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조효정 인턴기자] KBS 진실과미래위원회(이하 진미위)가 2008년 가수 윤도현이 TV와 라디오 진행자에서 동시 하차한 것이 '블랙리스트 사건'의 시발점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18일 진미위는 지난 2일 제11차 정기위원회를 열고 'TV·라디오의 특정 진행자 동시 교체 사건' 조사보고서를 채택, 의결했다고 밝혔다.


진미위는 2008년 8월 이사회에서 정연주 KBS 사장 해임이 결정되면서 이병순 사장이 취임한 후 첫 개편부터 다수 외부 MC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교체됐다고 지적했다. 당시 윤도현은 KBS2 예능프로그램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KBS 2FM '윤도현의 뮤직쇼'에서 하차했다.


윤도현은 2008년 5월 17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문화제에 참석해 정부 비판 발언을 한 바 있다. 이후 2008년 10월 초 '윤도현의 러브레터' 제작진에게 "'러브레터'를 그만하겠다"고 하차 의사를 전달했다.


이에 예능1팀장은 "'윤도현의 러브레터'는 KBS의 대표 프로그램이자 장수 프로그램이다. 윤도현을 설득하고 사회 참여를 조금 자제시켜 달라"고 윤도현 소속사인 다음기획 김영준 대표에게 요청했다. 당시 팀장을 포함한 모든 제작진과 제작 간부들은 "윤도현은 꼭 필요한 진행자"라며 적극적으로 하차를 만류했고, 개편과 관계없이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하는 것으로 양측은 합의했다.


하지만 2008년 10월 29일 예능1팀장은 담당 CP와 PD를 불러 윤도현을 하차시키라고 지시했다. 예능1팀장은 조사 면담에서 "자신이 바꾸라고 지시한 적이 없으며, 하차시키도록 상부에서 지시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CP와 PD, 그리고 김영준 다음기획 대표는 모두 "팀장이 하차 지시했다"고 공통으로 진술했다. 최종적으로 윤도현에게 하차가 통보됐으며, 이후 '러브레터'는 이하나의 '페퍼민트'로 바뀌었다.


윤도현이 TV에 하차 의사를 밝혔을 시점에 라디오에도 동일한 의사를 전했다. 라디오 제작진은 그의 하차를 만류하기 위해 한 달간의 DJ 휴가를 보내줬다.


2008년 10월 말 윤도현의 라디오 복귀가 가까워지자 2FM 팀장은 담당 PD를 통해 윤도현의 복귀 의사를 물었다. 10월 동안 2FM에서는 지속적인 개편회의가 진행됐고, 개편회의 중 "'윤도현의 뮤직쇼'는 개편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진행자 교체도 없다"고 의견이 모였다.


그러나 10월 29일 TV에서 하차 통보가 이뤄졌던 것처럼, 2FM팀장은 윤도현에게 하차를 통보했다. 이번 조사에서 2FM 팀장은 이와 관련해 "당시 라디오 본부장의 지시로 하차를 통보했다"고 진술했다.


TV와 라디오 모두 윤도현을 유임하기로 하고, 후임 진행자가 정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지명도가 높은 MC를 갑자기 교체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KBS진실과미래위원회는 "이 일은 이후 지속해서 발생한 특정인들에 대한 출연 배제, 이른바 '블랙리스트'사건의 시발점이 됐다고 할 수 있다"고 짚었다.


윤도현의 하차와 함께 2008년 11월 가을 개편에서 다수의 출연자들이 교체됐다.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는 KBS 시사교양프로그램 '심야토론'과 KBS1 라디오 '열린토론' 진행자 자리에서 내려왔다.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KBS1 라디오 '박인규의 집중 인터뷰'에서, 배우 정한용은 KBS2 라디오 '정한용의 시사터치'에서, 방송인 김구라가 KBS2 라디오 '김구라 이윤석의 오징어'에서 하차했다.


진미위는 "위 인물들의 하차를 둘러싼 정치적 배경에 대한 의심이 지속해서 제기됐다"며 "실제로 2017년 9월 11일 국정원개혁위는 5인 중 윤도현, 김구라가 이명박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82명에 포함됐다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또 이들의 하차 과정이 비정상적 절차를 밟았으며, 국가정보원의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편, 윤도현은 지난 2월 음악 프로그램 '더스테이지 빅플레저'의 새로운 MC로 발탁되면서 10년 만에 MC 자리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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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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