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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홍승한기자]“내 기나긴 여정의 시작이다.”

무브먼트 크루의 중심, 타이거 JK와 드렁큰타이거 그리고 MFBTY, 아니면 ‘쇼미더머니’ 프로듀서 등 래퍼 비지(Bizzy·본명 박준영)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2002년 양동근 1.5집 앨범 수록곡 ‘쌤쌤’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처음 들려주기 시작한 비지는 그동안 한국 힙합신의 흐름과 역사를 함께 해오며 다양한 위치에 서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 하나는 아직까지 자신의 앨범을 적극적으로 발표하지 않았고 자신을 대표할만한 곡이 없다는 점이다.

비지가 최근 신곡 ‘디스턴스(Distance)’를 발표하며 솔로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디스턴스’는 지난해 1월 발매한 ‘우아’(feat. BiBi) 이후 약 1년 3개월 만의 신곡으로 이를 시작으로 비지는 각기 다른 장르의 여러 싱글이 연말까지 연이어 공개될 예정이다. 무엇보다 비지가 사실상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으로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은 2008년 첫 EP앨범 ‘비저너리(Bizzionary) 이후 처음이다.

비지는 “전에는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이 아닌 놓친것을 아쉬워했는데 지금은 무엇이 꿈틀거리고 있다. 더 늦기전에 한발짝 움직여 보고 싶은 마음이고 내 색을 보여주고 싶다”며 입을 열었다.

애초 앨범 단위를 준비했던 비지는 싱글 프로젝트로 방향을 전환했다. “오랜시간 콘셉트와 퍼즐을 맞추면서 내 자신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앨범을 준비하다가 잘해야겠다는 마음가짐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어깨가 무거워졌다. 싱글로 나오면서 부담감도 덜고 더 재밌는 것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모든것이 감사하고 기회라고 생각한다.”

신곡 ‘디스턴스(Distance)’ 비지 릴레이 싱글의 시작을 알리는 곡이자 마치 자신의 일기장과 같이 속내를 그대로 담은 곡이다. ‘디스턴스’로 시작되는 이번 싱글 프로젝트에는 누구의 비지가 아닌 비지를 중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계획이다.

“사람, 사람, 일 등 지금까지 모습을 목에 필터를 끼지 않고 솔직한 일기장에 쓰고 싶었다”던 그는 “친한 뮤지션 동생들은 요즘 스타일로 트렌디하게 하라고 조언하고 댓글에는 미련하다는 반응도 있는데 이런 것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가사에 실었다. 최고의 패셔니스타는 자신에게 맞고 계절에 맞는 옷을 입는 사람인 것 처럼 나도 내 나이에 맞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옆집 오빠같이 편안하고 친근한 이야기꾼이고 싶다”고 밝혔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한 뮤직비디오는 유년 시절을 보낸 뉴질앤드에서 비지가 직접 촬영하고 연출해 화제를 모았다. “호주의 MFBTY 콘서트가 있어 갔다가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할머니 묘지가 있는 뉴질랜드를 10년만에 갔다. 자연스럽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을 틀고 할머니를 찾아가는 길을 찍는데 마음이 가벼워지고 영상미도 좋아져서 작업을 하게 됐다. 내 스토리는 내가 잘 아는데 음악만으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영상으로 보여주면 더 전달이 잘 될 것 같다. 영상에 내 음악을 입혀서 보여주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데 6월과 7월의 싱글도 내가 다 감독이 되서 찍어보려고 한다. 원테이크 콘테스트에 제출할 작품을 만들어서 올리는 것도 하나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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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기간 한국 힙합신에서 활동해 온 비지는 생각보다 많은 곡과 앨범을 내지 않았다. 대신 드렁큰타이거와 MFBTY 혹은 다른 가수와의 협업 등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와 이름을 알렸다.

그는 “타이밍과 기회를 찾다 보니 앨범이 나오는 데 더 많이 걸린 것 같다. 또 핑계 일수도 있는데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분위기가 좋고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인 결과물보다 같이 음악을 하는 프로젝트가 재밌었고 그 안에서 좋은 음악이 나왔다. 또 내 이야기를 대신해 줄 수 있는 환경이 있다면 그것을 선호했다. 결국은 드렁큰 타이거, MFBTY 든 내 무내가 되던지 좋은 기운으로 소통한다면 앞선 두 타이틀에 국한되지 않을 것 같다. 이제는 행복이나 자존감을 내 안에서 찾아서 뭔가 잘 될 것만 같다”고 전했다.

많은 이들은 비지를 이야기할 때 Mnet ‘쇼미더머니’를 빼 놓을 수 없다. 비지는 2017년 ‘쇼미더머니6’ 당시 우원재 무대에 지원 사격을 나섰지만 가사 실수를 저질렀다. 우원재의 탈락이 자신의 잘못인 것 같던 비지는 이를 극복하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당시 기흉 수술도 하고 나 역시 ‘쇼미’에 몰입했는데 내 마음으로는 우원재를 무슨 수를 쓰면서 다해주고 결승에 올라가게 하고 싶었다. 몇일밤을 새고 무대 세팅을 끝내고 리허설도 무사히 마쳤는데 페이스를 올리다 보니 내가 악에 받쳐서 놓쳐버렸다.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지만 나때문에 원재가 떨어졌다고 자책했다. DM도 거의 만개 가까이 오면서 자존심도 무너지고 나중에는 환경도 원망했다. 최근에 원재 콘서트도 갔다 왔는데 안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수 많은 별들이 뜨고 지는 곳인데 인성도 하나의 실력인데 원재도 그런면이 노출돼서 사랑받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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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JK와 함께 비지는 방탄소년단과 남다른 인연을 가지고 있다. RM은 MFBTY ‘부끄부끄’와 드렁큰 타이거 마지막 앨범 수록곡 ‘타임리스(Timeless)’에 참여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비지는 슈가와 꾸준히 음악적 교류와 연락을 나누고 있다.

“룸펜스 감독을 통해 랩의 열정이 가득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중 한명이 RM이고 다른 하나가 슈가다. 처음 볼 때부터 RM과 슈가는 음악에 대한 집중도가 넘쳐났고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말이 끊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 후에도 연말 시상식에서 만나면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고 자연스럽게 전화 연락을 하는 사이가 됐다. 최근에는 슈가가 작업실을 옮겼는데 놀라 오라고 했다. 룸펜스 감독과 가서 음악을 들려달라고 할 계획이다”

비지의 새로운 행보의 빌보드나 MTV 등 해외 언론과 매체에서도 호평과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 여러 협업 이야기도 실제로 오가며 다음 행보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그는 “지난달에 싱가포르 선다운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공연을 했는데 다국적 팬들이 많은지 다시 느끼게 되는 자리였다. 거리나 쇼핑몰을 다녀도 한국보다 더 많이 알아봐 주셨고 공연에 대한 관계자나 뮤지션의 좋은 반응에 기분이 좋았다. SNS로 미국이나 유럽 쪽 아티스트와 공연 관계자들에게 제의가 오고 있어 좋은 예감이 든다”며 새로운 작업을 기대했다.

hongsfilm@sportsseoul.com

사진|필굿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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