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쓸모있는 여의도 잡담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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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용보증재단 자기소개서 항목. 사진|김혜리 기자

[스포츠서울 김혜리 기자] ‘총 26개 문항, 도합 1만200자.’ 심심풀이로 풀어보는 ‘스무고개’가 아니다. 구직자가 회사에 문을 두드리기 위해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자기소개서 항목인데, 문항마다 정해진 글자수를 맞추다 보면 무려 1만자가 넘는 글을 써내야 한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반기 신입직원을 채용하고 있는 서울신용보증재단은 지난 15일 일반사무직급의 서류 합격자를 발표했다.

서류전형은 입사 지원 시 제일 먼저 거치는 과정이다. 여기서 자기소개서는 서류전형의 ‘메인 메뉴’로 일컬어진다.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공공기관으로서는 지원자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만을 얻을 수밖에 없다. 이에 자기소개서를 합격·불합격 판단의 척도로 삼기 마련이다.

하지만 구직자에 26개 문항을 요구한 서울신용보증재단의 자기소개서는 취업준비생(취준생)들 사이에 거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구직활동을 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구직자 평균 26개 기업에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준생은 한 해에 적어도 20개 이상의 자기소개서를 써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단 한 곳에 지원하려고 1만자 이상을 써내야 한다. 취업준비생 사이에서 “쓰면 읽기는 하냐”는 비아냥까지 쏟아졌다.

질문 항목도 취준생들을 울렸다. 통상 자기소개서가 요구하는 문항은 ▲지원동기 ▲장단점 ▲비전 ▲역량(지원 분야에 대한 준비) ▲과거 실패한 경험과 여기서 배운 점 ▲(다른 지원자들과의)차별성 등이다. 주로 지원자의 직무역량, 가능성, 의지 등을 알아보려는 질문으로 채워진다.

그런데 서울신용보증재단의 자기소개서 항목에는 지원자의 ‘조직이해능력’, ‘조직적합능력’, ‘공적(公的) 조직문화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부분’, ‘조직에 개선·보완이 필요한 부분’ 등이있다. 이에 취준생 커뮤니티에선 ‘조직에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라는 직원을 골라내는 ‘스핑크스식 문항’이 아니냐” “조직을 모르는 사회초년생에게 조직 얘기만 물어본다”는 볼멘 소리가 오가고 있다.

서울신용보증재단에 2년째 지원하고 있다는 취업준비생 A모 씨는 “지난해 공채에도 그랬다”며 “본인들 조직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왜 지원자에게 물어보는지 모르겠다”며 허탈해 했다.

신용보증재단은 담보력이 부족한 소기업·소상공인의 채무를 보증하라고 법까지 마련해 설립한 단체다. 기본적으로 서비스를 목적으로 설립·운영되는 조직이다. 하지만 자금조달이 급한 소기업에 ‘갑’처럼 군림하고 있다는 비판이 줄곧 제기되고 있다. 26개 항목, 1만200자는 소비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우위의 마인드를 그대로 보여주는 한 사례일 뿐이다.

kooill91@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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