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성
은퇴 후 유소년 지도자로 나선 황진성. 이용수기자

‘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이용수기자]창의적인 패스와 정확하고 강력한 킥을 자랑했던 K리거 ‘황카카’, 모두가 황진성(35)을 그렇게 불렀다. 드리블부터 패스, 골 결정력 등 모두 일품인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 히카르도 카카에 빗대어 붙여진 황진성의 별명이다. 그는 지난 시즌까지 강원FC에서 활약하며 매 시즌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황카카’의 건재함을 보여줬던 황진성은 지난 3월 은퇴를 결정하고 유소년 지도자의 삶을 선택해 걷고 있다.

K리그를 대표하는 미드필더였던 그는 이제 ‘황카카’가 아닌 ‘유소년 지도자’ 황진성으로 불리고 있다. 포항과 전남, 강원, 대구, 인천 등에서 뛰었던 선배 강용의 축구교실에서 유소년 지도자로 제2의 삶을 한 걸음씩 떼는 중이다. 이달 오픈 예정인 서울 강서구의 ‘K리거 강용 축구교실’ 3호점을 담당하게 될 황진성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부터 축구교실을 운영하는 등 노하우를 익히며 사회 생활을 다시 배우고 있다. 선수가 아닌 새로운 삶을 즐기고 있는 그를 만났다.

◇54골-67도움, ‘황카카’의 자랑스러운 기록

불과 지난 시즌까지 K리그 무대에서 활약했던 만큼 ‘황카카’를 기억하는 축구팬이 많다. K리그 통산 338경기 54골 67도움을 기록한 황진성은 지난 2017년 김현석, 신태용, 김은중, 데니스, 이동국, 에닝요, 몰리나, 염기훈 등에 이어 아홉번째로 50(골)-50(도움) 클럽에 가입했다. 은퇴 결정 전까지 몸상태가 문제 없어서 한 시즌 더 뛰었다면 60-60 클럽 도전도 산술적으로 가능했다. 60-60 클럽은 황진성을 비롯해 김현석, 김은중,데니스를 제외한 5명만 이름을 올렸다.

황진성
2012 하나은행 FA컵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준결승 당시 경기 시작 3분 만에 선제골을 터트린 황진성.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황진성은 “아쉽다. 내가 더 뛰지 못해 아쉽기보다는 그 전에 경기에서 날린 수많은 찬스들이 생각난다. 골대 바로 앞에서 다른 데로 찬 것도 있고 골대를 맞힌 것도 있고 엄청 많다. 그 중 몇개만 넣었어도 60-60 클럽은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50-50 클럽도 만족스럽고 대단한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기록을 위해 2부리그로 내려가서 더 뛰고 싶진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자신의 기록에 만족했다. 지난 2003년 프로 데뷔 후 2013년까지 11년간 포항에서 프로 생활을 했다. 그가 포항 유니폼을 입고 기록한 공격포인트는 105개(47득점 58도움)로 구단 역대 가장 많은 공격 포인트다. 황진성은 “50-50 클럽 기록도 뿌듯하지만 포항 최다 공격포인트 기록을 가지고 있는 게 가장 자랑스럽다”고 웃었다.

황진성
2012년 호주와의 평가전에 선발로 나선 황진성. 강영조기자 kanjo@sportsseoul.com

◇영광의 순간, 태극마크와 우승컵…그리고 행복했던

시간

굵직한 기록을 남긴 스포츠 스타들은 저마다 영광의 순간을 지니고 있다. 황진성은 개인적인 영광과 팀의 영광으로 나눠 기억하고 있었다. 팀의 영광은 그가 수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린 포항 시절 기억이었다. 황진성은 지난 2012년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을 당시 선발돼 두 차례(잠비아전, 호주전) A매치를 뛴 경험이 있다. 그는 “첫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 자랑스러웠다. 애국가를 듣는데 느낌이 묘했다. 2경기 밖에 뛰지 못해 아쉬웠다. 보여주고 싶던 것을 운동장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한골 시원하게 넣고 싶은데 골대를 맞히고, 돌파도 마음대로 안 되고 아쉬웠다. 간절하게 원했던 기회가 찾아왔는데 내 마음대로 안 되니 답답했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황진성에게 태극마크를 달고 뛴 경험은 잊지 못할 기억이다. 그는 “태극마크는 내가 열심히 한 것을 보상받은 느낌이다. 축구선수로서 대표팀에서 뛰어봤다는 것만으로도 개인으로 봤을 때 영광”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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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현대오일뱅크 K리그 대상’에서 베스트 11 MF부문을 수상한 뒤 소감을 말하는 황진성. 홍승한기자 hongsflim@sportsseoul.com

황진성의 또 다른 영광은 포항 시절 들어올린 7차례 우승컵(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1회, 피스컵 1회, K리그 2회, FA컵 3회)이었다. 포항 역대 가장 많은 공격 포인트를 남겼듯이 그는 일명 ‘스틸타카’로 불렸던 포항의 핵심 멤버였다. 황선홍 감독의 ‘쇄국축구’가 흥행하던 2012년에는 12골 8도움으로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고 K리그 베스트 11에도 선정됐다. 황진성은 당시 성과에 대해 “동료들과 다같이 이뤄낸 결과물이어서 기뻤고 영광스러웠다”고 평가했다.

선수 시절 기억 남는 순간을 꼽을 때는 행복했던 시간도 있다. 황진성은 지난 2016년 12월 강원으로 이적하면서 최윤겸 현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과 동고동락했다. 함께한 시간이 1년도 안 되지만 선수 생활 중 ‘행복했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최윤겸 감독은 선수들이 감독을 위해 뛰게 만드는 지도자다. 선수들을 인간적으로 대하고 배려해줬다. 선수들에게 잘못된 언행을 하지 않는 분이었고 선수를 존중했다. 그래서 최 감독은 내가 존경하는 지도자”라고 설명했다.

황진성은 당시 챌린지(2부)에서 승격한 강원에서 정조국, 이근호, 김승용, 오범석 등을 비롯한 검증된 노장들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최 감독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하나로 뭉쳤다. 그러나 여러 선수들이 모이다 보니 호흡을 맞추는데 시간이 걸렸다. 최 감독께 좋은 성적을 안겨 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만약 최 감독께서 자진해서 나가시지 않았다면 2018년 좋은 결과를 보여드렸을 것”이라고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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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공격 포인트 제조기 ‘황카카’ 어떻게 만들어졌나

황진성은 그의 별명 ‘황카카’처럼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였다. 드리블, 패스, 킥이 남들과 달랐다. 포철고 1학년 당시 포항의 지원으로 경험한 브라질 유학 1년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는 “축구선수였던 아버지(실업축구 서울은행에서 활약했던 황병철)에게 어린 시절 기본기를 제대로 배웠다”고 말했다. 뛰어난 기술을 지닌 ‘황카카’를 완성한 건 고교시절 코치였던 김병수 감독이었다. 황진성은 “내가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움직임이나 킥 넣어주는 것, 선수 잡는 것, 균형 잡는 것 등을 가르쳐주신 분이 김 감독이셨다. 프로 선수로 성장하는 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황카카’로 불리며 공격적인 재능을 높게 평가받았지만 황진성이 아쉬워 한 부분도 있었다. 공격에만 신경썼던 자신을 뒤돌아봤다. “내가 잘하는 것만 하려고 했던 게 아쉽다. 선수 때는 ‘이 것만 잘하면 됐지’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공격만 하려고 했던 것 같다”며 “당시 좀 더 수비도 신경쓰고 몸싸움도 적극적으로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중에 해보니까 다 되더라. 만약 어렸을 때부터 신경썼다면 기록도 기록이지만 더 높은 레벨에 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황진성은 자신이 지닌 날카로운 무기를 인정받으며 여러 감독들에게 중용됐고 결과물을 만들었다. 그는 “매 시즌 꾸준히 뛸 수 있던 건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는 장점이 있었기에 감독들이 기용해주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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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아닌 지도자 ‘황카카’의 새 삶

황진성은 화려했던 순간을 뒤로 하고 유소년 지도자의 길을 선택했다. 엘리트 선수들을 육성하는 프로나 학원 축구가 아닌 축구교실이었다. 축구교실 셔틀 차량도 직접 운행하며 아이들과 스킨십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내 성향에 맞는 것 같다. 훈련시키고 아이들을 데려다 줄 때 차 뒤에 아이들이 탄 모습을 보면 귀엽다. 아이들이 나를 ‘코치님’이라고 하는데 날 알아보고 ‘코치님 황카카라면서요’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미소지었다.

선수 시절 축구 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진 벨기에와 일본 등에서 뛴 경험이 있는 황진성은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고 있다. 황진성의 축구 철학은 바이에른 뮌헨(독일)이나 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 같이 기술적으로 높은 수준을 만든 펩 과르디올라 감독과 같다. 그래서 기본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황진성은 “최근 손흥민 아버지 손웅정 씨가 강조하는 기본기를 나도 동의한다. 주말에는 초·중학교 엘리트 선수들도 레슨을 하는데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좀 더 기본기를 재밌게 가르칠까를 고민한다. 기본기도 잘 갖추고 경기장 나가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부분도 훈련해야 한다. 두 가지 모두를 가르치려고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지도자를 시작한지 3~4개월차인 황진성은 종종 아내와 TV를 보며 되고 싶은 지도자상을 얘기하곤 한다. 그는 “대성한 선수가 ‘어릴 때 누구에게 잘 배웠다’고 말하면 나도 그런 얘기를 듣고 싶다고 (아내에게) 말한다. 내가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올라가서 성인이 됐을 때 스승에게 ‘기본기 잘 배웠구나, 너 어릴 때 누구한테 배웠니?’라고 질문받으면 ‘황진성 코치에게 배웠다’고 하면 굉장히 뿌듯할 것 같다. 기본기를 잘 가르쳤다는 것이니까 얘기를 전해들으면 행복할 것 같다”며 “만약 이강인 같은 제자가 나온다면 뿌듯할 것 같다”고 전했다.

pur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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