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피겨 기대주 이해인
한국 피겨 여자 싱글 기대주인 이해인이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이지은기자] “그래도 재밌어서 피겨 선수 하지 않았을까요?”

이해인(14·한강중)은 엄연히 말하면 ‘연아 키즈’ 중에서도 2번째 세대다. 현역 시절 김연아는 두 차례 올림픽에 출전했는데, 이해인이 이를 생방송으로 본 건 2014 소치올림픽 뿐이다. 2010 벤쿠버올림픽 당시 5살에 불과했던 이해인은 당시에는 피겨라는 종목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만약’을 가정해보자. 김연아가 벤쿠버 대회에서의 금메달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기존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더라면, 집에서 아이스링크가 가까워서 취미로 피겨 주말 강습을 받던 이해인은 피겨 선수가 아닌 평범한 학생으로 지내고 있을까. 이 질문을 받은 이해인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어려워도 재밌었고, 타다보니까 더 재밌어졌다. 재밌어서 결국 했을 것 같다”고 바로 답했다.

김연아가 ‘레미제라블’로 세계선수권 정상 탈환에 성공했던 2013년, 엄마와 함께 아이스쇼를 찾은 이해인은 김연아의 연기를 실제로 보고 피겨 선수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연아 언니를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저렇게 탈 수 있나’하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점프 뛰는 것도 그렇고 스핀도 정말 빨리 돌았다. 나는 그 때 싱글이나 더블 점프를 뛸 수 있는 정도였는데, 당시에 보기에는 내가 절대 할 수 없는 동작들이었다”고 말하는 이해인은 현 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포스트 김연아’로 꼽히는 자원이다. 주니어 그랑프리 2개 대회 연속 우승, 파이널 출전, ISU 공인 200점 돌파 등 김연아가 시작한 한국 여자 싱글 스토리를 똑같이 써내려가고 있다.

[포토] 이해인, 요정의 춤사위~
이해인이 지난 13일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 실내빙상장에서 진행된 ‘2020 유스 올림픽 파견 선수 선발전’에 참가해 열연을 펼치고 있다. 태릉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 초등학생 이해인은 ‘피로골절’에도 연습 걱정부터 했다

핸드볼 선수 출신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이해인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었다. 계주에서도 마지막 주자를 맡을 만큼 달리기가 빨랐다.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신은 이해인은 그보다 더 빨리 나아가는 느낌에 쾌감을 느꼈다. 그는 “아이 때부터 넘어져도 그냥 웃고 말만큼 겁이 없는 편이었다. 점프를 하는 것도 그때는 별로 무섭지 않았다”며 “본격적으로 피겨를 시작하며 지상훈련을 하는데 달리기를 너무 오래 하더라. 좋아하는 달리기였지만 그게 힘들었다.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라 재밌게 했던 것 같다”고 밝게 웃었다.

마냥 즐거웠던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양발에 ‘피로골절’이 찾아왔을 때에는 생애 처음 느껴본 통증에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최종 급수를 따는 승급 심사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것까지만 소화한 후 한달 동안 쉬기로 결정했고, 꾹 참고 결국 따냈다. 하다보니 익숙해져서 생각보다 괜찮더라“며 “이 시간을 통해 자주 못가던 학교에 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오랜만에 같이 놀기도 해서 재미있었다. 그래도 그 기간에 연습을 못하면 친구들이 내 실력을 따라잡을까봐 걱정이 됐다”고 털어놨다. 될성 부른 떡잎의 악바리 근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포토] 피겨 기대주 이해인
한국 피겨 여자 싱글 기대주인 이해인이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 “아이돌 관심 없어요” 14세 소녀의 남다른 취향

이해인의 일주일 스케줄은 또래 친구들과는 다르다. 주중에는 아침에 지상 훈련, 점심 스케이팅, 저녁에는 재활로 하루가 꽉 채워져 있다. 주말이지만 토요일에도 스케이트를 신는다. 주6일의 빡빡한 훈련을 소화하면서도 ‘가끔씩은 친구들이랑 그냥 놀고 싶지 않느냐’고 묻자 “이 생활도 재미있어서 별로 놀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렇게 안 아프고 탈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고, 실력을 많이 끌어올린 만큼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언니, 오빠들도 있어서 자극이 되고 더 열심히 하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중학생 소녀들이 으레 열광하는 ‘아이돌 가수’에도 관심이 전혀 없다. 평소 노래를 자주 듣긴 하지만, 플레이리스트는 주로 뮤지컬 넘버나 영화, 드라마 OST가 차지하고 있다. 차에는 항상 읽는 책이 6~7권 정도 비치돼 있다. 이해인은 “친구들은 책상에 아이돌 사진을 붙여놓고 항상 아이돌 노래밖에 안 부른다. 난 가끔 듣는 노래는 있지만 딱히 좋아하는 그룹은 없다”며 “쉴 때는 뮤지컬을 관람하거나 영화를 보는 걸 좋아한다. 최근 읽은 책은 하상욱의 ‘서울시’다. 평소 판타지 장르와 시를 좋아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포토] 한강중 이해인, 혼을 담은 열연~
이해인이 13일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 실내빙상장에서 진행된 ‘2020 유스 올림픽 파견 선수 선발전’에 참가해 열연을 펼치고 있다. 태릉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이해인에게 ‘피겨스케이팅’이란?

이번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두 차례 우승을 차지한 이해인은 12월 초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리는 파이널 무대에서 전 세계 최고 유망주 5명과 최종 경쟁을 펼친다. 여기서까지 금메달을 따낸다면 ‘피겨퀸’의 계보를 이을 1순위가 된다. “6차 대회가 끝난 후 엄마가 그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며 웃음을 터뜨린 이해인은 “결과가 계속 잘 나오고 관심을 받다 보니 더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 잘 준비해서 남은 기간 시즌 베스트와 개인 베스트를 동시에 세우고 싶다”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까지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이해인에게 피겨는 과업이 아니다. 그는 “짜증날 때도, 화날 때도 있지만 나를 즐겁게, 재밌게, 자유롭게 해주는 운동”이라는 말로 피겨를 정의했다. 이어 “여자 싱글은 페어나 아이스댄스가 아닌 혼자 하는 종목이다. 바깥 세상에서 떨어져서 얼음판 위에서만 느끼는 자유로운 느낌이 좋다. 앞으로도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스케이트를 타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목표를 밝혔다. 아는 사람보다는 잘하는 사람이, 그보다는 즐기는 사람이 무서운 법이다. 이해인의 미래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number23tog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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