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준
‘배영황제’ 지상준이 지난 5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 SK뷰 커뮤니티센터에서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를 진행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purin@sportsseoul.com

‘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화성=글·사진 | 스포츠서울 이용수기자]지난 10년간 한국 수영을 대표하는 인물이 박태환이었다면 30년 전에는 ‘배영황제’ 지상준(45)이 있었다. 국내 배영에서 경쟁자가 아무도 없었던 그는 지난 1989년 배영 100m에서 국내 최초로 1분 벽을 허물었다. 한국 수영에서 지상준은 조오련에 이어 아시안게임에서 두 번째로 금메달을 목에 건 남자 수영 선수다. 여자 수영 전설 최윤희까지 더하면 세 번째로 한국 수영에 큰 획을 그었다.

현재 지상준은 한국 수영 발전을 위해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다. 지난 2017년 12월 수원시에 개장한 어린이 수영장 ‘스윔월드’를 지인과 운영하며 한국 수영 유망주를 육성하고 있다. 오전에는 화성시 동탄 SK뷰 아파트 커뮤니티센터에서 수영을 지도하기도 하며 엘리트 체육 뿐 아니라 생활체육을 통한 수영 보급화에도 땀을 흘리고 있었다.

지상준
한국 ‘배영황제’ 지상준의 선수 시절. (스포츠서울DB)

◇조오련~최윤희 잇는 아시아 물개였던 지상준 감독

지난 90년 태극마크를 달고 베이징 아시안게임 배영 2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지상준 감독은 94년 히로시마 대회에서도 금빛을 손에 쥐며 2연패를 차지했다. 그는 국내 대회에서 홀로 50개 이상의 한국 신기록을 세운 한국 배영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지 감독은 베이징 대회 출전 당시 금메달을 목에 걸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밝혔다. 그는 “상대 선수들의 기록을 전혀 몰랐다. 대회장에서 선수들 프로필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래서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경기를 뛴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어떻게 한국 신기록을 50개 이상이나 세울 수 있었을까. 외로운 싸움이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훌륭한 경쟁 파트너들이 있었다. 접영, 자유형 등 다른 종목의 비슷한 기록을 지닌 선수들이 그의 경쟁자였다. 지 감독은 “기록이 비슷한 선수들끼리 훈련한 게 많은 도움이 됐다. 서로 안 지려고 하다 보니 기록이 단축됐다”고 설명했다. 지상준의 배영 200m 개인 최고 기록은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세운 2분 00초 01였다. 그는 “첫 시도에 찍은 건데 원래 1분 59초가 나왔는데 판이 바뀌면서 2분 00초 01로 바뀌더라. 아쉬움이 컸다”라고 기억했다.

96년에는 애틀랜타 올림픽 수영 200m B 파이널(8~16위)에 올라 1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세계 무대에서 정상급 선수들과 경쟁한 지 감독은 “당시에는 야외에서 열린 대회에 관한 세부적인 정보를 몰랐다. 실외 수영장 훈련은 2~3주 정도 호주에 전지훈련을 갔을 때 한 번 정도 해봤을 뿐이다”며 “실외에서 하니까 물 잡는 감이 다르더라. 천장이 없어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셨다. 그런 것에 적응하려니 힘들었다. 만약 적응하고 대회에 임했다면 성적이 조금 나아지지 않았을까 한다”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의 한국 신기록은 지난 2008년 김지현(1분 59초 73)이 깨기 전까지 14년간 유지됐다.

무엇보다 지 감독이 지금까지 큰 아쉬움으로 생각하는 건 따로 있었다. 그는 “학창시절 취업 문제로 고민을 덜하고 운동에만 집중했으면 수영을 더 오래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면서 “키도 지금 178㎝인데 185㎝ 정도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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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황제’ 지상준이 지난 5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 SK뷰 커뮤니티센터에서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를 진행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purin@sportsseoul.com

◇변해야 하는 한국 수영, 즐기는 수영 위해 노력 중인 지상준 감

지난 99년 현역 은퇴 후 2005년 성남시청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지상준 감독은 2009년 성남시청과 계약 만료 후 개인 클럽팀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선수들 눈높이에 맞는 지도법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흐름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지 감독은 “지금의 아이들은 예전에 비해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이가 기분 좋게 흥미를 갖고 운동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훈련하는 아이가 하고 싶어야 운동을 오래하고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 감독이 현역으로 뛰던 30년 전이나 현재나 배영만 놓고 보면 기록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현재 한국 신기록은 1분 57초 67로 지 감독의 기록과 불과 3초도 차이나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걸출한 수영 스타 박태환이 탄생하면서 자유형에서 압도적인 기록이 나왔지만 이건 예외로 봐야 한다. 한국 수영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제자리걸음이나 다름 없다. 지 감독은 한국 수영이 제자리에 머무는 것을 지도자의 연속성 부재로 봤다. 그는 “학원 체육에서 지도자들은 좋은 성적을 내야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아이들이 한 사람의 지도자에게 계속해서 지도받기 힘든 부분이다. 지도자 또한 (계약연장을 위해) 성적 위주로 가르치다 보니 기본기를 가르칠 여유가 없다. 아이들을 혹사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적 위주의 훈련이 아닌 즐기는 수영을 강조했다. 지 감독은 “성적에 중점을 둔 훈련을 하다 보니 초등학교 때 월등했던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성적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더라. 초·중학교 때 잘하던 선수는 수영을 오래 못하고, 오히려 서서히 실력이 올라간 선수가 대학을 졸업하고 실업팀에서도 기록이 나오고 오래 선수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결국 성적 위주의 수영보다 즐기는 수영을 해야 실력이 향상되고 기록도 단축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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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황제’ 지상준이 지난 5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 SK뷰 커뮤니티센터에서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를 진행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purin@sportsseoul.com

◇큰 기대하기 힘든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오는 7월 광주에서는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이지만 큰 기대는 걸기 힘든 상황이다. ‘마린보이’ 박태환은 아직도 참가 여부를 밝히지 않았고 한국 수영 간판으로 떠오른 김서영(혼영)과 안세현(접영)의 경우 실력은 올라오고 있지만 여전히 메달권과 거리가 있다. 지상준 감독은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니 우리나라가 입상하면 좋겠지만 세계의 벽이 있어 성과를 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상준 감독이 이번 대회에서 큰 기대를 걸지 않는 건 앞서 언급한 지도자의 연속성과도 연관 있다. 지난 2년여 동안 수장도 없이 사실상 방치됐던 대한수영연맹은 지난해에야 새 회장을 뽑고 대한체육회 관리단체에서 벗어났다. 이 때문인지 최근에서야 국가대표 지도자를 채용했다. 안방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5개월 전에서야 말이다. 지 감독은 “지금 모집하면 시간이 얼마 없다. 선수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며 “4년간 길게 지도자를 선임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지도자들의 직업 연속성을 보장해준다면 지도력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국가대표 지도자 계약 체계가 내가 현역 국가대표일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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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황제’ 지상준이 지난 5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 SK뷰 커뮤니티센터에서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purin@sportsseoul.com

◇그래도 제2의 박태환은 나온다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의 성적을 냉철하게 예상한 지상준 감독이었지만 제2의 박태환에 대한 희망은 놓지 않았다. 한국 수영에 다시 없을 스타로 평가되는 박태환이지만 지상준 감독은 “제2의 박태환은 나온다”고 믿었다. 그가 세계선수권대회 예상과 달리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 이유는 하나다. 대한수영연맹이 관리단체에서 해제됐기 때문이다. 문제의 집행부는 물러나고 새로운 집행부가 한국 수영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새하얀 도화지에 다시 그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지 감독은 새로운 집행부에 제2의 박태환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달라고 희망했다. 그는 “앞으로 어린 선수들이 더 많은 대회에서 경기에 나설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면서 “개인 종목은 2개밖에 못 나가는데 제한을 두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은 1인 2종이다. 세계대회처럼 뭘 뛰든 제한하지 않았으면 한다. 선수들이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세계 기준에 맞춘다면 제2의 박태환이 탄생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pur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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