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엑소
그룹 엑소. 제공|SM엔터테인먼트

[스포츠서울 신혜연기자] 한류로 형성된 전 세계의 팬덤이 진화하고 있다. 오늘날의 팬덤은 스타에게 맹목적으로 관심과 사랑을 쏟았던 과거와 달리, 스타와 팬이 사회적인 이슈를 함께 고민하고 서로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활동을 펼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드라마 ‘가을동화’, ‘겨울연가’가 일본을 강타하고 ‘대장금’이 동남아를 사로잡으며 드라마 콘텐츠가 1세대 한류를 이끌었다면, K팝가수들이 2세대 한류 열풍을 이어갔다. 2013년 가수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를 뒤흔든 이후 한류는 더 뜨거워졌고, 미국의 빌보드 메인 차트 1위에 오른 그룹 방탄소년단까지 열기를 더하면서 3세대 팬덤은 유럽을 넘어 북미와 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다.

◇스타를 향한 응원을 넘어 성숙해지고 다양해진 팬덤 문화

과거 팬덤은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는 맹목적이고 극성맞은 모습때문에 ‘빠순이’, ‘사생팬’이라 불리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다. 스타를 위해 음반과 관련 굿즈를 사고, 선물을 하는 일이 팬덤의 자세라고 여기며 과열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의 팬덤은 단순히 스타를 추종하는 데서 벗어나 스타의 이미지와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까지 시야가 확장되고 있다. 매니지먼트사에서 고민할 법한 고민이 팬덤 게시판에 쏟아지는 일도 잦다.

이런 움직임은 팬과 스타가 함께 사회공헌 활동을 하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로도 발현되고 있다. 사회적 이슈에 귀를 기울여 약자를 위한 기부 및 봉사 활동, 세계 환경 문제 해결을 캠페인 등 성숙한 활동을 보여주는 팬덤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참여형 팬덤 문화는 스타의 위상을 높이고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스타의 생일, 새 앨범 발매일, 콘서트 개최를 기념해 다양한 단체에 현금, 앨범, 쌀, 헌혈증 등을 기부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찾아가 봉사, 선교 활동을 하고 치료 지원, 시설 설립에 동참하는 팬덤활동도 흔해졌다. 이 같은 선행은 스타가 먼저 사회 공헌 활동에 동참함으로써 스타를 서포트하는 팬덤이 참여하고, 때로는 팬들의 선행에 감동한 스타가 팬들의 선행에 참여하는 등 스타와 팬의 상호 작용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포토] \'페르소나\' 아이유, 웃음꽃 가득
가수 겸 배우로 활약 중인 아이유가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OTT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페르소나’ 제작보고회에 참석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그룹 빅뱅 멤버 지드래곤의 경우 팬덤과 함께 기부활동을 펼치는 좋은 예다. 지드래곤이 꾸준히 기부 활동을 펼치자 팬클럽은 그의 생일인 8월 18일에 맞춰 어린이 재활병원에 정성을 기부하는 등 매년 나눔 문화에 동참한다. 배우 유아인의 팬들은 “소외 계층 아이들의 미래를 응원하는 배우와 뜻을 함께 하기 위해 기부에 동참했다”며 수년째 기부를 실천, 학생들 지원에 힘쓰고 있다. 또 서태지 팬클럽은 에코 프로젝트에 관심 있는 서태지를 위해 브라질 열대우림에 ‘서태지 숲’을 조성했고, 결식아동을 돕는 일에도 동참했다.

엑소 시우민의 팬클럽은 장애 어린이들을위한 재활치료비를 꾸준히 기부하고 있다. ‘기부천사’로 불리는 아이유는 팬클럽과 함께 지난해 연말까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총 2억원이 넘는 통큰 기부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장애인이 재활·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성장을 응원하는 푸르메 재단의 백해림 모금 팀장은 “스타와 팬이 함께 고민하면서 기부 문화도 변화하고 있는 거 같다. 보통 부담감과 책임감을 갖고 기부를 시작하는데 팬덤의 기부는 스타를 위해 시작한 일이다 보니 즐거움이 되고 지속적인 애정으로 이어진다”고 팬덤의 기부 패턴을 설명했다. 기부자의 연령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도 팬덤의 활동 때문이라고 봤다. 백 팀장은 “학생에서 성인이 된 이들이 기부를 이어가고 자신만의 기부 스타일을 구축한다”고 말했다.

◇‘3세대 팬덤’ 어떻게 생겨났나

SNS와 커뮤니티 등 네트워크 시대의 발달로 3세대 한류는 더욱 날개를 달았다. 방탄소년단이 글로벌한 아미 팬덤을 구축할 수 있었던 건 사회 문제를 담아내고 세계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가사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언어는 달라도 공감 가는 가사와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가 어우러져 K팝의 매력에 세계 시장이 빠져들었고, 음악으로만 표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스타를 중심으로 사회적인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영향력으로 방탄소년단은 유엔(UN) 정기 총회에서 연설을 하는가 하면, 아이돌 최초이자 역대 최연소로 화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최영일 문화평론가는 “지금의 스타와 팬은 세계로 시각을 돌려 사회 약자, 청소년 후원 등에 힘을 쓰고 앞으로 함께 도와야 할 곳을 발굴하기도 한다. 전세계인이 즐기는 SNS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에게 콘텐츠가 공유되고 문화·예술을 넘어 삶과 융합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룹 엑소 시우민
그룹 엑소 시우민. 제공|SM엔터테인먼트

엑소 팬클럽의 한 관계자는 “SNS, 커뮤니티 등이 발달하면서 스타의 니즈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알게 되고 ‘우리의 스타가 이런 사회적인 활동에 관심이 있구나, 함께 참여하자’는 인식이 커지는 거 같다”며 “스타들을 마냥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닮아가는 것이 진정한 팬의 자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타들의 베푸는 자세를 본받아 앞으로도 좋은 일을 계속하고 싶은 것이 팬들의 마음이다”라고 전했다.

여러 팬덤은 SNS, 커뮤니티 등을 통해 해외 팬들과 캠페인 내용을 공유하고, 콘서트 같은 팬들이 집결하는 행사 때 기부 이벤트를 함께 기획하기도 한다. 소통을 위해 세계 언어로 번역하는 일에 참여하는가 하면 SNS를 통해 해시태그를 공유하면 다양한 기업이 대신 기부하거나 직접 릴레이 기부를 하는 등 여러 형태의 기부에 동참할 수도 있다.

◇팬덤 문화도 수출, 세계적으로 커진 영향력

한국과 같은 사회 참여형 팬덤 문화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면서 뮤직비디오를 접한 해외 팬들이 서울 강남의 문화를 알게 되고 동경하게 됐고,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방탄소년단의 팬덤까지 문화를 아우르는 한류가 도래했다.

공유
배우 공유.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한류 팬덤이 세계 무대로 확장되면서 한국 팬덤 문화가 확산됐고, 해외 팬들이 한국 팬들의 문화를 따라 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부, 나눔의 문화가 해외 팬들에게도 전파돼 순기능을 낳았다. 유노윤호의 일본 팬클럽은 환아복 사업을 지원하고, 방탄소년단의 미국 팬클럽은 질병이나 장애로 입원한 아이들의 미술치료를 위해 기부금을 전달했다.

배우 공유는 중화권 팬클럽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건 극장 상영관을 열어 독립영화 제작을 지원하고 있으며, 현빈, 박보검, 김희선 등은 해외 자선 바자회에에 참여해 세계의 어려운 이웃 돕기에 동참했다. 이영애는 강진 피해를 입은 이란에 피해 복구를 위해 기부한 데 이어 인도네시아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성금을 내놨다. 이처럼 스타와 팬의 매칭 기부가 국내를 넘어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하재근 문화 평론가는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다. 한국 팬덤이 사회적 책임성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니 해외 팬들까지 이런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한류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 재고 효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K팝 스타를 좋아하면 똑같은 팬 활동을 해도 사회적 선행을 많이 한다는 인식이 생겨나고, K팝에 대한 호감으로 발전하게 된다”라고 분석했다. 앞으로의 팬덤 현상에 대해서는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주목하고 격려를 하면 더 선한 영향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점차 글로벌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보검 [포토]
배우 박보검.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흠결 생겼지만 발전 가능성이 더 많은 앞으로의 한류

달라지는 팬덤 문화 속에 팬들은 스타와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라면 부도덕한 행동을 해도 무조건적으로 옹호했던 과거와 달리 잘못된 행위나 행동을 하는 스타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움직임과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룹의 이미지를 해치는 특정 멤버들의 퇴출을 요구하는 보이콧을 하거나, 스타의 홍보와 마케팅에 있어 소극적인 기획사에 스타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보이콧을 하는 등 직접적인 의사 전달을 하는 사례도 늘었다.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가 가요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사태의 발단이 된 빅뱅 승리를 비롯해 메신저 채팅방에서 성관계 영상을 공유한 가수 정준영, 하이라이트의 용준형, FT아일랜드 최종훈이 연예계 은퇴, 혹은 잠정적인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자발적으로 활동 중단을 선언한 스타도 있지만 해외 팬들과 연합해 기획사에 스타의 퇴출을 요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근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여러 아이돌 그룹이 빌보드 차트에 진입하면서 K팝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이번 사건으로 K팝의 이미지 손상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K팝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를 돌아보고 시스템을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 또한 커졌다. 팬덤 역시 ‘무조건적 지지’ 보다는 ‘내 스타의 책임감’을 요구한다.

이와 관련 업계 전문가들은 “‘버닝썬 사태’가 외신에서 많이 다뤄지면서 한류의 위기라고 보는 시선도 있지만 이는 한류 현상 중 일부의 문제점이고 아직도 한류는 건전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앞서 해외 스타들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는 경우가 있었지만 K팝 스타들은 그동안 쌓은 순수한 이미지에서 흠결이 발생한 정도이며, 건강한 팬덤 의식으로 극복해나가면서 한류는 세계적으로 더욱 확장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heili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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