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컬링 스타' 이슬비 "'멋진' 지도자로 2022 베이징 올림픽 갈래요"[리와人드]
    • 입력2019-05-16 11:00
    • 수정2019-05-1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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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윤소윤 인턴기자]2018년 겨울, 대한민국은 '컬링' 열풍에 빠졌다. '영미!'를 외치던 컬링 대표팀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내로라하는 컬링 강호들을 물리치고 기적 같은 은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해설위원이었던 이슬비(31)는 하우스가 아닌 해설 부스 안에서 그들의 눈물 젖은 승리를 함께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올림픽 컬링 종목에서 메달을 땄던 '팀킴'의 빛나는 영광 뒤에는 대한민국 최초로 올림픽 컬링 무대에 섰던 이슬비의 숨은 노력과 보이지 않는 눈물이 있었다.


어느덧 결혼 5년 차가 된 베테랑 주부였으나, 인터뷰 장소로 걸어 들어오던 그의 눈빛에서는 소치올림픽에서 스톤을 쥐고 정면을 응시하던 스물여섯, 이슬비의 강단이 담겨있었다. "빨래 해놓고 왔어요"라며 웃는 얼굴에선 여전히 앳된 느낌이 풍겨나왔다. 아무것도 모르던 의성의 어린 소녀가, 컬링이라는 생소한 동계 스포츠 종목에서 태극마크를 달기까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던 그의 컬링 인생을 만나봤다.


◇ "얼음에서 노는 게 좋아서요" 16세의 이슬비, 스톤을 잡다.


"요즘 지도자 준비하고 있어요. 선수 때는 제가 지도자를 할 수 있을까 겁을 냈었는데 해설 하고 나면서 시야가 넓어졌어요. 제가 알고 있던 것들을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고, 차근차근 올라가려고요."


이제는 어엿한 선배가 되어 지도자를 꿈꾸는 그에게도 시작은 있었다. 컬링이라는 종목이 스포츠로서 인기를 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슬비의 컬링 인생 시작이 더욱 궁금해졌다.


"처음 접하게 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어요. 제가 의성 출신이잖아요. 의성이 시골이라 진짜 할 게 없어요. 놀 것도 없고(웃음). 그때 체육 선생님께서 수업 끝나고 놀러 가자고 하셔서 아이스링크장에 갔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런 재미가 좋아서 시작했어요. 얼음에서 노는 게 신나고 좋아서요."


단순히 얼음이 좋았던 건 아니었다. 혼자가 아닌 '팀'의 의미를 이슬비는 그때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더 좋았던 건 저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하는 거라서. 그게 제일 좋았어요. 처음에 우연히 나가게 된 경기도 등수는 좋지 않았지만, 언니들이랑 힘을 합쳐서 했다는 것 자체로 좋은 추억이 됐어요."


그렇게 스톤을 잡았던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컬링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안동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가 의성 여고에 컬링장이 생겼다는 얘기를 듣고 제안을 받아서 전학을 가게 됐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팀을 꾸리게 됐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주니어 대표와 국가대표를 같이 하게 됐죠. 되게 좋은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완전 막내여서 더 좋았죠. 사랑받고. 하하."


◇ '의성'의 유치원 선생님, '대한민국' 컬링 국가대표가 되다.


의성여고로 전학을 가며 주니어 대표팀으로 활약했던 그였으나, 이후 몸담을 소속 팀이 없어 진로를 완전히 바꾸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컬링을 했는데 대학팀도 없고 실업팀도 없는 상태였어요. 팀이 생긴다는 보장도 없어서 진로 고민을 하다가 결국 컬링을 그만두게 됐죠."


기약 없는 기다림을 계속 이어갈 수는 없는 터였다. 이후 그는 경북에서 유치원을 하고 있던 숙모의 제안으로 보조교사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 당시에 저희 숙모가 유치원에서 원장 선생님으로 일하고 계셨어요. 도와드리면서 아이들 봐주는 일을 한 7개월 정도 했던 것 같아요. 되게 힘들더라고요. 한 시도 애들한테서 눈을 떼면 안 되니까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죠."


완전히 새로운 길을 가게 된 그였으나 컬링에 대한 꿈을 접을 수는 없었다. "사실 언제나 컬링을 계속하고 싶었어요. 의성에 있다 보니까 계속 보이잖아요. 컬링장도 그렇고. 유아 교육이 저랑 잘 안 맞아서 힘들어하던 중에 정영섭 감독님이 먼저 제의를 해 주셨어요."


고교 시절부터 이슬비를 눈여겨봤던 정영섭 감독과 최민석 코치는 그에게 다시 컬링의 길을 제안했다. 이후 이슬비는 경기도청 소속으로 제 2의 컬링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경기도청 입단을 제안해 주시자마자 바로 알겠다고 했어요. 하던 일도 바로 관두고 2009-2010년 시즌에 바로 대표팀에 선발되고 나서 세계선수권에 나가게 됐어요."


이후 국제무대에 서며 경험을 쌓기 시작한 이슬비는 2012년 컬링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같은 해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대한민국 컬링팀 사상 최초로 4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때 저는 컬링만 보고, 컬링만 하고 컬링에 빠져 살았어요. 저희 코치진이랑 선수들 합도 되게 잘 맞아서 모든 게 다 좋았죠."


사상 첫 메달을 노렸으나, 결승 진출 문턱에서 무너지며 아쉬운 결과로 대회를 마무리 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것 같다던 그였다. "사실 세계선수권이 되게 힘들어요. 개폐회식 빼고 8일 내내 하루 6시간씩 경기만 해야 하거든요. 근데 계속 이기니까 힘든 줄도 모르고 했던 것 같아요."


◇ 2014 소치 올림픽, "메달 획득 실패…여전히 아쉬워"


"지금도 아쉬워요. '그때 왜 욕심을 부렸을까' 하는 생각에..."


이슬비와 경기도청의 올림픽 출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하락세와 실력 미달이 그 증거였다. "올림픽 선발전이 있던 해에 저희가 경북체육회한테 다 졌어요. 컨디션도 좋은 편이 아니었고 그래서 많이 힘들었어요. 선수들끼리도 굉장히 예민한 상태였죠."


당시 이슬비의 심리적 압박감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마지막 결승전 승리가 이들을 소치행 비행기에 오르게 만들었다. "정말 예상 못 했어요. 그래서 더 감격스러웠죠."


기적과도 같은 선발전 승리를 차지한 후 컬링 대표팀은 대한민국 사상 첫 컬링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됐다. "메달을 하나 따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어요. 사실 세계선수권이 올림픽보다 더 어렵거든요. 올림픽은 총 10팀이 출전하고 세계선수권은 12팀이 나와요. 세계선수권에서 4강 갔었으니, 이번엔 3등은 할 수 있겠다 생각은 했죠. 하하."


그러나 힘든 상황의 연속이었다. 당시 컬링 대표팀은 각종 월드 투어와 전지훈련으로 인해 심한 체력 고갈 문제에 시달렸다. "당시에 한국에 두 달도 못 있었어요. 캐나다에서 스코틀랜드 갔다가 거기서 바로 소치로 넘어갔죠. 체력도 체력인데 마음이 많이 지쳤어요. 친구들 가족들을 보면서 좀 풀어야 하는데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가 없으니까. 올림픽에 대한 설렘도 분명 있었는데 부담감 스트레스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다들 시한폭탄이었어요."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그들은 첫 올림픽 경기를 한일전으로 시작했다. "모든 올림픽 경기에서 컬링이 항상 제일 처음 시작해요. 첫 올림픽 자체도 떨리는데 첫 게임이 한일전이라 부담이 더 심했어요. 무조건 이겨야 하는 그런 게 있으니까."


'일본과의 경기는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국제 경기에서 한일전이 주는 무게감은 선수들에게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러나 국민들의 응원과 기대를 등에 업은 컬링 대표팀은 숙적 '오가사와라 팀'을 완파하며 첫 경기, 한일전에서 당당히 승리를 차지했다.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항상 보는 상대고, 늘 만나던 선수들이니까."


이후 러시아를 8-4로 꺾는 등 강호들을 상대로 승리를 이어갔으나, 메달 문턱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금방 몰락했죠. 하하. 올림픽은 올림픽이더라고요. 그리고 저희가 시합을 하면서 포지션을 계속 이동한 게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대표팀은 포지션을 고정시키지 않은 채 선수 컨디션에 따라 유동적으로 선수 운용을 하는 것을 작전으로 내세웠다. "사실 포지션이라는게 선수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에 시합 중엔 되도록 포지션을 바꾸지 않는 게 좋아요. 근데 저희는 다들 컨디션이 너무 안 좋으니까, 이겨야한다는 욕심에 샷이 잘 나오는 사람을 계속 위로 올렸어요. 그게 실수였죠. 지금도 그 점이 제일 아쉬워요."


연승 행진은 멈췄으나 당시 이슬비는 귀여운 외모와 "괜찮아요 언니!" 좋아요 언니!"등의 유행어를 남기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얼짱선수로 인기를 끌지 않았었냐"는 말에 이슬비는 "에이, 그때 예쁜 선수들이 없었나봐요. 하하"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 때 저희 핸드폰 다 압수였거든요(웃음). 경기 다 끝나고 핸드폰 돌려 받았을때 지인들한테서 온 카톡 보고 화제가 된 걸 알았어요. 아, 그때 좋았죠. 돌아가고 싶네. 하하."


◇ "'팀킴' 자랑스럽다" 해설위원 이슬비의 뚝심


"저 해설할 때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요. 너무 떨려서(웃음)."


평창올림픽 당시 이슬비는 SBS 컬링 해설위원으로 데뷔하며 반가운 근황을 알렸다. "너무 감사하게도 먼저 제안을 해 주셨어요. 사실 저는 제가 한 방송 다시 볼 때마다 부끄러워요. 저를 선택해 주신 게 감사할 지경이죠. 하하."


당시 이슬비는 쇼트트랙 해설 조해리, 피겨스케이팅 해설 곽민정과 더불어 미녀 해설위원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해설하면서 SBS 장예원 아나운서랑 친해졌어요. 근데 예원이가 해설 끝나고 나면 제가 했던 방송을 다 보고 타이핑을 하면서 무슨 말을 했는지 다 보라고 하더라고요. 다음엔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공부를 해야 된다면서."


"그래서 정말 부끄러웠지만 다 보고 다 들었어요. 와. 근데 진짜 혼잣말로 '얘 뭐라고 하는 거야?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이런 말을 계속했어요. 하하. 근데 정말 좋은 경험이었죠!"


고등학교 때부터 컬링을 해왔던 그였지만 해설은 또 다른 세계였다. 첫 해설 데뷔를 올림픽으로 하게 된 그였기에 준비 기간도 길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컬링 경기를 세 게임씩 봤어요. 한국을 제외하고도 믹스(혼성)팀, 남자 경기까지 전부 봐야 하니까 환장하겠는 거예요(웃음). 모든 선수들 습관, 버릇 성향을 파악하는 데만 1년이 걸렸어요. 매일 집에서 유튜브 켜놓고 공부했죠."


그렇게 평창올림픽 부스에 앉게 된 그는 매 경기 숨을 죽이며 후배들의 경기에 함께했다. 후배이기전, 평창올림픽 출전을 함께 꿈꿨던 라이벌이었기에 아쉬움이 있을 법도 했다. "사실 저희 팀이 올림픽 기간을 준비하면서 많이 무너졌어요. 모두가 그걸 알고 있었고, 그때부터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근데 그거랑은 별개로 '팀킴'이 출전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잘 다져진 팀이었고, 3년간 차근차근 잘 밟아 온 팀이기에 막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팀킴'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더 잘했겠다 이런건 장담 못 하겠어요. 평창 무대에 서지 못한 건 아쉽지만, '팀킴'이 은메달을 따 준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해요. 그 자리에서 해설했다는 것 자체로도 인생에서 정말 소중했던 기억이죠."


이슬비의 올림픽 해설에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다름 아닌 일본과의 준결승전이었다. 당시 대표팀은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8-7의 스코어로 결승에 진출하며, 사상 첫 올림픽 컬링 메달 확보에 성공했다.


"그 영상 보면 저 기도하고 있어요 하하. 근데 사실 저는 그 친구들이 메달 충분히 딸 줄 알았어요. 실력뿐 아니라 멘탈까지 잘 다져진 팀이었거든요. 결승 갈 것 같다고 인터뷰도 했는데 진짜 가서 소름 돋았어요."


'안경 선배'로 걸크러시 매력을 뽐냈던 스킵 김은정에 대한 칭찬도 이어졌다. "은정이는 진짜 포커페이스가 완벽해요. 그게 은정이 최대 장점이기도 하고요. 준결승 당일에도 안 떠는 것처럼 보였는데 나중에 물어보니까 진짜 떨었대요! 그게 떠는 사람 표정이었다니!"


절대로 울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뒤 들어선 부스였지만, 후배들의 선전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그였다. "사실 후배이기 전에 저희 라이벌 팀이니까 제가 안 울고 해설 잘할 줄 알았어요. 근데 애들 눈물 보니까 어느새 저도 울고 있더라고요. 하하. 너무 멋있었어요. 자랑스러웠고. 근데 경기 보고 감격하느라 멘트를 안 쳐서 오디오가 많이 비었죠. 하하."


◇ 이제는 결혼 5년 차, 여전히 컬링을 꿈꾼다.


"신랑한테 호언장담했어요. 베이징 올림픽 꼭 가겠다고."


컬링의 경우 정해진 형식이나 전통이 없기 때문에 별다른 은퇴식도, 절차도 없었다. 이슬비는 2019년 선수등록을 하지 않으며 공식적으로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실 되게 고민했어요. 팀이 생기기를 기다리느냐 지도자를 하느냐. 근데 저는 급하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천천히 준비하고 싶어서 은퇴를 결심하게 됐어요."


"선수로서는 은퇴했지만 한국 컬링 선수 출신 최초로 올림픽에 세 번 가 보는게 제 목표예요. 선수로서, 해설로서 그리고 지도자로서."


인터뷰 말미에는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도 건넸다. 띠동갑인 이슬비의 남편은 힘들었던 선수 생활을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준 버팀목이자 든든한 조언자였다. "처음엔 수상스키장에서 만났어요. 겨울에는 스키장에서 봤고요. 사실 제가 시즌 중에는 다치면 안 되니까 스포츠를 못 하거든요. 그래서 국가대표 아닌 해에 가서 만났어요. 하하."


"말씀드렸다시피 소치 올림픽 시기에 정말 힘들었는데 힘이 많이 됐죠. 그때 저희도 포지션 경쟁이 심해서 부담이 많이 됐는데 현실적으로 조언도 많이 해주면서 저를 잘 잡아줬어요."


어떤 현실적인 조언을 해줬느냐는 물음에 "운동 힘들다고 하니까 '사회 나와봐라. 그런 사람이 백명 있다' 이러고(웃음), 일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 '그만두면 나와서 뭘 할거냐고 그러고' 하하. 처음엔 제 편 안 들어줘서 짜증 났는데 나중엔 저 스스로 단단해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 같아요. 멘탈도 강해졌고. 네. 지금은 행복합니다(웃음)."


끝으로 남편과 함께 즐기는 취미 생활도 고백했다. "신랑이랑 저랑 활동적인 걸 좋아해요.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낚시로 힐링하러 가요. 신랑이 배가 있거든요. 배 한 번 타면 다섯 시간을 못 내려오는데 처음 배울 때 그 배에서 비 오는 날 두 시간 내내 헛손질하면서 트레이닝했어요. 하하."


녹음기를 끄기 직전 최종 꿈을 묻자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멋진 지도자요"라고 답했다. "지도자를 양성할 수 있을 만큼의 커리어를 쌓고 싶어요. 어떤 선수처럼 되고 싶다가 아니라, 이슬비처럼 우수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게요. 너무 거창한가요? 아, 기사 제목 '낚시왕 이슬비'라고 하시면 안 돼요! 저는 컬링 계속할 거니깐(웃음)." 마지막까지 유쾌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그다.


재능, 노력 그보다 강한 삶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목표와 꿈이다. 선수직을 내려놓고, 결혼이라는 새로운 삶을 선택한 그였지만, 이슬비에게는 여전히 컬링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


처음 스톤을 잡기 시작했던 열여섯,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유치원 교사를 하며 방황했던 시기, 우여곡절 끝에 달았던 태극마크와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결혼에 이어 이슬비는 지금 또 다른 엔드(END) 앞에 섰다. 앞으로 그의 인생에 있어 얼마나 많은 라운드가 남아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슬비의 스톤은 지금, 2022년 베이징을 정조준하고 있다.


younwy@sportsseoul.com


사진 | 윤소윤 기자 younwy@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DB, 이슬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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