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강지윤기자]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일러스트레이터 키크니(keykney)의 인스타그램에는 인스타 툰(인스타그램에 연재하는 만화)이 업데이트됩니다. 댓글로 독자들의 요청을 받아 한 컷으로 정리한 주문 제작 만화죠. '제 침대가 시험기간에 저한테 하고 싶은 말 그려주세요. 너무나 매혹적'이라는 댓글은 침대가 '일루왕 시험시험해~'라고 말장난을 하는 장면으로, '첫 출근하는 막내딸의 뒷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요?'라는 댓글은 유치원생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엄마로 재탄생 됩니다.


인스타툰 시작 1년 만에 팔로워 30만 명과 외주 문의 폭주를 달성한 그. 알고 보면 10년 차 내공의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꽤 잘나가던 그는 어느 날 회의감에 그림을 쉬게 되었고 "낙서라도 함께 SNS에 올려보자"라는 선배의 말에 필명을 급조해 만화를 올리기 시작했다고. "저는 키가 커서 키크니가 선배는 코가 커서 코크니가 되었어요. 정작 선배는 결혼 후 멀리 이사가셔서 저 혼자 만화를 올리게 되었죠." 예상 밖의 인기에 선배가 배 아파하진 않냐는 질문에 "엄청 아니꼽게 보세요. 요샌 전화도 잘 안 하시더라고요"라며 웃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얻은 소득이어서일까요? 그는 자신의 만화가 누구에게도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픽션이 아닌 주인이 있는 이야기기에 너무 장난스럽지도 너무 신파로 소비되지도 않도록 검열을 거듭하죠. 재미를 넘어 팔로워들의 위로와 공감을 사는 것도 이러한 섬세함 때문일 것입니다.


"얼굴 공개는 조심스럽다"라면서도 스스로를 "재미를 향해 달려가는 폭주기관차"에 비유하는, 반전 매력이 가득한 키크니를 문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봤습니다.


Q 검색을 해봐도 필명 외 이름이나 나이, 사진을 찾을 수 없습니다. 특별히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저로선 이런 질문을 받는 게 신기해요.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제 사생활은 궁금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림을 통해 제가 드러나고 피드백을 받는 건 좋지만 저라는 사람 전체가 노출되었을 땐 그 평가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요. 몇몇 친구를 제외하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가족들도 제가 키크니인 걸 몰라요.


Q 키크니 캐릭터와 실물이 굉장히 비슷하네요. 캐릭터 옷에 쓰인 '일러스트터미네이터'는 어떤 뜻인가요?


얼마 전 '작가와의 만남'을 했는데 캐릭터와 닮았다는 말을 많이들 하시더라고요. 요새 살이 부쩍 올라서 더 비슷해졌어요. '일러스트터미네이터'라는 말장난은 단단해져야 한다는 일종의 다짐이랄까? 일러스트가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일이 없으면 백수거든요. 마음 굳게 먹고 열심히 일해야겠다라는 자기 최면을 담아 저 혼자 장난식으로 쓰던 말이에요. 덩치가 큰 것도 영향이 없지 않아 있고요.


Q 어떻게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셨나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아버지가 정말 다재다능하셨거든요. 노래도 잘하시고 그림도 잘그리시고 글씨도 잘쓰시고. 아마 그런 걸 보며 배웠었나 봐요.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먹고살아야지 결심했죠. 대학 졸업 후 몇 개월 동안 일을 못 구하고 있었어요. 가세가 기울었을 때도 전적으로 지지해주시던 부모님이 '이제 그만 해야 하지 않겠니'라고 슬쩍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충격이었죠. 서점에 가서 책 뒷면에 있는 출판사 이메일을 다 수기로 적었어요. 200군데 정도에 포폴(포트폴리오)을 보냈고 그중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작업을 했죠. 반응이 좋아 다른 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요.




Q 꽤 잘 나가던 일러스트레이터였던데 인스타툰을 올리기 시작한 건 왜인가요?


재작년 무렵이었어요. 힘든 일은 꼭 몰려오잖아요. 이런저런 일이 겹쳐 몸이 무너졌어요. 심리적 변화만 있었더라면 참고 넘어갔을 텐데 아무 데서나 잘 수 있을 정도로 무던했던 몸이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겠을 정도로 변하더라고요. 공황장애 비슷한 느낌이었죠. 괜찮아지길 바라며 무작정 쉬고 있는데 한 선배가 낙서라도 좋으니 SNS에 그림을 올리고 그게 모이면 독립출판이라도 해보자고 하셨어요. 그림은 오래 그렸지만 독자들의 반응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어요. 댓글이 달리고 그림을 좋아해 주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더라고요. 더 소통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보자 해서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다'를 시작했죠.


Q 다양한 SNS와 커뮤니티에서 키크니 님의 만화가 언급되고 있어요. 이렇게 화제가 될 줄 아셨나요?


싸이월드 이후론 SNS를 전혀 하지 않아 이런 세계가 있는 줄 몰랐어요. 팔로워가 많아지는 게 왜 좋은 건지 왜 태그를 붙여야 하는 지조차 몰랐으니까요. 소통하는 것이 재미있어 '쉬는 동안 해봐야겠다' 했던 거였는데….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줄은 몰랐어요. 제가 더 큰 인물이었다면 기획을 해서 접근했었을 텐데요. (웃음)


Q '농담이 과하지 않고 유쾌하다', '키크니가 또 날 울린다' 같은 반응이 많아요. 독자의 요청을 한 컷에 담아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것도 제가 뭐 대단히 센스가 넘쳐서 그렇다기보다, 애초에 보내주신 질문과 고민을 해결할 능력이 제겐 없어요. 그래서 제 식대로 말장난을 하거나 장면을 틀어서 보여주죠. 제가 툭 던져 놓은 걸 보시는 분들이 현명하게 이해해주셔요. 악의 없이 받아들여 주셔서 좋은 결과가 된 것 같아요.




Q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과 반려동물 이야기도 자주 다뤄요. 의도가 왜곡되기 쉬울 것 같은데 논란이 없네요.


그런 류의 논란을 엄청나게 경계해요. 제 그림을 찾아서 봐주시고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이 불편함을 느껴선 안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림을 그리고 난 후에 주변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이 보여주죠.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저한테 괜찮다고 남들에게 괜찮은 건 아니니까요. 나름의 검열을 합니다.


Q 가장 인상 깊었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다' 요청 댓글은 뭐였나요?


'또또 이야기'요. '3년 전 무지개다리 건너간 또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요.'라는 댓글이었는데, 늘 재미있는 이야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짠한 이야기를 다룬 거거든요. 이랬으면 좋겠다 싶어서 그린 건데 이렇게까지 좋아해 주실 줄은 몰랐어요.

아직 그리지 못한 것 중에 꼭 그리고 싶은 것도 있어요. 동생을 잃은 언니의 이야기예요. '이제 저와 술 한잔할 수 있는 나이가 됐는데 같이 술 마시는 그림을 그려주세요'라는 요청이었는데 아직은 돌파구가 없어서 그냥 보고만 있어요.


Q 최근엔 중국 팬분들이 생겼다고.


일단 팬분들의 존재 자체가 신기해요. 나한테 어떻게 이렇게까지 잘 해주시지? 관심과 댓글만으로도 감사해 늘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선물을 보내주신다거나 장문의 DM을 받을 때면 울컥해요. 눈물이 많지 않은 사람인데.(웃음) 어떤 분이 제 만화를 중국어로 번역을 해서 웨이보에 올리셨어요. 그걸 보신 중국 분들이 한글로 DM과 편지를 보내주셨고요. 묘한 기분이었어요. 내가 헛살지 않았구나, 아 그림 그리길 잘했다!


Q 팔로워 30만 명을 돌파했어요. 일이 많이 늘었을 것 같아요.


못 읽은 메일이 많아 죄송할 정도로 외주 요청이 늘었어요. 워낙 아이디어를 내고 일하는 걸 좋아해서 열심히 하고 있죠. '키크니'로 번 돈은 같이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뭐라도 해보려고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통 모르겠어서 태어나 처음 기부라는 걸 했어요. 백만 원을 할까 하다가 손을 벌벌 떨며 오백만 원을 했죠.(웃음) 얼마나 뿌듯하던지.


Q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다'는 언제까지 그리실 건가요?


남들이 봤을 때 재미있을 때까지요. 재미없다고 하면 단칼에 없앨 거에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건 많으니까요. 또 이것저것 찔러보다 반응이 괜찮으면 또 그걸 쭉 하겠죠. 장담하는데 결국 인기가 급격하게 추락할 거에요. 이미 지금까지 받은 게 충분하기 때문에 괜찮아요.


Q 아까 터미네이터처럼 단단해지고 싶다고 하셨는데 정말 단단한 느낌이에요.


제가 만약 어리고 경력이 없었더라면 이 관심이 너무 좋아서 TV 섭외도 받아들이고 저를 더 오픈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돌아가게 될지 대충 보여요. 그림으로 소통하고 저를 아끼는 게 가장 오래갈 수 있는 방법이죠. SNS를 시작하며 초창기에 느꼈던 행복, 딱 그만큼의 만족감만 가지고 계속 그림을 그리며 오래오래 소통하고 싶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재미있는 걸 죽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나만 재미있으면 된다고 이제껏 생각했는데, 남들과 함께 재미있으면 어마어마하게 즐겁다는 걸 알아버렸어요. 지금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는 중이에요. 계속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어요. 좋게 봐주시면 더할 나위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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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ㅣ 강지윤 기자 tangerine@sportsseoul.com, 키크니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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