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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대한축구협회

[루블린=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감독님은 ‘제갈용’이에요.”

세네갈과의 8강전 후 수비수 이지솔이 정정용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감독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정 감독은 12일 폴란드 루블린에서 열린 에콰도르와의 U-20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깜짝 전술을 꺼냈다. 원래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일관성 있게 전반에는 버티고 후반에 승부를 거는 전략을 택했다. 전반 45분 동안은 실점하지 않는 데 집중하면서 선수비 후역습 작전으로 가다 후반이 되면 폭발적인 공세로 상대를 무너뜨렸다. 이날 경기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상됐다. 벤치에 조영욱과 전세진, 엄원상 등을 모두 앉혔기 때문에 당연히 후반에 승부수를 던질 것처럼 보였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은 빗나갔다. 한국은 의외로 전반부터 경기의 주도권을 쥐고 공격적으로 나갔다. 이강인이 2선과 측면을 오가며 공격을 이끌었고 깜짝 선발 출전한 고재현과 김세윤도 기회가 되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왼쪽 윙백 최준은 거의 공격수처럼 과감하게 오버래핑을 하며 공격에 힘을 보탰다. 결국 전반 39분 이강인의 패스를 받은 최준이 선제골을 터뜨리며 일찌감치 리드를 잡는 데 성공했다. 한국의 예상치 못한 공세에 에콰도르는 흔들리며 페이스를 상실했다. 한 골을 넣은 후 한국은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하는 선수비 후역습 전술로 돌아섰다. 후반에 조영욱과 엄원상이 들어가 역습을 구사했고 이강인은 후반 28분 일찌감치 벤치로 향했다.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정 감독의 전술 변화가 적중한 경기였다. 정 감독도 “전반에는 라인을 올리고 공을 점유하는 플레이를 주문했는데 잘 맞아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정 감독은 매 경기 깜짝 카드를 활용하는 지략을 선보이고 있다. 상대 스타일에 맞춰 스리백과 포백을 자유롭게 오가고 그 안에서도 세밀하게 포지션 변화를 준다. 심지어 경기 도중에서 포메이션을 두 세 번씩 바꿔가며 대응하고 있다. 용병술도 눈에 띈다. 큰 틀에서 골격은 유지하면서 2~3명씩 로테이션을 실시해 체력을 안배하고 경기력까지 끌어올린다. 준결승 상대였던 에콰도르의 경우 토너먼트 세 경기 연속 베스트11과 포메이션이 동일했다. 공격진 네 명은 6경기 연속 선발로 출전했다. 파악하기 쉬운 팀이었다는 의미다. 반면 한국은 매 경기 라인업이 달라졌고 전술에도 변화가 있었다. 이지솔이 정 감독을 ‘제갈용’이라 표현한 것도 그만큼 다양한 지략으로 팀을 결승에 올려놨기 때문이다.

정 감독이 자유자재로 전술 변화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오랫동안 선수들과 호흡을 맞췄기 때문이다. 정 감독은 지난해 월드컵 예선을 겸한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을 준비하며 선수들에게 ‘전술 노트’ 한 권씩을 나눠줬다. 전술 변화에 따른 각 포지션의 움직임과 상대의 전략에 맞설 대응법 등을 기록한 것이다. 정 감독의 구상을 선수들이 낱낱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팔색조 전술도 가능하다. 선발 멤버가 바뀌어도 팀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정 감독은 “팀을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우리 선수들이 전술을 잘 이해하고 움직여주고 있다”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공격수 오세훈은 “선수들은 이미 감독님께서 원하시는 부분을 잘 이해하고 있다. 전술노트가 도움이 많이 됐다. 대부분이 이 팀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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