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전세계 게이머들을 열광시키며 PC방 좀비를 양산했던 스타크래프트를 기억하시나요? '응답하라! 스타크'는 전설의 프로게이머들의 근황을 인터뷰로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스타크래프트와 함께했던 추억을 공유하겠습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박준범기자]박태민(35)은 프로게이머 시절 '운영의 마술사'로 불렸다. 철저한 운영으로 상대를 제압했다. 그렇게 그는 양대 리그 최초로 결승전에서 테란을 꺾은 저그 유저였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시범 대회였던 2000년 WCGC(World Cyber Games Challenge)의 챔피언이었다. 뿐만 아니라 공식 경기 15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뛰어난 실력자이기도 하다.

은퇴 후 해설위원을 거쳐 이제는 크리에이터로, 또 '아재리그'의 운영자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박태민. '세팅박'이라는 별명답게 자신의 매무새를 다듬고 이야기를 시작한 그는 진지하게 인터뷰에 임하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프로게이머 입문 계기가 궁금하다.

게이머를 하려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중학생 때 교회에 다녔는데, 하루는 당시 전도사님이 예배 끝나고 PC방을 데리고 갔다. 그렇게 접하게 돼서 스타크래프트를 알게 됐다. 승부욕이 워낙 강해서 계속 하다 보니까 게이머가 됐다.

-저그 유저다. 세 종족 중 저그를 고른 이유가 따로 있나.

-사실 많이 알려지지 않지만, 2000년 WCGC(現 WCG) 대회 초대 우승자다.


지금은 'WCG'라고 부르는데, 2000년에는 시범 대회여서 챌린지(Challenge)가 붙었던 것 같다. 규모나 방식은 'WCG'랑 같았다. 저는 초대 챔피언이라고 자부하지만, 항간에는 시범 대회라고 말씀을 하는 분들이 있다. 제 기억에 신문에도 실렸던 것 같다. 그 경기로 문화부장관상도 받고 대회 커리어 중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대회다.

-선수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것도 WCGC 우승인가.


프로게이머가 되기 전에 한창 스타크래프트 '붐'이 불 때 나에게는 '쌈장' 이기석보다 기욤 패트리가 인상적이었다. 살면서 '되고 싶다'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세계챔피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게임을 제대로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우승했다. 첫 우승이기도 해서 값지고 가장 소중한 기억이다.

-하지만 우승 후 프로게이머를 잠깐 그만두기도 했다. 어떤 이유인가.

어리석었던 게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고 등교 1시간 전에 잠이 들다보니 학교를 많이 못 나갔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학교를 그만두고 WCGC 우승을 했다. 그런데 막상 우승하니까 목표 의식이 없어졌고 동기부여도 안 됐다. 학창시절 기억이 좋아서 복학을 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많이 후회하고 간간이 대회를 나갔다. 대회에서 성적이 좋았고, 슈마 G.O라는 팀에 스카우트 돼서 다시 프로게이머를 시작하게 됐다.

-WCGC 우승 말고도 '공식경기 15연승'이라는 기록의 보유자이지 않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데 자부심을 갖고 있는 기록이다. 김정우 선수와 타이기록이다. 성격이나 성향 자체가 분위기를 타면 잘한다. 프로게이머 인생 중 가장 잘할 때였던 것 같다.

-기록을 의식하거나, 연승을 이어가는 데 부담은 없었나.

프로게이머들이 보통 기록을 의식하지 않는다. 이길 때는 자신감이 넘친다. 질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그런 거보다 마인드 컨트롤과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했다. 저그 같은 경우는 경기의 주도권보다 상대방 플레이를 맞춰 가야 한다. 그래서 대회장 가면 대화도 안 하고, 완벽하게 플레이를 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운영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전략을 짜거나 게임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나.

지금은 낯선 방식일 수 있지만 분석이 70~80%였다. 어차피 실력은 비슷비슷하다. 상대가 어떤 전략을 쓸지 혹은 상대의 경기 영상을 다 찾아보고 분석했다. '운영형'이라고 하지만, '전략적 운영형'이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분석이 제일 우선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길 때는 완벽하게 이기는 데 또 질 때는 허무하게 졌던 것 같다(웃음).

-게임에 임할 때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 같다. 평소 성격도 '완벽주의'에 가깝나.


많은 분이 그렇게 오해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게임에 있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치까지 만들어내고자 했다. 승부욕 때문에 그런 거 같다.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100%를 준비해도 80%밖에 소화하지 못한다. 제가 완벽하지 않아서 더 노력했다.

-'운영의 마술사' 다음으로 많이 알려진 별명이 '세팅박'이다.

다른 스포츠를 보면 기본적으로 몸을 풀고 운동한다. 우리가 'e스포츠'라고 하지 않나. 하나의 스포츠이고, 대결에서의 승패에 따라 가치가 평가된다. 1경기를 위해 하루 평균 10~12시간, 1주일 정도 시간을 쏟는다. 모든 게 놓여있던 그대로 있어야 하는 데 연습실 환경과 너무 다르다. 이영호 선수가 자를 들고 다녔던 이유도 마찬가지일 거다. 최대한 연습실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거다.

-그 덕분에(?) 세팅 제한 시간도 도입됐고, 대기 PC도 도입됐다.

당시에는 초창기여서 애로사항들이 많았던 것 같다. 지더라도 후회를 하지 않는 게임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100% 만족한 적은 없다. 그러다 2011년에 해설을 시작하고 선수들의 세팅 시간이 오래 걸릴 때마다 그때 '이런 심정이었겠구나'라고 많이 느끼고 반성도 많이 했다(웃음).

-말씀하신대로 2011년부터 해설 위원으로 전향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사실 해설자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원래 스타크래프트2 선수를 하려고 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돈 때문이었던 부분도 있다. 그리고 공군 소속일 때, 부대 행사에서 스타크래프트 대회 해설이나 중계를 했다. 그러면서 '내가 재능이 있나'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러다 우연히 제의가 와서 하게 됐다.

-게임을 하는 것과 말을 통해 전달하는 건 다르지 않나. 힘든 점도 있었을 것 같다.

-사실 스타크래프트가 아닌 다른 게임 '하드스톤'의 해설도 맡기도 했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노력을 진짜 많이 했다. 처음으로 스타크래프트 이외의 게임에 도전하게 됐다. '하드스톤'은 게임 자체가 생각보다 어려운데 제 딴에는 열심히 했다.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고생도 많이 했고, 욕도 많이 먹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해설자로서, 진행자로서의 역량을 많이 키웠던 것 같다.

-그렇다면 게임단 코치나 감독은 생각해보지 않았나.


코치는 잘할 수는 있는데, 사실 게이머들이 코치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프로게이머들이 냉정하게 군인들보다 휴가가 없다. 그래서 그 생활에 지쳐 있다. 10년 가까이 20명 정도 되는 남자들이랑 합숙생활을 했다. 코치를 하면 또 (합숙을) 해야하니까 솔직히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순위에서 미뤄뒀던 것 같다.

-프로게이머 시절과 해설 위원의 삶을 비교하면, 어떤 게 더 어려운 것 같나.

많이 다른데, 사실 게임은 짧으면, 3분 만에도 끝날 수도 있다. 짧은 시간 안에서도 '승부처'라고 할 수 있는 몇 초의 순간이 온다. 그 순간에 연습했던 기량이 발휘된다. 그런 냉정하고 허무한 승부 세계의 연속이다. 처절한 세계인 것 같다.

방송은 게임과는 또 다르다. 저는 사실 평상시에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웃음). 해설자 할 때도 나한테 안 맞는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였다. 방송하면서 '참 힘들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선수보다 방송이 더 힘든 것 같다. 선수는 자신에게 화가 나는데, 방송은 그 이상의 스트레스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아재리그'를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엔 시즌4로 돌아왔다.


아재리그는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는데 '리그화'가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시작하게 됐다. 시즌 1 이후에 반응이 좋았다. 그러면서 주변의 도움도 받고, 구색을 갖추면서 발전했다. 사실 누구나 생각은 하지만 힘들고 귀찮으니까 하지 않으려고 한다. 공백기가 있는데, 준비하면서 수백 번을 그만두고 싶을 만큼 리그 진행하는 게 힘들다. 하지만 퀄리티가 떨어지는 건 또 못 참는 성격이라 열심히 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된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많은 분들이 스타를 추억하고 떠올린다.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RTS(Real Time Simulation)'라는 게임 장르를 대체할 수 있는 게 없다. 이 장르에서 독보적인 게임이 스타크래프트다. 개인적인 의견인데, 배틀 그라운드나 오버워치 같은 게임은 하는 게 재밌지만, 보는 건 재밌진 않다. 어떻게 보면 롤(LOL)이라는 게임도 스타크래트의 유즈맵이 시작점이다. 또 최근엔 팀 게임이 많아지는데, 스트레스 없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스타크래프트의 장점이지 않나 싶다.

-예전과 비교하면 게임 그리고 프로게이머들의 위상이 많이 올라갔다. 예전과 비교하면 어떤 거 같나.


주위에서 '우리는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냉정하게 돈만 보고 생각하면 부러울 수 있다. 하지만 제가 이룬 업적이나 프로게이머 생활을 되돌아봤을 때 충분히 만족한다. 환경이나 대우는 확실히 좋아졌다. 하지만 제가 지금 스무 살이었다고 해서 그때처럼 우승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지금은 경쟁이 워낙 치열하지 않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지금과 과거를 비교하면 어떤가.

-그러면 박태민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물질적인 게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일을 고민 없이 걱정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는 힘들겠지만, 취미가 일이 되고 일을 부담 없이 하고 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박태민에게 스타크래프트는 어떤 의미인가.


사실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고민 후) 첫사랑이 이뤄지지 않지만 설렘이 있는 것처럼, 저에겐 스타크래프트가 그랬던 거 같다.

영상·사진 l 윤수경 조윤형기자 yoonssu@sportsseoul.com

영상 편집 l 박경호기자 park5544@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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