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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했던 산둥 미드필더 마루앙 펠라이니(왼쪽)과 경남 미드필더 조던 머치가 지난 5일 두 팀 맞대결에서 볼을 다투고 있다. 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의 재미 중엔 각국 내로라하는 팀이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을 보는 맛도 있다. 일단 첫 라운드만 놓고 보면 한국 K리그 용병들이 고른 기량을 선보이며 중국이나 호주 클럽의 이름값 있는 외국인들보다 대체적으로 잘 했다.

K리그 대표인 전북, 경남, 대구, 울산은 지난 5~6일 ACL 본선 조별리그 1차전을 치렀다. 2승2무를 기록하며 순조로운 스타트를 끊은 가운데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도 준수했다. 가장 먼저 승전고를 울린 대구는 세징야가 1골 2도움을 폭발하며 공격포인트 ‘해트트릭’ 기록하는 활약을 펼쳤다. 그와 짝을 이루는 스트라이커 에드가 역시 1골 1도움으로 웃었다. 지난 5일 대구를 홈으로 초대한 호주 멜버른 빅토리엔 올라 토이보넨(스웨덴), 혼다 게이스케(일본) 등 지난해 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들과 라울 바에나와 같은 스페인 라리가 출신 선수들이 있었지만 거친 K리그에서 단련된 세징야와 에드가 콤비를 당해내지 못했다.

같은 날 중국 산둥을 불러들인 경남도 외국인 선수들이 제 몫을 톡톡히 했다. 경남이 후반 들어 2-1로 역전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엔 입단한 지 한 달도 안 된 네덜란드 공격수 룩 카스타이노스의 움직임이 결정적이었다. 카스타이노스가 들어간 뒤부터 산둥의 수비라인이 흔들리더니 후반 중반 두 골이 터졌다. 카스타이노스도 김승준의 역전골을 도왔다. 프리미어리그 출신 조던 머치도 프리킥으로 골대를 맞히는 등 잘 싸웠다. 물론 산둥에서도 이탈리아 전 국가대표 그라치아노 펠레가 멀티골을 작렬시켰으나 기대를 모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출신 연봉 182억원 짜리 미드필더 마루앙 펠라이니는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경남의 한 해 선수 연봉 총액은 45억에 불과하다. 산둥의 브라질 대표 수비수 지우도 2실점으로 자존심을 구겼다. 오히려 머치의 플레이가 펠라이니에 뒤지지 않았다. 경남은 네게바가 이날 MVP로 선정되는 등 외국인들이 김종부 감독의 전술에 연착륙했다.

6일 두 경기에서도 외국인 선수들이 열심히 싸웠다. 베이징 궈안을 3-1로 누른 전북에서는 한국 5년차 로페즈가 ‘숨은 영웅’이 됐다. 베이징 수비수들이 그의 폭발적인 스피드를 견제하다가 다른 쪽에 공간이 생겨 한교원과 이동국 김신욱 등 한국 공격수들이 득점했다. 이동국의 결승포 출발점도 살펴보면 로페즈가 김민재의 드리블을 가로채기하면서 나온 것이었다. 베이징의 브라질 국가대표 공격수 헤나투 아우구스투는 보이질 않았다. 전북 외국인 선수들의 연봉이 10억을 훌쩍 넘어 비싸다고 하지만 베이징은 외국인선수 4명의 연봉 총합이 무려 265억원에 이른다. 힘든 호주 원정을 떠난 울산도 강풍이 부는 악조건 속에 싸웠지만 0-0 무승부를 이뤘다. 네덜란드 수비수 데이브 불투이스가 홈팀의 공세를 차단했다. 이란 대표팀 공격수 레자 구차네자드가 상대팀 시드니FC에 있었으나 득점에 실패했다.

최근 아시아 각국으로 눈길을 돌리는 수준급 외국인 선수들이 많다. 중국은 5~6년 전부터 ‘차이나 머니‘로 무장, 빅리그에서 전성기가 약간 지난 선수들에게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거액을 제시하며 유혹하고 있다. 호주는 미국 MLS를 닮아가고 있다. 축구 수준이나 구단 재정은 넉넉하지 않지만 축구 산업이 점점 발전하는 중이다. 호주라는 살기 좋은 나라의 이미지도 선수들을 끌어당긴다. 아직 K리그와 붙지 않았으나 일본도 최근 J리그 호황에 맞서 유명 선수들이 조금씩 확보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K리그는 이들과 돈을 비롯해 여러 면에서 이점이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북이나 대구처럼 기존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 축구에 녹아들어 해결사 구실을 하는 경우가 있고 경남이나 울산처럼 주춤하던 선수들을 영입해 요긴하게 쓰는 경우가 있다. 세징야와 로페즈는 브라질에서 거의 무명이었으나 한국에서 꽃을 피웠다.

첫 라운드에선 K리그 외국인 선수들이 판정승을 거뒀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K리그 자국 선수들의 실력은 ACL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들의 꾸준한 활약이 2016년 이후 3년 만의 정상 탈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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