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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제공 |산업은행

[스포츠서울 유경아 기자]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금융권에서 ‘진보성향 학자’ ‘원칙주의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금융 선비’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그는 깐깐하고 꼿꼿하다.

그런 이 회장이 최근 양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합병해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청와대와 금융당국을 비롯한 금융권 전반에 파장을 일으켰다.

이 회장은 지난 10일 취임 2주년을 맞아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될성부른 기업에 집중적인 지원을 하기 위해선 정책금융이 분산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정책금융도 구조조정을 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조만간 정부에 산은과 수은의 합병을 건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견’임을 강조하며 정부는 물론이고 산은 내부에서도 검토 중이지 않은 사안이라 토를 달긴 했다. 그러면서 농담조로 “원래 수은 부지가 우리 땅이었다고 한다. 다시 찾아와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 산은과 수은은 서울 여의도공원 옆에 나란히 위치해 있다.

이 회장의 이 같은 발언에 청와대와 정부, 금융당국 등은 모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통합 당위성에 대한 사적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현재 상황에서 양 은행의 합병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청와대 쪽에서 두 은행의 합병을 논의조차 하지 않을 거란 얘기가 흘러 나온다. 임기 중 대형 금융공기업의 통합 작업이나 조직개편 등이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란 분석이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17일 “산은과 수은은 고유 핵심 기능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2013년 마련한 정책금융기관 역할 재정립 방안에 따르면 산은은 대내 금융 특화기관이고 수은은 공적수출신용기관(ECA)”이라고 선을 그었다.

지난달까지 수은 행장을 역임하다 최근 금융위원회 수장으로 취임한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도 “산은과 수은의 합병은 이동걸 회장의 사견일 뿐으로, 논란이 될 이유가 없다”면서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 회장이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가 굳이 2주년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합병 화두’를 던진 건 ‘선택과 집중’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소신 때문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정책금융이 여러 기관에 분산되는 것보다 산은과 수은의 합병으로 훨씬 강력한 정책금융기관을 탄생시켜야 한다는 지론이라는 것.

금융권에선 그의 이런 소신 발언에 대해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다. 이 회장은 산은 회장을 맡은 후에도 본인의 원칙을 내세워 진통을 겪고 있던 기업 구조조정 등을 해결해 왔기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 금호타이어, STX조선해양 구조조정 등이 대표적이다. 이때 ‘저승사자’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금융연구원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당시 이명박 정부의 은산분리 완화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기업의 ‘독자생존 가능성’을 현재까지도 자신의 원칙으로 강조하며 구조조정 작업에 임한 그는 2002~2003년 하이닉스 사외이사로 활동하던 당시에도 해외매각에 반대 입장을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공식석상에서도 정권에 반하는 발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산은과 수은의 합병은 사실 매 정권마다 논의됐던 해묵은 과제”라면서 “이 회장은 이번에도 학자로서 자신의 소신을 드러냈을 뿐이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나오던 얘기를 다시 수면 위로 올려 해결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yook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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