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 이태현 "격투기로 잠시 한눈판 시간, 내겐 도움된 슬럼프"[리와人드] (+SS영상)
    • 입력2019-04-18 11:00
    • 수정2019-04-1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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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현 용인대 교수
씨름 천하장사 출신 이태현 교수가 15일 용인대에서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를 마친 뒤 미소 짓고 있다. 이용수기자
‘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용인=글·사진 | 스포츠서울 이용수기자]모래판 위의 황태자, 이태현(43)은 현역 시절 천하장사 3회, 백두장사 20회 등 각종 장사 타이틀을 40차례 이상 차지했다. ‘한국 씨름의 전설’로 불리는 이만기의 백두장사 18회보다 더 많은 기록이다. 한때 모래판이 아닌 격투기 링 위에 서는 등 잠시 한눈팔기도 했지만 다시 씨름판으로 돌아왔다. 그는 국내 유일의 씨름학과(무도대학 격기지도학과)가 있는 용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양성에 힘쓰는 한편 대한씨름협회 이사로도 활동하며 씨름의 대중화, 세계화를 위해 일선에서 뛰고 있다.

196㎝의 거대한 덩치 덕분에 멀리서도 그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제자들을 살뜰히 챙기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 속에서 씨름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현역 시절 들배지기와 밭다리걸기가 주무기였던 이 교수는 자신의 기술을 제자들에게 전수하며 씨름 인재를 키우고 있었다.

이태현 용인대 교수
씨름 천하장사 출신 이태현 교수가 15일 용인대 씨름장에서 무도대학 격기지도학과 씨름전공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1시간 30분 끝에 탄생한 ‘천하장사’ 이태현이 밝힌 비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이태현 교수는 지난 1994년 당시 청구 청룡씨름단에 입단하며 민속(프로)씨름에 발을 디뎠다. 프로 데뷔와 함께 타고난 실력을 뽐낸 이 교수는 부산에서 열린 추석 천하장사대회에도 출전할 수 있었다. 그리곤 장장 1시간 30분간 승부를 펼친 명경기가 탄생했다. 결승전까지 오른 이 교수는 1년 후배인 백승일과 샅바를 잡고 천하장사를 두고 힘겨루기를 했다. 1983년 민속씨름이 출범된 후 가장 긴 시간이 소요된 경기였다. 이 교수는 “12번의 재경기를 했다. 그때는 지면 안 된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된다고 생각하며 버텼다. 1시간 30분 동안 모든 집념을 쏟아부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계체 끝에 어렵사리 천하장사에 오른 이태현 교수는 “경기 뒤(1시간 30분간 경기를 펼친) 부작용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스포츠에서 한 순간의 집중력이 승부를 좌우한다는 말처럼 이 교수는 승리를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는 “부산에서 대구로 올라오는 동안 온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정신은 말똥말똥했다. 물 한 잔 먹으려 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데 정신은 또렷했다. 너무 집중하다보니 집중력이 안 풀린 것이다. 환장하겠더라”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대단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경기 뒤 이태현 교수가 느낀 건 몸의 이상만이 아니었다. 부산에서 대구로 오는 휴게소에서 달라진 인기를 실감했다. 이 교수는 “사람들의 반응이 엄청났다. 그전까지 내 존재를 몰랐던 사람들이 천하장사에 오르니 많은 관심을 보였다. 밥 먹는다는 소리에 어렵게 몸을 움직여 휴게소에 내렸는데 사람들이 몰렸다. 그때 느꼈다. ‘이게 천하장사구나’ 그러면서도 ‘아, 좋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와중에도 행복하게 사인을 해주고 악수했다”고 비화를 공개했다.

씨름선수 김영현
씨름선수 이태현(앞)과 김영현. (스포츠서울DB)
◇아직도 기억나는 아쉬운 경기, 김영현에게 당한 역전패

혈기왕성했던 현역 시절 이태현 교수는 많은 라이벌과 경쟁했다. 첫 천하장사에 올랐을 때 한 살 아래 백승일과 경쟁했듯이 217㎝의 장신 김영현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이 교수는 “다른 팀이었지만 가장 큰 라이벌이었다. 둘이 가장 많이 싸웠고 막상막하였다”라고 설명했다. 승리를 주고받던 사이였기에 이 교수는 김영현과 2001년 9월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붙었던 천안장사씨름대회 백두장사 결정전을 가장 아쉬운 경기로 꼽았다.

당시 이태현 교수는 2판을 내리 따내며 승리를 굳힌 상황이었다. 그러나 세 번째 샅바를 잡았을 때 밀어치기가 주특기인 김영현이 기술을 사용하면서 장외로 밀렸고 경기가 중지됐다. 하지만 상대 김영현의 돌발 행동에 이 교수는 모래판 바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 교수는 “장외가 되면 경기가 중지된다. 그래서 샅바를 놨는데 나를 밀치더라. 나는 그대로 떨어져 본부석 옆 스피커에 ‘쿵’하고 부딪혔다. 떨어진 충격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더라”면서도 “울화와 분노가 치밀어 올라 다시 씨름판에 올랐다. 감독은 경기할 수 없는 내 상황에 포기하자고 제안했지만 나는 보란 듯이 이기고 싶었다. 그런데 2-3으로 역전패했다”고 아쉬워했다.

이태현 교수는 그 당시 모래밭 바깥으로 떨어진 여파로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만약 모래판 위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김영현 역시 백두장사 타이틀을 따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주위에서 왜 기권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물론 힘들었다. 내가 연습한 목적은 우승이었다. 그때 ‘내가 포기하면 매 대회 힘들면 도망가?’라며 내가 포기하면 후배들도 따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래밭 위에 다시 올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태현 용인대 교수
씨름 천하장사 출신 이태현 교수가 15일 용인대에서 가진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무관부터 격투기까지…인생에 도움 된 슬럼프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슬럼프를 겪는다. 이태현 교수 역시 힘든 시기를 피해갈 수 없었다. 94년 데뷔와 함께 천하장사에 올랐던 이 교수는 2000년 밀레니엄 장사가 될 때까지 부진의 늪에 빠졌다. 매년 각종 장사에 오르긴 했으나 당해년도 챔피언을 뜻하는 천하장사에는 오르지 못했다.

“보통 결승에 오르면 잘한다고 칭찬하지만 내가 우승 못 하면 못한다고 비난했다. 그 당시 내가 우승하면 팀에 휴가가 주어지기 때문에 팀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게 나중엔 강박관념이 됐고 스트레스가 쌓이니 신경성대장증후군에 걸렸다. 경기 전 컨디션 조절을 못 하니 당연히 경기 결과는 좋지 못했다. 그러니 주변에서는 좋지 않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과장돼 퍼지더라. 그래서 98년에는 후배와 가야산 해인사에 일주일간 들어가 마음을 다잡았다. 돌아온 길을 되돌아보며 잡생각을 없애고 운동만 생각하려 했다.”

이태현 교수는 마음을 다잡고 2000년과 2002년 다시 꽃가마를 타고 천하장사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이 교수의 인생 슬럼프는 이후에도 한 번 더 찾아왔다. 격투기 붐이 일었던 지난 2006년 이 교수는 종합격투기 프라이드FC로 잠시 한눈을 팔았다.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첫 경기에 나선 그는 36초 만에 KO패 당했다.

“지금 내가 다시 씨름판에서 일할 수 있게된 건 격투기에서 많은 고생을 겪었기 때문이다. 천하장사로 계속 있었으면 거만했을 것이다. 배움의 시간이었다. 그 당시 금전, 명예, 실력 모두 잃었지만 힘든 고비 덕분에 제2의 삶을 사는 제일 큰 밑거름이 됐다. 격투기 대회 첫 경기를 지고 3개월간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 러시아 훈련 때 고층빌딩에서 고민한 적도 있다. 가족사진을 보며 참았지 안 그랬으면 뛰어내렸을 것이다. 그 정도로 심신이 약해지고 굉장히 힘들었다. 그 경험이 내가 지금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더 많이 보이고,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게 됐다.”

용인대 씨름 선수들
씨름 천하장사 출신 이태현(맨 뒷줄 가운데) 교수가 15일 용인대 씨름장에서 무도대학 격기지도학과 씨름전공 제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이용수기자
◇씨름의 세계화 위해 뛰어다닌다

남과 북의 씨름은 지난해 11월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 등재됐다. 이태현 교수는 당시 아프리카 모리셔스까지 날아가 영광의 순간을 지켜봤다. 대한씨름협회 이사로 활동 중인 이태현 교수는 씨름의 세계화를 위해 종횡무진 뛰고 있다. 미국 뉴욕에도 씨름의 가치와 필요성을 꾸준히 전달하고 있다. 이 교수는 “다인종, 다문화가 모여 있는 뉴욕에 선수들도 데려가 씨름을 보여주고 있다. 외국인들도 씨름을 배워서 자기들끼리 재밌게 즐긴다. 씨름의 대표성이 좋다고 생각한 게 과거 스페인 전지훈련 때였다. 당시 바닷가에서 훈련했는데 몸 좋은 지역 경찰이 찾아와 관심을 갖더라. 자신보다 몸집이 작은 우리 선수에게 5판 중 한 판도 못 이기자 이튿날도, 그다음 날도 찾아와 씨름을 배웠다. 외국에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씨름이 유네스코에 등재될 때 북측 인사도 함께했다. 지난 2월에는 대한씨름협회 박팔용 회장이 1박 2일 일정으로 금강산을 방문해 북측과 씨름의 남북 교류 문제를 논의했다. 씨름의 세계화가 남북 교류로 이어지는 현장이었다. 한반도 고유의 민속놀이였던 만큼 남북을 하나로 만드는 데 씨름이 주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이태현 교수는 “남한, 북한, 판문점 어디든 남과 북의 흙을 섞어 한 번 남과 북의 선수들이 샅바를 잡는 게 꿈이다. ‘피부가 맞닿으면 정이 든다’고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상징적인 의미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씨름의 세계화를 위한 직접적인 움직임도 대한씨름협회를 통해 보여질 것으로 보인다. 오는 8월 열리는 충주세계무예마스터십에는 세계 각국의 씨름 유사 종목도 모인다. 이태현 교수는 “아시안게임 등 국제 종목에 시범 종목으로 발을 붙여보는 게 내 숙원 과제다. 유사 종목의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내가 씨름을 가르치면 모두 한다. 그들이 원하는 건 자기들 종목과 교류하는 것이다. 유목민대회에도 씨름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자금력이 있는 국내 기업들과 대회를 만든다면 국제대회로 키울 수 있다”며 “씨름을 국제적으로 넓히려면 기업 스폰서가 필요하다. 기업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협회가 됐든, 씨름인 누구에게든 연락주셨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pur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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