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최근 2~3년간 일본 언론에 자주 등장한 단어 중 하나는 ‘제3차 한류붐’일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코리아타운 신오쿠보(新大久保)에 가면 한국에서 유행하는 패션과 화장을 따라 한 일본 10~20대 학생들이 한 손에는 치즈 핫도그, 다른 한 손에는 아이돌 굿즈를 들고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데 일본 언론에서 이러한 현상을 ‘제3차 한류붐’이라고 명명했다. 그 계기를 마련한 것은 다름 아닌 K팝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와 방탄소년단이다. 발표하는 노래마다 오리콘 차트 1위를 휩쓸고 일본 드라마의 주제가를 부를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그들은 일본 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며 K팝의 위상을 한껏 높였다. 또 작년 연말에는 한일 합작 걸그룹 아이즈원이 일본 4대 연말 가요제 중 하나인 ‘FNS 가요제’에 출연해 한국어로 노래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방송 직후 아이즈원 관련 키워드가 일본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검색어 순위를 장악한 것은 그만큼 K팝의 영향력이 크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한 일본의 K팝 열풍을 애정으로 지켜보고 함께해 온 사람이 있다. 바로 방송인겸 한국 대중문화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후루야 마사유키(44)씨다. 일본에서 한류열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전인 2001년부터 홋카이도 FM ‘노스 웨이브’의 한국음악 전문 방송 ‘비트 오브 코리아(BEATS OF KOREA)’의 DJ를 맡아온 그는 현재 라디오 방송 5개, TV 프로그램 3개에 출연 중이며 매월 15건 이상의 한류 관련 이벤트 사회를 담당하고 4군데의 매체에 칼럼을 연재중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한류스타들의 팬미팅 진행을 도맡으며 일본 내에서 ‘한류 전도사’ 역할에 앞장서 왔는데 대학 졸업 후 떠난 캐나다 유학 중에 우연히 들은 유희열(Toy)의 음악에 감동을 받아 한국행을 결심했고 1998~1999년 한국 유학을 계기로 접한 한국 가요들을 일본인들에게도 들려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20여 년간 한국 대중문화 관련 일에 종사해오고 있다.

후루야씨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일본에서 한국 가수의 시디를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타워 레코드나 HMV같은 대형 레코드숍에 가면 ‘월드뮤직’ 코너 안에 ‘South Korea’라는 작은 칸이 있었는데 거기에 H.O.T.나 S.E.S.같은 극소수의 아이돌 그룹 시디만 들어와 있었다”고 회상하며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사비를 들여 한국에 가서 그 달에 발매된 시디를 전부 구입해왔다. 내가 한국 음악을 듣고 한국에 관심을 가진 것처럼, 음악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이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묘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라디오에서 처음 한국 가요를 틀었을 때는 항의가 빗발쳤지만 그럼에도 음악에 예민한 청취자들로부터 하나둘씩 반응이 올 때마다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후루야씨는 케이팝 열풍의 시작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직 K팝이란 용어가 없었던 1990년대 후반부터 강수지나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가수들이 일본에서 활동을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1998년에 일본에 진출한 S.E.S.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모든 한국 아티스트들의 기초가 되지 않았나 싶다. S.E.S.의 진출 경험은 추후에 보아나 동방신기의 성공으로 이어졌는데 사실 그들과 함께 K팝의 초석을 닦은 또 하나의 존재가 바로 한국 드라마 OST였다. 일본에서 대히트한 ‘겨울연가’의 OST는 100만 장 이상 팔리면서 한국음악의 입문 역할을 했고 그걸 들은 사람들이 결국 동방신기나 비,세븐 같은 가수에게 관심을 가진 것이다. 그렇게 아이돌 가수와 OST라는 양 갈래의 흐름이 서서히 합쳐지면서 일본에 케이팝이 자리 잡았다고 본다.”

일본에서 약 15년간의 한류열풍을 몸소 겪어온 후루야씨가 가장 충격적으로 꼽은 사건은 바로 ‘카라와 소녀시대의 일본 상륙’이다.

“2010년에 카라와 소녀시대가 일본 데뷔를 한 뒤 카라의 한국어 노래를 수록한 베스트앨범이 일본 오리콘 차트에서 주간 2위를 차지한 건 정말 획기적인 일이었다. 일본에서는 외국 가수라 하더라도 일본어로 노래를 부르게 해서 시디 판매 루트를 확보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었는데 한국어로 부른 노래가 대중에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또한 그때까지는 주부층을 중심으로 40대 이상의 한류팬이 많았으나 10~20대 젊은 층이 카라와 소녀시대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마침내 일본의 젊은층이 음악을 계기로 한국의 매력에 한발 다가섰다는 감동을 느꼈다.”

카라와 소녀시대는 일본의 아이돌 그룹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화려한 비주얼과 압도적인 퍼포먼스, 탄탄한 기획력으로 단숨에 일본 팬들을 사로잡았고 K팝의 존재를 깊이 각인시켰다. 2011년도에는 일본의 국민적인 연말 특집 방송 ‘NHK홍백가합전’에 동방신기,카라,소녀시대가 나란히 출연하며 ‘제2차 한류열풍’을 고조시켰고 그 후로도 많은 아이돌 그룹이 일본에 진출하여 한일 문화 교류의 가교 역할을 했다.

후루야 마사유키
K팝 전문가 후루야 마사유키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제공 | 피치 커뮤니케이션

2012년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한일 관계가 냉각상태에 들어가 잠시 주춤했던 한류는 2016년 말부터 트와이스로 인해 다시 한번 활기를 되찾았다. 유튜브를 통해 트와이스의 뮤직비디오를 시청한 일본 여중고생들이 ‘TT포즈’를 따라하기 시작했고 더불어 트와이스의 패션과 화장법이 유행하며 사회적 현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급기야 2017년에 일본 정식 데뷔를 한 트와이스는 최근 한국 걸그룹 사상 최초로 돔 투어를 개최해 K팝 걸그룹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트와이스가 대단한 이유는 세 명의 일본인 멤버가 존재하는 것은 물론, 트와이스라는 브랜드 자체가 일본 여중고생들의 동경의 대상이 된 부분이 큰 것 같다”고 설명하는 후루야씨는,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앞으로는 K팝, J팝, C팝이라는 국경의 구분 없이 아시아라는 하나의 테두리 안에서 오직 콘텐츠로만 승부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오지 않을까 싶다. 최근 일본의 아이돌 지망생들이 모두 한국으로 몰려가는 현상이 그걸 잘 나타내고 있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실 그들은 단순히 한국을 동경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기점으로 세계에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믿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예전에는 드라마를 통해 한국에 관심을 가진 일본인들이 한국을 방문해 드라마 속 한국 문화를 체험하고 그걸 다시 일본에 소개하는 등 이른바 한국 홍보대사를 자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들의 ‘한국 사랑’은 예전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게 후루야씨의 설명이다.

“대학생들에게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한국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 한국어를 읽고 말하는 능력은 예전 세대보다 뛰어나지만 한국의 정치나 역사,전통문화를 알려고 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즐기는 한국 여행이란 연예 기획사 앞을 찾아가거나 아이돌 굿즈를 사고 길거리 음식을 먹는 것인데, 한국 음악을 듣고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했던 나와는 완전히 반대다. 초기 한류붐을 이끌어왔던 중장년층이 최근 정치적 문제로 한국과 거리를 두게 된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젊은 K팝 팬들은 문화와 정치가 서로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방면에서 악영향이 나타날까 우려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이 K팝에 흥미를 잃은 순간,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지금부터 K팝을 이해하고 있는 일본 사람들이 나서서 ‘역시 한국이 좋다’고 느낄만한 환경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위기감 속에서 후루야씨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현재 한류를 즐기고 있는 젊은 층의 의식 변화와 본인이 몸담고 있는 방송 미디어의 역할이다. 그는 “관심 있는 정보만 골라 볼 수 있는 인터넷과 달리 방송 미디어는 불특정 다수에게 새로운 정보를 전달할 가능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서로의 가치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최근 활발해진 한일 합작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이 함께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각각 큰 재산을 얻고 있다. 일본은 한국의 순발력과 인터넷 활용 노하우를 배우고 한국은 일본의 장기적인 안목을 흡수해 빠른 결과에만 치중하지 않게 되면 좋겠다”며 기대감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러한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서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중국이 합류하기 전까지 한국과 일본 양국이 먼저 주도권을 잡아둘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도쿄 | 신무광 오승호 이하나(피치 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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