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와 이야기 나누는 롯데 공필성 코치[포토]
지난 3월 공필성 당시 코치와 이대호가 시범경기를 앞두고 대화하는 모습. 강영조기자

[잠실=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베테랑이 할 여건을 만들어주되, 잘 안되면 스스로 다시 생각하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올여름 롯데 소방수로 투입된 공필성 감독 대행은 베테랑 중용을 화두로 한 자율 야구를 내세웠다. 채태인 등 이전까지 1군에서 존재감이 사라진 베테랑이 부활의 날갯짓을 하는 데 큰 작용을 했다.

공 감독 대행이 이같은 화두를 내건 건 당장 팀의 변곡점을 바라는 게 아니라 내년 시즌 그 이상을 그렸기 때문이다. 단장 공석 등 내부 책임자의 부재 등과 맞물려 최근 트레이드 시장에서도 이렇다 할 결과를 얻지 못한 롯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게 공 감독 대행이다. 롯데의 새 비전을 꾸리려면 전반기 부진의 늪에 빠졌던 베테랑의 역량을 끌어내고 팀 분위기를 다지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베테랑’은 아니다. 그는 최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베테랑이 제일 외롭다. 그들의 장래도 생각해줘야 한다”면서도 “그렇지만 그들은 ‘무조건 할 수 있다’고만 생각한다. 그러면 팀이 안 된다”면서 기회를 주되, 컨디션과 경기 흐름에서 밀리면 책임 있는 자세로 팀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대접을 받는 만큼 책임감을 더욱 품으라는 의미다.

이같은 그의 지도 철학이 부임 이후 가장 적확하게 드러난 게 지난 17일 잠실 두산전이다. 팀이 0-2로 뒤진 3회 말 1루수 이대호가 상대 선두 타자 정수빈의 평범한 땅볼을 뒤로 빠뜨렸다. 이때부터 롯데 선발 장시환이 크게 흔들리면서 마운드에서 내려갔고 바통을 넘겨받은 조무근까지 무너지면서 롯데는 3회에만 5점을 더 내줬다. 그리고 공 감독 대행은 4회 수비를 앞두고 이대호 대신 정훈을 투입했다. 겉으로 보기에 누가 봐도 ‘문책성 교체’로 해석할 만했다. ‘이대호 충격파’는 다음 날 두산전을 앞두고도 취재진의 묘한 관심거리였다. 공 감독 대행은 이대호 교체는 일시적 충격 요법 혹은 채찍이 아님을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슬쩍 미소짓더니 “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면서 “문책성이라기보다 경기 흐름이나 그런 상황(어이없는 실수)이 발생한 가운데 빼주고 싶었다. 어린 선수에겐 그런 교체가 큰 자극이 될 수 있으나 베테랑에겐 또다른 의미”라고 말했다.

공 감독 대행의 말대로 경험이 적은 선수에게 이같은 교체는 감독의 불호령과 맞닿아 있다.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공 감독 대행은 ‘이대호를 믿고’ 이대호를 뺐다. 그는 “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여겼으면 한다. 내가 선수에게 강조해온 건 강한 팀이 되려면 역할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수 개인보다 팀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였다”면서 “뭉친 팀이라는 것을 보이려면 세심한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면서 이대호 교체가 선수 본인에게 책임 의식을 심으면서 팀 결속력을 꾀하는 장치였음을 강조했다. 공 감독 대행은 “대호에겐 (교체 직후) 별 얘기를 안 했다. 베테랑은 얘기하지 않아도 다 안다”고 말했다. 이대호는 이날 평소와 다름없이 경기 전 밝은 표정으로 타격 훈련을 했다. 공 감독 대행은 4번 지명 타자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베테랑 중용 속에서 책임감을 심기 위한 칼을 뽑을 수 있는 게 공필성 야구라는 것을 각인시키고 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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