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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로봇랜드가 개장했다. 미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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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 테마파크’ 창원 로봇랜드

[창원=글·사진 | 스포츠서울 이우석 전문기자] 어린시절 내 상상 속 친구는 죄다 로봇이었다. 친근했다. 앞에 로봇(로보트)이란 이름이 들어가는 태권브이(V)는 물론 깡통로보트, 철인 캉타우의 활약에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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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물고기같은 로봇 물고기가 유영하고 있다.

TV는 일본에서 온 로봇이 점령했지만 그들의 정확한 국적도 모른 채 마냥 좋아했다. 마징가 제트와 그 형제인 그레이트 마징가, 그랜다이저, 아톰, 그로이저 엑스, 캐산, 심지어 동짜몽(도라에몽)까지 모두 ‘로보트’였다. 아! 캐산은 굳이 구분하자면 사이보그였다. 로보캅처럼 인간의 신체일부를 기계로 바꾼 것을 사이보그라 분류한다. 참고로 중국에선 로봇을 ‘지키런(机器人)’이라 부르는데 기계인간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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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랜드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가기 좋다. 둘다 신나해 한다.

시간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됐지만 로봇은 자동차까지 결합된 로보카 폴리, 터닝메카드, 범블비 등 대를 이어가며 어린이의 친구로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로봇은 함께 성장한 어른에게도 여전히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스타워즈의 친근한 아스트로메크 드로이드 R2D2와 안드로이드 C3PO부터 잔인한 터미네이터(T-800)와 액체금속로봇 T-1000까지 사랑을 듬뿍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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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로봇랜드는 로봇에 대한 학습을 하고 직접 프로그래밍해보는 공간도 있다.

한동안 로봇 대신 걸그룹을 마음에 두고 살던 2019년 9월 대한민국 정밀공업의 메카 창원시에 로봇랜드가 생겼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만인의 친구 로봇을 테마로 한 테마파크라니 귀가 솔깃했다. 특히나 창원에 놀러간 부자(父子)지간이라면 로봇과 관련한 추억을 한 보따리 품고 돌아올 수 있을 듯했다. 가을을 맞아 ‘신상’ 테마파크 로봇랜드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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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로봇랜드에는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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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같은 재미의 즐길거리로 가득한 창원 로봇랜드
◇ 따끈따끈 ‘신상’ 테마파크, 로봇랜드

로봇랜드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일대 126만㎡에 약 7000억원을 들여 만든 세계 최초의 로봇테마파크다. 민간자본을 유치해 각종 전시·체험시설, R&D센터, 컨벤션센터, 로봇테마 놀이공원 등으로 구성한 로봇 복합 문화공간이다. R&D센터에는 로봇 연구기관과 기업 26개사가 들어오고 테마파크 부분은 서울랜드가 위탁을 받아 운영을 하고 있다.

로봇랜드에 들어서는 순간 기대 이상의 규모에 깜짝 놀랐다. 웬만한 중대형 복합놀이동산이 산중에 떠억하니 들어섰다. 직선 도로도 건설 중이라 접근성이 대폭 개선될 전망이다. 입구를 지나면 글자 그대로 로봇세상이다. 초대형 로봇 가디언이 예비군처럼 ‘무릎앉아’ 자세로 버티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태권브이와 조종사 훈이처럼 마주 서서 사진을 찍는 포토존으로 썩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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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노애락 표정을 지을 줄 아는 휴머노이드 로봇.

롤러코스터, 후룸라이드 등 보기만해도 꺄악 소릴 지르게 되는 근사한 어트랙션도 많다. 하지만 이 곳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바로 콘텐츠다. 흥미롭고 다양하게 구성한 콘텐츠를 통해 로봇에 대한 개념을 새로 정립하게 된다. 산업에 쓰이는 로봇, 미래 로봇, 로봇의 역사와 현재 등에 대해 한눈에 알 수 있을 뿐더러 재미있기도 하다. VR과 5D 등 어트랙션을 접목한 전시물을 둘러보다보면 뭔가를 ‘타지’않아도 시간이 쏜살같이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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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로봇랜드의 어트랙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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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랜드에는 어트랙션 시설도 많다.

사실 우리가, 아니 내가 알고 있던 ‘로켓주먹을 장착하고 유체역학을 무시한 채 하늘을 날아다니던 로봇’이 전부가 아니었다. 삼엽충처럼 기어다니며 바닥을 쓸고 닦는 청소기, 전자회로를 장착해 프로그래밍대로 밥을 짓는 전기밥솥,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캔을 떨어뜨리는 자판기 역시 로봇의 범주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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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랜드 앞을 지키고 앉은 초대형 로봇 가디언.

오랜시간 자동차 조립공정에 사용된 제조형 로봇을 만날 수 있는 로봇 팩토리, 우주에 대한 로봇의 도움을 5D영상으로 들여다보는 윙 오브 코스모스 등 즐길거리부터 로봇사피언스, 로보폴리스, AI해피봇, 마린로봇 등에서 다양한 로봇의 세계를 알 수 있다. 특히 로봇스쿨에선 청소년과 대학생, 일반인으로 구분된 수준별 로봇교육을 체험할 수 있다. 로봇미래관에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드론 집단비행을 보고, 생동감있는 희노애락의 표정을 짓는 휴머노이드형 로봇(에버5)을 만나 향후 인류와 함께 생활할 지도 모르는 ‘로봇 가족’을 미리 체험할 수 있다. 키즈존이 넓어 가족형 방문코스로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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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해양공원에 구구타워가 우뚝 섰다.

◇ 아찔한 즐거움, 해상 짚트랙과 엣지워크

새로 생긴 것은 로봇랜드 뿐만이 아니다. 짚트랙도 생겼다. 그것도 국내 최장(最長), 최고(最高)의 해상 짚트랙이다. 진해 해양공원에 위치한 창원 짚트랙 역시 바로 지난주 개장한 ‘따끈한 신상’ 레저시설이다.

음지도 99m 높이 구구타워 꼭대기 층에서 와이어 한 가닥에 몸을 의지하고 소쿠리섬까지 무려 1.4㎞를 날아간다. 수퍼맨이 따로 없다. 돌아올 때는 대기하고 있던 제트보트를 타고 해양공원으로 복귀한다. 1분도 채 안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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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구구타워에서 바라본 진해 앞바다 풍경, 멀리 거제도까지 눈에 들어온다.

“뭐 돈내고 유격을 받냐?”는 상남자도 있겠지만 사실 고생은 사서라도 하는 것이다. 원래 하와이 등 폴리네시아 원주민들이 나무와 나무를 건너는 수단으로 사용하던 짚트랙은 남미 코스타리카에서 처음 레저 수단으로 시작한 이래 스릴을 즐기는 이들로부터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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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99m 이상 높이에서 바다를 가로질러 날아가는 짚트랙.

신체를 결박, 고정하는 하네스를 착용하고 도르레에 의존해 중력을 이용해 하강한다. 하네스에 철선을 고정하고 숨을 고르다 아래로 뛰어내리면 알아서 내려간다. 아득한 바다가 발 아래로 펼쳐지는 가운데 최고 시속 60~80㎞로 쏜살같이 날아가지만 겁낼게 없다. 안전도가 ‘5’ 정도로 휴식 및 식사(2.5)의 2배, 산행(16)의 30%에 불과하다.축구·야구·테니스는 30이다. 아! 물론 짚트랙 측의 자료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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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타워의 또다른 명물 엣지워킹.

아이스크림 콘이라도 팔 것 같은 구구타워는 바닷가 언덕에 우뚝 솟은 건물로 수려한 경치를 자랑한다. 짚트랙 아래엔 엣지워크가 있는데 사실 이게 더 무섭다. 해발 94m 지점에서 타워 외벽으로 나가 돌아다니는 산책(?) 코스다. 둘레는 고작 62m이지만 짧게 느껴지진 않는다. 바닥은 얇은 철망이라 그 사이로 까마득히 바닥이 내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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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하다.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다.

난간은 없다. 웬만한 강심장이라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여기서도 하네스를 착용하고 안전바에 고정했다지만 무섭긴 마찬가지다. 발바닥이 오그라들어 종잇장이라도 집을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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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구구타워는 그저 전망대로도 훌륭하다.

◇ 유구한 전통 숨쉬는 마창진

창원의 미래를 들여다 본 로봇랜드와 현재의 두려움을 실감한 구구타워를 겪었으니, 이번엔 창원의 과거로 간다.

마창진(마산·창원·진해)는 유구한 전통과 스토리를 품은 지역이다. 마침 지난 16일은 부마항쟁이 일어난지 꼭 40년이 된 날이다. 1979년 10월16일 부산에서 민주화 시위가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당시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유신독재 체제가 절정에 달했던 때. ‘유신철폐’를 외치며 수만 명이 거리로 나섰다. 18일엔 불길이 마산으로 번졌다. 경남대생이 선봉에 나섰고 시민들이 뒤를 따랐다. 독재정권은 비상계엄령과 위수령을 내리고 공수부대를 투입하며 탄압했다. 닷새간 거세게 타오른 부마항쟁 며칠 후 10·26이 일어나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되며 군사독재가 막을 내리는가 싶더니 다시 쿠테타가 일어나 민주화의 꿈은 무기한 연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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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신라초밥. 근 5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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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초밥의 시그니처 김치초밥.

하지만 부마항쟁 정신은 이듬해 1980년 5·18 민주화 운동과 1987년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부마항쟁 30여년 전 마산에선 3·15 부정선거에 맞선 저항 시위가 최초로 일어났다. 이는 열사의 죽음과 4·19혁명으로 연결됐다. 그래서 ‘부산과 마산에서 시위가 일어나면 정권이 뒤집힌다’는 말이 생겼다. 이처럼 부마항쟁은 우리 현대사에 끼친 족적이 지대했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정부는 부마항쟁 40주년을 맞은 올해에야 비로소 국가기념일로 선포했다.

◇ 오감으로 즐기는 창원의 맛

항쟁의 중심지였던 마산 창동거리를 걸었다. 뜬금없이 허기가 진다. 이곳엔 오래된 노포가 많다. 창동 신라초밥은 1977년에 문을 열었다. 옛날 초밥집의 분위기가 그대로다. 깔끔하게 빚어주는 초밥은 샤리(초밥에 사용되는 밥)며 네타(초밥용 식재료)가 이미 일본의 ‘스시’가 아니다. 우리의 입맛이 됐다. 김치로 싼 김치초밥이 시그니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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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의 옛 버스차고지를 카페로 개조한 브라운핸즈.

건너편에도 돌우동과 메밀국수로 유명한 만미정이 있다. 허름한 분식점 분위기지만 노포의 기품이 서려있다. 보글보글 끓는 돌우동은 시원한 국물에 쫄깃한 면, 그리고 쫀쫀한 어묵이 들어있어 맛있고 꽤 든든하다. 판메밀로 나오는 메밀국수 역시 진한 육수맛이 일품이다. 대나무가 아닌 플라스틱 발이 왠지 정겹다.

1971년 창업한 창동복희집 떡볶이도 오랜시간 입맛을 사로잡은 곳이다. 쌀떡볶이와 팥빙수를 주문했다. 쫄깃하고 달콤한 떡볶이가 입에 짝짝 붙는다. 팥빙수는 정직하다. 얼음 위에 오직 팥만 얹었다. 이집은 직접 쑨 팥에 모든 정성을 쏟는다. 그래서 흔한 망고도 인절미도 심지어 연유와 미숫가루도 없다. 가수 윤종신이 알면 곡을 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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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 만미정, 돌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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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붕장어구이 옛영도장어.

오동동으로 이어지는 골목엔 통술집이, 어시장 쪽엔 복국집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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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보타닉 가든에 핑크뮬리가 가득 피어 가을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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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선학곰탕 건물은 자체가 문화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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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선학곰탕

진해에는 선학곰탕이 있다. 건물 자체가 근대문화재다. 일제강점기 해군병원장이 살던 한옥 기왓집을 곰탕집으로 바꿔 영업중이다. 친척집에 와서 밥을 얻어먹는 분위기다. 맛은 친척 정도의 솜씨가 아니다. 진한 국물이, 부드러운 수육이 참 좋다. 진한 국에 밥을 말아 깍두기를 얹어 훌훌 먹으면 여행의 피로가 깔끔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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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제과의 명물, 벚꽃빵

이걸 한번에 다 먹었냐고? 마산 특산물 붕장어구이와 빵집 노포 고려당(1959년 창업), 진해제과 벚꽃빵 얘긴 자세히 하지 않겠다. 창원 가을 여행은 혀와 눈과 귀, 오감의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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