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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성폭력 사태 등 빙상계 비리의 몸통으로 지목받고 있던 전명규 한체대 교수(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가 21일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와 대척점에 서 있는 젊은빙상인연대가 전 교수를 성폭력 방조자로 콕 찍은 기자회견을 연뒤 불과 3시간여가 지나 그는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전 교수는 지난 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노선영 왕따 레이스’를 기점으로 빙상계 적폐, 갑질의 대표자가 됐다. 일반 국민 중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다.

전 교수는 자신이 부회장으로 있던 대한빙상경기연맹이 특정감사를 거쳐 관리단체가 되는 현실 속에서도 조용히 상황을 지켜봤으나 빙상계 성폭력 사건 뒤 자신에 대한 비판이 활활 타오르자 마이크 앞에 섰다. 전 교수는 국민들에게 사죄를 구하면서도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과는 단호하게 싸우겠다는, 일종의 ‘분리 대응 방침’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특히 심석희에 폭력과 성폭력을 한 조재범 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의 옥중 편지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향후 진흙탕 싸움도 감수할 것으로 보인다. 전 교수가 ‘링 위에’ 오르면서 빙상계 문제는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국민들에게 사죄…폭행과 성폭행은 모른다”

전 교수는 24살이던 1987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를 맡으면서 빙상계에 뛰어들었다. 이후 대표팀 감독과 빙상연맹 전무이사, 부회장을 역임했다. 한체대 교수직에도 올라 실내링크를 관리하는 등 한국 빙상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됐다. 그는 회견에서 자신이 오랜 기간 몸 담았던 빙상계가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된 것에 대해선 사죄했다. 전 교수는 “심석희에게도 사과하고 싶다”고 했고,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그의 한체대 교수 사퇴 주장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고개를 90도로 숙였으나 성폭력및 폭력을 자신이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사실상 전면 부인했다. 전 교수는 “성폭력 관련해선 내가 전부 알 수 없다. 조재범 전 코치가 심석희를 상습 폭행했다는 것도 몰랐다. 그렇다고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빙상계 논란 때 마다 자신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선 2014년 소치 올림픽 때 ‘안현수 파문’으로 곤혹스러웠던 때를 떠올리며 “내가 오래 지도자 생활을 했고, 역할이 있었기 때문으로 본다”면서도 “보도된 것처럼 내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전횡설도 부인한 셈이다.

◇“조재범 옥중 편지는 조작”

이날 회견 하이라이트는 젊은빙상인연대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 공개한 조 전 코치의 옥중 편지가 조작된 것이라고 반박한 장면이었다. 심석희 폭행으로 현재 실형을 살고 있는 조 전 코치는 국정감사 당시 손혜원 의원과 젊은빙상인연대에 편지를 보내 심석희를 때린 것이 전 교수의 압력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체대 선수들의 좋은 성적을 위해 전 교수가 조 전 코치를 때렸고, 심석희 등을 폭행하도록 조 전 코치에게 강요했다는 뜻이다. 손 의원은 당시 “이 정도면 전 교수를 재판정에 세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 교수는 이날 “조 전 코치가 구속되기 전 이런 말을 했다. ‘젊은(빙상인)연대의 어떤 사람이 전명규 비리 내용을 주면 합의서를 써주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확인한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 조 전 코치의 옥중 편지는 (합의서를 받아)형을 감면받기 위해 거짓으로 썼다고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전 교수는 “(젊은빙상인연대)그 사람들이 진심으로 빙상 발전을 위해 활동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며 확실한 대립각을 세웠다.

◇파벌 싸움이냐, 전횡 논리냐

그의 회견 내용은 빙상계 고위직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책임질 일은 책임지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다만 자신은 파벌 싸움 희생양이며, 비판 세력과는 끝까지 싸우겠다는 생각에 방점이 찍혀있다. 전 교수는 “빙상에 파벌 싸움이 심하다고 한다”는 질문에 “(파벌 싸움의)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빙상이 퇴출되지 않고 앞으로도 효자 종목으로 남아있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마침 이날 대한체육회가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퇴출을 검토한다는 일부 언론 보도도 나왔다. 반면 젊은빙상인연대는 파벌 논리가 아닌 전 교수의 전횡을 중단시키기 위해선 그에 대한 다각적인 징계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전 교수와 더욱 치열한 다툼이 예상된다. 조 전 코치 ‘옥중 편지’ 배경과 관련된 진실게임도 갈수록 뜨거워질 전망이다. 전 교수의 회견을 지켜 본 몇몇 빙상인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기색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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