돈을 주고 뚜껑을 열어볼 만한 궁금증과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CGV 관람객의 에그지수만 봐도 조커는 88%, 퍼펙트맨은 94%로 영화를 본 사람들은 퍼펙트맨의 만족도를 높게 평가했다. 초반부터 관람객 평가의 우세가 계속된 가운데 관심은 더욱 더 조커에 쏠렸고 완벽한 배우들이 열연한 완벽한 남자들의 이야기는 기대 이하로 소외됐다.

퍼펙트맨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가족과 우정, 의리, 탐욕 등을 다뤘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역시 조폭과 부자의 이야기를 통해 법과 양심의 간극을 다뤘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가지 의도와 메시지들이 상황들과 뒤섞이면서 공감력은 떨어졌다.

한국인의 연평균 영화관람 횟수는 약 4.2회로 전세계에서 인당 극장소비가 가장 많은 나라에 속한다. 누구나 한 번쯤 맛봤을 종합선물세트나 비빔밥은 식상하면 물린다. 아무리 단맛, 짠맛, 매운맛, 신맛을 잘 버무리더라도 새로운 접근과 창의적인 시도가 아니면 외면받기 십상이다.

한성대 교수·문화평론가

한줄평

: 종합선물세트는 그만, 예술의 맛을 달라!

평점 조커

★★★★★★★★★☆

퍼펙트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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