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전세계 게이머들을 열광시키며 PC방 좀비를 양산했던 스타크래프트를 기억하시나요? '응답하라! 스타크'는 전설의 프로게이머들의 근황을 인터뷰로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스타크래프트와 함께했던 추억을 공유하겠습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박경호기자] 20년 동안 한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온 그녀. 게임계의 '원조 여신'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정소림(47) 캐스터는 아직까지도 중계가 어렵다고 말한다. 편견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E스포츠계 유일무이한 여성 캐스터로 자리 잡기까지 그녀가 흘린 눈물 또한 셀 수 없다.

40대로 접어들면서 매년 은퇴를 생각한다는 정소림. 팬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고,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려 18년 만에 다시 진행한 본지와 인터뷰에서 그녀는 변함없는 미모는 물론 20년 차 캐스터의 내공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게임 캐스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1999년쯤 다른 방송 일을 하다가 쉴 때였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이 나왔다고 해서 접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방송도 기존에 했었고, 주변에서 캐스터 자리가 있다며 추천을 해줬다. 당시 iTV 캐스터 오디션을 본 뒤 시작하게 됐다.

-여성 캐스터로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

게임 캐스터라는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요즘에는 게임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재미도 있어야 한다. 일단 여성이 중계를 하게 되면 박진감 넘치는 상황에 목소리 톤이 올라가서 듣기 싫은 경우가 있다. 가끔 내 모니터링을 하면서도 볼륨을 낮추기도 한다. 그런 부분이 가장 걸림돌이다. 또 한 가지는 예전에는 '여자가 게임을 뭘 알아' 같은 선입견을 갖고 바라봐서 진입 장벽도 높았다. 작은 리그는 내가 맡고 큰 리그로 넘어가면 남성 캐스터로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편견과 어려움 때문에 속도 많이 상했을 듯하다.

눈물로 적신 베개가 몇 개는 된다 (웃음).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 때문에 울기도 했고, 공정한 실력으로 평가받기 이전에 아예 캐스팅이 안돼버려서 속상함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캐스터로만 20년이다. 롱런의 비결이 있을까.

어려운 순간이 왔을 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박차고 일어서는 방법을 찾는 노력을 많이 했다. 스스로도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는 단점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하지만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 라면서 인정하고 내려놓는 것이다. 오히려 팬들이 그런 부분을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그 덕분에 오래 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캐스터를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은 언제인지.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 중계방송 시작 전 카메라가 돌아가면서 음악이 나오면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팬들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을 때에도 '이 일을 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을 한다. 한편으로는 '수많은 직업 중 왜 이 일을 선택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얘기는 잘 안 했는데, 사실 나는 평소에 말이 많은 편이 아니다. 주로 듣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서는 하루 종일 말을 안할 때도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을 선택하게 됐을까. 적성에 맞는 일을 선택한 건가' 같은 고민을 아직까지도 하고 있다.

- 슬럼프에 빠지는 순간도 있었을 것 같다.

중계가 잘 안될 때 슬럼프를 겪는다. 더 재미있게 하고 싶고 표현도 잘하고 싶다. 20년 동안 캐스터를 했지만, 아직도 중계가 힘들다. 스스로 만족했던 중계가 별로 없다. 그럴 때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은 팬들의 응원이다. 팬들이 SNS나 다양한 방법으로 '누나(언니) 중계를 보고 스트레스를 확 풀었다. 너무 좋았다. 고맙다' 같은 메시지를 보내주신다. 팬들이 보내주는 응원을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들면서 더 열심히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지금 문득 떠오르는 팬이 있다면?

이런 얘기를 하면 내 연식이 또 드러나지만, 초창기 게임 캐스터를 할 때는 하이텔, 나우누리 같은 PC 통신 시절이었다. 그때 지방에 군의관으로 계시던 분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그분이 거의 최초의 팬이었다. 가끔씩 '그분은 뭘 하고 계실까' 떠오를 때가 있다. 혹시 이번 인터뷰를 보시면 연락해주셨으면 좋겠다.

- 대회나 시상식에서 입는 의상도 화제인데 부담감은 없나.

OGN에서 함께 일하는 코디가 있다. 굉장히 오래됐다. 처음에는 시상식 때문에 화려한 의상을 입었다. 반응이 좋다 보니 그 다음부터는 코디 실장님이 적극적으로 벗기시더라 (웃음). 자주 입을 수 있는 옷도 아니고,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다. 팬들도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셨다. 아직까지는 이런 의상을 입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러기 위해 아직도 노력하고 있다.

- 평소 동안 미모+몸매 유지 비결이 있다면?

미모? 있어야 유지를 하는데...(웃음) 아무래도 여성 캐스터다 보니 그런 부분들이 눈에 띄는 것 같다. 사실 관리를 안 한다면 거짓말이다. 최근에 '클래시 로얄'을 중계를 하는데, 시청 연령이 초등학생도 있고 낮은 편이다. 가끔 채팅창으로 '가운데 할머니는 누구야?'라는 말도 보인다. 기본적으로 생각을 젊게 하려고 노력한다. 요즘 방탄소년단도 너무 좋아한다. 어쨌든 보여지는 일을 하다 보니 식단 관리나 건강을 위한 체질 관리는 하는 편이다.

- 정소림의 일상도 궁금하다. 평소 즐기는 취미가 있을까.

딱히 두드러지는 취미는 없다. 여행을 좋아해서 보통 시즌이 끝나면 여행을 많이 다닌다.

- 자녀가 올해 대학생이 됐다고 들었다. 게임 대결을 해본 적이 있나.

예전에 아들이 엄마랑 스타 한번 붙어보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집에 PC가 한 대 밖에 없어서 게임을 붙어보지는 못했다. 각자 게임을 하고 있으면 뒤에서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라며 서로 훈수를 두기도 한다.

- 새로운 도전, 혹은 팬들을 위해 유튜브나 개인 방송을 해 볼 생각은?

오래전부터 유튜브나 개인 방송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떤 콘텐츠로 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게임 중계 때문에 시간이 부족한 것도 있다. 스스로 능력이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 번의 중계를 할 때마다 많은 것을 준비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렇다 보니 다른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어서 아직 못하고 있다. (팬 분들이) 아이디어를 주셨으면 좋겠다.

- 20년차 캐스터 정소림의 픽! 전성기 임요환 vs 전성기 이영호가 대결한다면?

이영호다. 이영호는 모든 것이 완벽한 선수였고, 임요환은 스페셜리스트 같다고 생각한다. 임요환은 전략적인 창의성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승부했다. 선수들이 가진 기본기로 붙으면 이영호가 승리할 것 같다. 임요환은 남들과 똑같은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 그런 부분은 임요환의 강점이라고 본다.

- 스타크래프트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뭘까.

스타크래프트는 게임 중계에 있어서 만큼은 정말 잘 만든 게임이다. FPS 같은 장르는 한 번에 화면에 담기 힘든 부분이 있고, 그래픽이 너무 화려하면 보기 어렵기도 하다. 반면에 스타크래프트는 유닛 하나하나의 싸움까지 다 볼 수 있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너무 화려한 것보다 단순한 것이 더 재밌게 느껴질 때가 있다. 또 한 가지는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접했던 세대들이 아직까지도 그때의 향수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10대 친구들도 스타크래프트의 매력을 느끼고 보는 것 같다. 이런 점들이 스타크래프트 만이 가진 매력인 것 같다.

- 캐스터를 꿈꾸는 미래의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마디.

작년에 게임 해설 캐스터 교육 과정을 몇 번 강의했었다. 특별한 조언보다는 일단 멘탈이 강해야 한다. 나처럼 유리멘탈이라면 와장창 무너지기 쉽다. 웬만큼 욕먹어도 거뜬하다 싶은 사람들이 도전했으면 좋겠다. 자기만의 매력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정말 웃기거나,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하거나, 장동건 뺨치게 잘생겼거나 자신만의 매력이 있어야 두드러질 수 있다.

- 그렇다면 본인만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미모? 농담이다. 편안함인 것 같다. 그리고 그나마 있는 여성 캐스터? (웃음). 어떤 분이 그런 말을 하셨다. 정소림 캐스터 같은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여성캐스터인데 예쁜 척 안 하고, 편안하고 친근함이 내 매력인 것 같다.

- 앞으로 정소림의 목표가 있다면?

2019년까지 게임 캐스터를 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가끔씩 내 나이 때문에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몸만 40대지 마음은 20대다. 거기서 오는 괴리감이 크다. 40대 이후로는 매년 '언젠가 이 일을 그만두겠지'라는 생각으로 한 해 한 해를 보냈다. 몇 년이 될지는 모르지만 팬들이 원하지 않는 순간이 오거나, 카메라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싫을 땐 그만둘 것 같다. 캐스터를 그만둬도 게임 쪽에서 일하고 싶다. 20년간 캐스터 활동을 했기 때문에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E스포츠 안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계속 이 안에서 일하고 싶다.

- 정소림에게 스타크래프트란?

'제2의 인생'인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알았기 때문에 나의 모든 시작이 있었다. 내 인생은 스타크래프트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눠지는 것 같다. 나의 또 다른 인생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항상 20년 차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그렇게 오래 일할 수 있었던 건 팬들 덕분이다. 힘들거나 슬럼프에 빠질 때 항상 나를 잡아 준 사람들은 팬들이다. 팬들이 나에게 주는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한 분 한 분 모두 고맙다고 표현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에 이 자리를 빌려서 말하고 싶다. 언제나 늘 고맙고 사랑한다.

park5544@sportsseoul.com

영상 | 박경호기자 park5544@sportsseoul.com

사진 | 박경호기자 park5544@sportsseoul.com, 정소림 캐스터 SNS,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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