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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는 ‘한’스타일의 도시다. 한식이며 한옥, 한지 등 전통을 오롯이 지켜오는 곳이다. 예(禮)를 따지며 또 예(藝)를 추구하는 전주 사람들의 풍류는 남달라, 다른 어느 지역 사람들의 정서와 딱히 비교하기 어렵다. 언젠가 도심 한 술집에서 누군가 갑자기 장구채를 잡고 장구와 북을 두드리는 풍경도 목격했다. 목격으로 그치지 않고 내게도 ‘구경값’으로 뭔가 노래라도 불러 답례를 하라 했다.
이런 멋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전주에서 살아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국내 최대 도심 한옥마을이 전주에 있다.
이리저리 어깨를 맞댄 기와지붕이 흥겨운 파도처럼 끝도 없다. 만춘의 땡볕을 가린 처마 검은 그늘에 앉아 있어도, 톡톡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대도 뭐든 좋은 곳, 마주치면 눈인사라도 나눠야만 될 것 같은 비좁은 골목으로 연결된 곳, 전주한옥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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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을 빼고 전주를 이야기하기란 어렵다. 풍남동과 교동으로 확장된 한옥마을은 젊은 여행자들의 국내 여행 성지순례 코스처럼 됐다. 주말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이들의 모습이 한옥마을을 가득 메우고 나면, 그날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비슷한 그림들로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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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퍼즐에 마지막 조각을 채워 넣는 것이 바로 한복이다. 경기전 담장에도 전동성당에도, 한벽루를 지나 오목대 쪽으로 오르는 길에도 각양각색의 한복 행렬이 있어 한옥마을을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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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 담장 사이로 전동성당을 보면 그렇게도 어울릴 수가 없다. 1614년에 경기전을 짓고 딱 300년 후에 전동성당을 지었지만, 일부러 조성한 것처럼 어울린다. 건축 전문가를 만난다면 조선 중기 건축양식과 비잔틴·로마네스크 혼합 양식이 왜 서로 어울리는지 물어보고 싶다.
좁은 골목길을 걸으면 마음은 넓어진다. 한옥마을의 명물인 도넛, 비빔밥, 고로케 등 주전부리를 챙겨 먹으면 위장도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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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는 성곽이었다. 정확하게 동서남북 문이 있었다. 지금은 풍남문 만 남았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성벽을 허물었다. 경기전은 전주성 남동쪽에 있었다. 한옥은 별로 없었다. 일본인들이 허물어진 성벽 안으로 들어와 상권을 장악하려 하자 전주 사람들이 저마다 한옥을 지어 그 자리를 지켰다. 그래서 한옥마을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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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남문 옆 골목에 행원이 있다. 은행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은행나무 정원 행원(杏園)이다. 한옥 카페인데 전국에 흔해 빠진 ‘한옥 스타일 카페’와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으로부터 91년 전인 1928년 지은 고택으로, 원래는 조선 요리를 팔던 식도원이란 요릿집이었다. 1938년에 이름이 낙원으로 바뀌었고, 이후 전주국악원으로 썼다. 해방 전인 1942년 ‘낙원권번’ 건물을 전주의 ‘마지막 기생’ 남전(藍田) 허산옥(1926∼1993)이 인수해 요정 행원을 열었다.
일본식 건축법이 녹아든 한옥이다. 따로 마당 없이 ‘디귿’자 건물을 짓고 중정(건물 가운데 있는 정원)과 못을 두었다. 예술인의 성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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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는 피렌체처럼 예술이 융성하던 곳, 당대 내로라하는 화가, 문인, 음악가 등 예술인들이 드나들었던 곳이다. 1983년 판소리 명인 성준숙 명창이 인수, 한정식집으로 운영하다가 2017년 카페로 바꿨다. ‘소리카페’를 내세우는 행원은 외형도 근사하지만 무엇보다 콘텐츠가 있는 곳이다. 사단법인 전북전통문화연구소에서 운영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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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등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방과 전통차와 커피 등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여행 중 쉬어가기 제격이다. 창이 사방으로 난 고풍스러운 고택에서 쉬는 동안, 정원에 꽃이 차례로 피어나며 계절의 멋, 지역의 멋을 섭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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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맛충전
천하에 걱정할 게 없는 것이 바로 ‘전주에서의 밥 걱정’이다. 한정식 비빔밥 콩나물국밥 피순대 등 원래 유명한 메뉴부터, 세상 어느 칼국수와도 비슷한 것이 없는 명물 칼국수(베테랑분식)에 물짜장 석갈비 등 단품 메뉴로도 한가득이다.
이른 더위에 입맛을 잃었다면 전주여행에서 급속충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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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 인근에서 다양한 주전부리나 비빔밥, 물갈비, 오모가리탕(민물매운탕) 등을 즐길 수 있고, 남부시장에선 피순대 국밥과 콩나물국밥 등을 맛보면 된다.
원도심 객사길에는 근사한 카페와 식당, 와인 레스토랑 등이 들어섰다. 한때 서울의 핫플레이스로 꼽혔던 경리단길에 빗대 ‘객리단길’로 불릴 정도다. 전주국제영화제 거리로부터 이리저리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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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저녁은 맛과 멋이 융합한 막걸릿집에서 보내면 좋다. 전주는 어느 곳을 가도 동네 막걸릿집이 있지만 아예 막걸리 골목이 형성된 곳도 있다. 한옥마을에도 들어섰고 삼천동 평화동 서신동 효자동 등 어느 곳을 가야 할 지도 모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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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서신동을 갔다. 이곳엔 유명한 막걸릿집 옛촌막걸리가 있다. 보통 전국 어디나 공중파 방송이나 신문사 제호를 걸어놓고 가게 자랑을 하는데 이 집은 ‘뉴욕타임스에 나온 집’이다. 방송도 NHK 중국CCTV 등이니 말 다했다.
원래 전주식 막걸릿집이란 영업형태는 통영 다찌, 마산 통술처럼 술을 주문하면 안주는 그냥 내주는 방식이었는데, 최근에는 일부 영업 방식을 바꿨다. 술을 많이 마시지않는 관광객이나 젊은 세대의 취향을 인정, 술값을 조금 내리고 기본 상차림 비용을 따로 받는다.
옛촌막걸리도 자신의 ‘음주 습성’에 따라 체험상차림을 고를 수 있다. 2~3인 짜리 ‘가족상차림’을 골랐다. 5만3000원을 내면 막걸리 한 주전자와 함께 족발 ,들깨삼계탕, 계란프라이, 메밀전병, 김치찜, 생선구이, 산낙지, 은행구이, 간장게장, 피꼬막, 김치전 등이 줄줄이 나온다. 혀를 내두를 노릇이다. 밥으로도 안주로도 딱이다.
술은 추가하면 막걸리 한 주전자 8000원, 소주는 4000원을 받는다. 안주는 푸짐하니 떨어질까 걱정없다. 배불리 주안상을 뚝딱하고 나서면 ‘가맥집’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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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맥집’이란 가게집에서 파는 맥주를 말한다. ‘전일갑오(전일수퍼)’는 평일 늦은 시각까지 북적인다. 상호에서도 추측할 수 있다. 말린 갑오징어를 두드려 파는데, 이게 황태포와 함께 대표적 안주다. 단단한 갑오징어포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예전엔 망치로 때렸다지만 이제는 직접 창안한 기계를 이용해 두드린다. 야들해진 갑오징어와 푸슬푸슬 구운 황태포를 특유의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시원한 병맥주가 저절로 술술 들어간다. 맥주는 한 병에 2500원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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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해장거리가 즐비한 전주이니 이날 만큼은 속 시원히 술 한잔 즐길 수 있었다.
단 한나절이나 하룻밤 정도 시간적 비용적 투자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전주 여행. 일상 속 급속충전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듯하다.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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