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조효정 인턴기자] 요즘 정환(류준열 분)이는 '소준열'로 불린다. 소처럼 일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충무로에 그의 손을 거쳐가지 않는 대본이 없다'고 할 정도로 '열일의 아이콘'이자 '연기력 성수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혹시 알고 있는지? 우리가 배우 류준열(33)을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15년 겨울, 책상 서랍 저 아래 깔려있던 낡은 일기장처럼 그립고 정겨운 이야기를 풀어놓은 tvN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을 통해 우리는 그를 처음 만났다. 십 대 시절, 옆집이나 옆옆집에 살던 '훈남'과 '흔남' 그 사이쯤에 있던 '동네 오빠'의 모습으로 그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림 같은 조각미남도 밤톨 같은 도련님도 아니었지만, 친숙함이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이 배우는 단숨에 충무로의 샛별로 떠올랐다. '응팔' 이후 3년 3개월여간 출연한 영화만 15편. 더듬어보면 그때 본 그 영화에도, 또 다른 영화에도 류준열은 있었다. 멀티캐스팅에도 투톱에도 이물감이 없던 그가 이번엔 원톱 주연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류준열의 첫 단독 주연 영화 '돈'은 지난 20일 개봉과 동시에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돈'은 지난 24일 41만 5972명의 관객을 동원해 153만 6255명의 누적관객수를 기록했다. 개봉 첫 주말인 3일간 111만 명이 영화관을 찾았다. 박스오피스 2위 '캡틴 마블'이 약 3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돈'은 부자가 되고 싶었던 신입 주식 브로커 일현(류준열 분)이 베일에 싸인 작전 설계자 번호표(유지태 분)를 만나게 된 후 엄청난 거액을 건 작전에 휘말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주식회사에서 스토리가 전개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한정된 공간에서 표현해야 해 액션신이나 과격한 연기 없이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다.


극 중에서 류준열은 눈빛과 표정만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며 극의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자연스럽지만 카리스마 있게, 심경 변화와 내면의 갈등을 표출하며 극을 이끌어간다. 안도감과 아쉬움을 절묘하게 섞은 쌉싸름한 그의 미소가 영화의 대미를 장식할 때쯤엔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참 잘 큰 배우 류준열의 성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류준열은 '응팔'의 투박하고 풋풋한 첫사랑 정환이와 JTBC 예능 '트래블러'의 편안한 여행 친구로서의 모습이 더 익숙할 터. '응팔'에서 보여줬던 류준열의 가장 큰 매력은 과하지도 넘치지도 않은, 마치 그 시절 남학생 하나가 슥 끼어들어있는 듯한 연기였다. 신인답지 않은 여유와 자연스러움은 예능에서도 이어졌다.


tvN'꽃보다 청춘-아프리카' 편에서나 '트래블러'에서나 익숙한 모습 그대로다. 쿠바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그가 보여준 여유로움은 자극이 넘치는 예능프로그램 사이에서 지친 시청자들에게 편안함을 주었고 친숙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연기에서만은 그는 친숙함을 계속 파괴하는 행보를 이어왔다. '응팔'에서 풋풋한 첫사랑의 아련함을 그려내기 전 류준열은 영화 '소셜포비아(2015)'에서 악플러 처단에 나서는 '현피 원정대'를 생중계하는 BJ 양계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깐죽깐죽 거리는 '비호감' 캐릭터를 완.벽.하.게. 보여주며 신스틸러의 탄생을 알렸다.


영화 '더킹(2016)'에서는 의리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조폭 최두일로 분해, 검사가 된 잘난 친구 박태수(조인성 분)를 끝까지 지키는 묵직한 우정을 보여줬다. 그런가 하면 '독전(2018)'에서는 미스터리한 인물 락으로 분해 마약조직을 쫓는 형사 원호(조진웅 분)는 물론 조직의 보스로 군림하던 브라인언(차승원 분)까지 멋지게 속여낸다.


'리틀 포레스트(2018)'에서는 반듯한 직장을 제 발로 걷아 차고 나와 성실한 귀농생활을 하는 재하로 등장해 사계절 약동하고 살아움직이는 자연 속에서 맑은 정신과 건강한 육체를 지닌 청년의 미소를 보여준다. 단단하게 잘 자란 푸성귀로 한상 가득 차려낸 음식 같은 영화에서 류준열은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 소화력을 선보였다.


그는 언제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인물을 연기한다. 그만의 외피와 목소리와 눈빛을 입힌 인물은 오롯이 스크린 속에서 구현된다. 이것이 바로 류준열의 장점이자 그의 연기적 고뇌가 담겨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류준열이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린 '응답하라 1988'오디션에서 신원호 PD는 그의 손바닥에 '원석'이라는 두 글자를 써줬다고 한다. '원석'이었던 정환이는 3년 3개월간 15편의 영화를 거치며 '보석' 일현이가 됐다.


chohyojeong@sportsseoul.com


사진 | 영화 '돈' 포스터, tvN '응답하라 1988' 화면 캡처, JTBC 제공, 영화 '소셜포비아'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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