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아시안컵 축구선수권대회 레바논-이란
알리 다에이가 2000년 10월13일 레바논 아시안컵 이란-레바논 경기 도중 상대 선수의 옆차기 수준 태클 속에서 드리블하고 있다. 베이루트 | 강영조기자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최근 축구계 관계자들과 식사를 하다가 아시안컵 얘기가 나왔다. 중국전 직전이어서 당연히 손흥민의 출전이 화제로 떠올랐다. 그들의 생각은 ‘손흥민 논란’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구동성으로 “당연히 선발로 써야지”란 말을 했다.

그러다가 흘러흘러 1996년 12월 UAE 대회까지 흘러갔다. 이번 대회도 공교롭게 UAE에서 열린다. 22년 전 한국은 이란과 8강전에서 스트라이커 알리 다에이에 4골을 얻어맞고 2-6으로 참패했다. 박종환 감독이 즉각 경질되는 등 아시아권 대회에서 보기 드문 참사가 일어났다. 지금까지도 한국 축구 ‘흑역사’ 중 하나로 꼽히는 대회다. 축구에 열광적인 이란인들은 아직도 한국 사람들과 축구 얘기를 하면 당시 대승을 거론한다.

그런데 다에이는 한국 골문에 4골을 넣기 전 K리그로 올 뻔했다. 당시 안양 LG(FC서울)가 1년 전인 1996년 초 공격수 후보를 물색하다가 다에이를 소개받고 테스트까지 했던 것이다. 해외 전지훈련 도중 그를 불러들여 면밀히 검토했던 모양이다. 식사를 같이하던 관계자도 당시를 회상하더니 “테스트에서 떨어졌다”고 말했다. 다에이가 안양 유니폼을 입었다면 당시 국내파 주전 공격수였던 최용수 현 서울 감독과 함께 공격진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나올 뻔 했다. 1969년생인 다에이는 당시 이란 명문 페르세폴리스에서 뛰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국에 오지 못하자 카타르 알 사드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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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다에이가 이란 대표팀 감독 시절이던 2009년 2월 한국전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스포츠서울DB)

묘한 인연이다. 한국전에서 4골을 펑펑 쏟은 뒤 유럽의 러브콜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 분데스리가 아르미니아 빌레펠트가 다에이와 그의 뒤를 받치는 카림 바게리를 한꺼번에 데려가는 조건을 내걸이 아시안컵 직후 사인까지 성공했다. 다에이는 이 때부터 승승장구, 1998년엔 독일을 넘어 유럽 굴지의 명문 구단인 바이에른 뮌헨 유니폼까지 입었다. 아시아인 최초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했다. 1999년 헤르타 베를린으로 옮긴 뒤엔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에도 성공했다.

다에이는 한국전 활약 등으로 인해 지금도 아시아 축구사의 손꼽히는 공격수로 평가받는다. 다에이는 2007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지도자로 변신, 변변한 경력 없이 2008년 이란 대표팀을 맡았다. 2009년 2월 한국과 홈 경기에서 박지성에 동점포를 얻어맞고 1-1 무승부를 기록했는데 이 경기를 기점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란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행에 실패했고, 다에이도 일찌감치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K리그 진출 무산, 한국전 4골 폭발, 유럽 최고 명문 진출, 지도자로서 한국과 맞대결 등 이래저래 한국 축구 및 아시안컵과 사연 많은 사람이 바로 다에이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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