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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내 음악 인생 25년을 되돌아보면, 파도가 쉴 새 없이 몰아쳐온 거 같다. 다시 태어난다면 이런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1994년 그룹 ‘닥터레게’ 멤버로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뎠던 바비킴. 25년을 돌아보며 그가 처음 떠올린 단어는 ‘파도’였다.

그의 말대로 그의 음악 여정은 굴곡과 롤러코스터 자체였다. 레게 그룹의 래퍼로 데뷔해 TV 영어 보조 선생님으로 어린이들에게 눈도장을 찍던 시절을 거쳐 아이돌 그룹의 랩 세션으로 무대 뒤에서 움직이던 시기도 있었다. ‘래퍼 1세대’인 그는 국내 힙합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가 싶더니 2004년 가수로 자신의 목소리를 널리 알린다. 전성기가 이어지는가 싶었지만 2014년 ‘기내난동사건’으로 끝모를 추락도 맛봤다.

‘소울대부’, ‘랩할아버지’ 등 다양한 별명으로 불리며 다양한 흑인 음악 장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바비킴을 만나 가수 생활 25주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2004년 솔로 1집을 발표하게 된다.

윤미래를 통해 알게된 현 스타크루이엔티 전홍준 대표가 내 음악을 제작해 보고 싶다고 나를 계속 설득했다. 고민하다가, 가수로서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앨범을 내게 됐다.

전 대표에 앞서 내게 노래를 잘한다고 말한 사람이 윤미래 뿐이었다. 이전엔 랩이 더 잘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냉정하게 말해 노래도 잘 못했고, 발음도 이상했던 때였다. 전 대표가 ‘개성의 시대가 올 거다’라며 설득했다. 실제로 그 무렵 방송에서도 개성 있는 인물들이 화제를 모았었다. 어떤 면에선 나도 흐름을 잘 탔던 거 같다.

-‘고래의 꿈’ 등이 실린 솔로 1집은 그야말로 대박이 난다.

완전한 터닝포인트였다. 무명에서 벗어난 시기였다. 한번에 뜬 게 아니라 인기가 서서히 올라갔다. ‘고래의 꿈’으로는 한번도 1위를 하지 못했다. 음악도 특이하고, 가수도 특이하고, 목소리도 특이하니 매니아 층에게 먼저 화제가 된 뒤 대중적인 사랑이 천천히 따라왔다.

앨범이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데, 지금도 팔린다. 이십만장 조금 넘게 판매된 걸로 안다. 2003년 무렵 MP3가 생긴 뒤 앨범 판매량이 급감하던 시기에 나온 앨범치고는 나름 선전했다. 2003년 무렵까지의 백만장이 이후엔 60~70만장과 맞먹는다는 평가를 받던 때였다.

‘고래의 꿈’이 터진 뒤 행사를 어마어마하게 다녔다. 하루에 행사 3개를 뛰기도 했다 힙합 클럽도 다니고, 대학교 축제도 다니고, 일반 대기업 행사도 다녔다. 날라다니던 때였다.(웃음) 당시의 나는 힙합씬에서도, 대중에게도 모두 사랑받았다.

-2009년 발표한 ‘사랑.. 그놈’은 바비킴 최고의 히트곡이다.

힙합 쪽으론 ‘부가킹즈’ 활동을 해나가며 가수로서는 드라마 OST를 많이 불렀다. 소속사에서 ‘발라드 앨범을 내보자’고 했는데 난 자신이 없었다. 내가 김범수처럼 노래를 잘하는 게 아니니까. 상의 끝에 스페셜 앨범 ‘러브 챕터.1’을 냈는데 그때 ‘대박’이란 말의 뜻을 알게 됐다. 콘서트를 하는데 티켓이 10분만에 다 나가더라. 17개 도시 전국투어가 2년 연속 매진이었다.

내가 만든 노래가 아니라 박선주의 곡이었는데 이 노래는 일종의 징크스이기도 하다. 내 다음 노래가 자꾸 ‘사랑.. 그 놈’과 비교되니까.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음악을 만들 때 ‘사랑.. 그 놈’을 한번 이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게 내게 에너지를 준다. 아마 다음 노래가 그만큼 또 히트를 했다면 내가 교만해졌을 것이다. 다행히 그렇진 않았다.

-2011년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찾아왔다. 그해 4월 건물 2층에서 추락 사고를 당해 척추를 다치는 대형 사고가 났고, 8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며 대중적으로 다시 호응을 얻는다.

2011년 사고 이후 공연이 모두 취소가 됐다. 방송 출연도 어려웠고, 덩달아 회사도 어려워졌다. 회사에 ‘미안하다. 나를 용서해 달라’고 하니 ‘그럼 나는 가수다에 나가라’고 하더라. 솔직히 내 목소리가 경연에 어울리진 않으니 일찍 탈락하게 되리라 믿었는데 5개월이나 출연했다.

그땐 일주일이 이틀처럼 짧게 느껴졌다. 매주 프로들이 자존심을 걸고 경쟁했다. 대단한 방송이었다. 늘 마지막 무대란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니 겸손해지더라.(웃음) 방송을 마치고 6개월 후쯤 사석에서 윤민수를 만났는데 보자마자 서로 껴안았다. 출연자들끼리 끈끈한 우정이 생겼다.

-2014년 ‘기내 난동 사건’이 일어난다. 올해 5년만에 컴백한 이후 관련 질문을 많이 받게 되지 않나.

공백기, 자숙기간을 거친 뒤 ‘사건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도 많을 테니 해명을 해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해명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예인으로서 사고를 쳤고, 대중에게 심려를 끼쳤다. 죄송하다. 내 책임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전부다.

자숙할 때는 5년간 대중에게 잊혀져 관련된 질문을 받지 않으니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컴백 후 계속 그 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으니 잘잘못 여부를 떠나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로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5년의 자숙기간 동안 뭘 했나.

3년간은 아예 음악을 멀리 했다. 노래도 안 들었다. 처음엔 많이 힘들었다. 뭔가 해명하고 싶기도 했는데, 내가 말하면 더 시끄러워지니까 입을 닫았다. 내 책임이니까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신 살림살이에 관심을 가졌다. 요리에 푹 빠졌다. 골프도 하고, 등산도 했다.

-40대 초중반, 사회적으로나 가수로서 전성기일 시기에 공백기를 갖게 됐다.

고맙게도 띄엄띄엄 행사가 들어왔다. ‘아직 살아있구나’ 생각하며 이따금 무대에 올랐다. 경제적으로는 쉽지 않았지만 절약하면서 살았다. 어쩔 수 없지 않나.

5년간 쉬며 ‘겸손하게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주변 사람들이 다 내 편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사건 전까지는 나만 잘하면 모두 내 편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늘 내곁에 있는 내 가족, 소속사 식구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됐다. 2003년부터 한 소속사에 몸담고 있다. 그분들을 위해 노래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최근 컴백 앨범을 냈는데 타이틀곡 ‘왜 난’이 화제가 되진 않았다.

새 앨범 ‘스칼렛’으로 컴백했는데 노래보단 내 컴백 자체가 화제가 된 거 같다. 앨범은 묻힌 감이 있지만 1년 동안 열심히 만든 작업물의 사운드, 음악적 연구의 성과가 너무 자랑스럽다.

-바비킴의 음악 인생을 되짚어 보면 전성기보다 힘든 시기가 더 많았다. 잘되면 어김없이 위기와 공백기가 찾아왔다.

내 음악 인생 25년을 되돌아보면 계속 파도가 몰아친 거 같다. 다시 태어난다면 이런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왜 내가 음악하는 걸 반대했는지 알겠다.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않나.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다른 걸 할 순 없을 것이다. 내가 가진 재능은 오직 음악 뿐이니까. 25년간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때 그때 매 순간엔 그게 고생인지 몰랐다. 당시엔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고생이었던 거다.

-힘든 시기를 보내는 젋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누군가 고민 상담을 하면 ‘네가 가진 재능이 뭐냐. 너 잘났어?’고 묻는다. 그리고 그 사람의 눈을 본다. 눈빛이 흔들리면 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가진 신념과 의욕이 확실하다면 고생을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꿈은 운좋게 일주일 후에 이뤄질 수도 있지만, 나처럼 10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이뤄질 수도 있다. 그 시간을 버티려면 자신감,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음악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나.

25년간 단 한순간도 음악을 포기한 적이 없다. 가수의 꿈을 접으려 한적은 있다. 2004년 ‘고래의 꿈’을 내기 직전이다. 그 앨범이 잘 안됐다면 나는 무대 뒤에서 작곡, 프로듀싱을 열심히 했을 것이다.

왜 포기하지 않았냐고? 난 내가 가진 재능을 알았다. 아버지가 반대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난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알았다. 방황하던 시기에도 내가 뭘 하면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지 알았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해야 훌륭한 가수, 연기자, 연예인이 될 수 있다.

내 직업을 좋아하고, 내가 얼마나 소중한 재능을 갖고 있는지 알기에 이빨이 다 빠질 때까지 노래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내 재능을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인기는 사람을 거만하게 만들고, 나도 한때는 거만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8월 23~24일 서울에서, 9월 7일 부산에서 콘서트를 한다. 신곡도 하지만 팬들이 사랑해준 여러 노래를 부르는 무대가 될 것이다.

-뮤지션 바비킴을 대표하는 노래는.

작곡가로서 대표곡은 ‘고래의 꿈’이다. 그전에 10년 동안 활동하다 드디어 내 음악, 내 목소리를 찾게된 계기였다. 대중에게 바비킴을 소개한 노래이고, 처음으로 사랑이란 걸 받아봤다. 내가 음악하는 걸 반대하던 아버지가 트럼펫 피처링 해준 노래라는 의미도 있다. 보컬리스트로는 MBC ‘하얀거탑’ OST였던 ‘소나무’가 의미있는 노래다. 드라마에 많이 안나왔는데 노래가 알려져 놀라웠다. 그 노래의 흐름이 ‘사랑.. 그 놈’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보컬리스트로서 새로운 도전을 했던 곡이다.

-앞으로 음악적 목표는.

지금까지 음악적으로 하고 싶은 건 다 해봤다. 앞으로 조금 음악적으로 상상력을 더 키워서 특이한 곡을 써보고 싶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소울이 깊어지는 가수가 되고 싶다.

monami153@sportsseoul.com

사진 | 스타크루이엔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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