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호 코치
인천유나이티드 박용호 코치가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촬영에 임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purin@sportsseoul.com

‘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글·사진| 인천=스포츠서울 이용수기자] 2002 한일월드컵 태극전사 최태욱(현 축구대표팀 코치), 이천수(현 인천 유나이티드 전력강화 실장)는 고등학교 시절 전국대회 3관왕으로 고교 무대를 주름잡았다. 당시 최태욱~이천수와 함께 일명 ‘부평고 트리오’를 구성했던 이가 바로 박용호 인천 유나이티드 코치다.

지난 2000년 인천 부평고를 졸업한 뒤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박용호 코치는 고향 프로팀에서 동창과 함께 지도자로서 성공할 꿈을 키우고 있다. 선수 시절 FC서울을 대표하는 수비수로도 이름을 알렸던 박용호 코치는 인간미 넘치는 지도자가 되려 한다. 새 시즌 준비에 앞서 인천에 합류한 박용호 코치는 현역 시절 어떤 선수였을지, 지도자로서 어떤 꿈을 키우고 있는지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박용호 코치
인천유나이티드 박용호 코치가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촬영에 임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purin@sportsseoul.com

◇20년 만의 귀환, 부평고의 영광을 인천에서 재현한다

프로 생활을 시작한 뒤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기까지 딱 20년이 걸렸다. 고교 동창 이천수 실장이 뻗은 손을 잡은 박용호 코치는 안데르손 감독을 보좌하며 2019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인천은 지난 9일 선수단을 소집해 관내에서 예열한 뒤 13일 태국 치앙마이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이천수 실장이 제시한 팀의 비전과 목표를 보고 귀향을 선택한 박용호 코치는 치앙마이에서 안데르손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과 새 시즌을 위한 계획을 마련한다.

“안데르센 감독은 외향적으로 카리스마가 강하다. 임중용 수석코치도 있는데 내가 잘 맞춰 지도할 것으로 생각해 이천수 실장이 날 선택한 것이다. 나 또한 지도자로서 자신 있는 부분은 선수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의 팀 비전과 목표가 같다면 충분히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올 시즌 경기에 나서는 선수와 못 뛰는 선수를 지도자들이 진심으로 따뜻하게 대한다면 개인보다 팀을 위해 뛸 것이라고 믿는다.”

박용호 코치는 고교 시절 이천수, 최태욱과 함께 전국을 제패했다. 당시 부평고의 명성에는 ‘부평고 트리오’의 활약이 뒷받침됐다. 위치는 다르지만 20년 만에 동창과 한 팀에서 하나의 목표로 만나 영광의 재현을 기대하고 있다. 다만 걱정되는 부분은 있다. 인천은 매 시즌 초반 부진했다. K리그 승강제가 시행된 이후 단 한 번도 강등된 적 없지만 거의 매 시즌 강등권으로 분류된 건 사실이다.

“올해도 팀 사정상 출발이 늦다. 전지훈련 전에는 선수 구성, 훈련 장비 등 여러 조건이 세팅돼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하는데 환경이 그렇지 못하다. 내가 현역 시절 뛰던 FC서울과는 차이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선수들에게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메시지를 던졌다. 또 이천수 실장 역시 공감하며 클럽하우스 추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소통도 되고 다들 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으니 어떤 시즌보다 초반에 신경 쓰려고 한다. 태국에서 선수들이 안데르센 감독의 축구 철학을 정확하게 이식받으면 발전하지 않을까 싶다.”

박용호
부평고 트리오 박용호,최태욱,이천수(왼쪽부터). 스포츠서울 DB

◇전국 제패 한 부평고 트리오 박용호~이천수~최태욱

박용호 코치의 학창시절 부평고는 전국대회 3관왕에 오를 정도로 최고의 팀이었다. 당시 팀 리빌딩에 나섰던 부평고 감독에게 기회를 얻은 박용호 코치와 이천수, 최태욱은 고1 때부터 경기 감각을 쌓았다. 운동에만 전념하는 팀 분위기 역시 전국 제패의 밑거름을 다지게 했다. “팀 분위기가 좋았다. 다들 시간만 나면 개인 운동을 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양을 운동했기에 우리가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다.”

2000년 박 코치의 고등학교 졸업 당시 축구계에서는 프로로 직행하기보다 대학을 가는 먼저 가는 분위기였다. 대학에 가서 프로에 데뷔하는 수순이다. 하지만 박용호 코치는 최태욱과 함께 안양LG(현 FC서울)에 입단했다. 이천수만 홀로 고려대에 진학했고 부평고 트리오는 이렇게 갈라지게 됐다. “당시 부평고와 동북고(서울), 안양공고가 안양LG와 후원 계약을 맺고 졸업자를 수급받았다. 당시 다른 선수들처럼 나와 이천수는 고려대에 진학하기로 예정돼 있어 진학 예정자들이 모여 일주일간 합숙훈련을 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던 환경과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천수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를 꺾지 못해 대학에 진학했고 나는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사정을 생각해 프로를 선택했다.”

2004 아테네올림픽 축구 아시아지역 예선 한국-홍콩
2004 아테네올림픽 지역 예선 홍콩과의 경기에서 후반전 득점에 성공한 박용호(가운데)가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강영조기자 kanjo@soprtsseoul.com

◇축구 최초 올림픽 메달리스트 될 수 있었던 박용호

올림픽 무대에서 한국 축구가 메달을 딴 건 지난 2012 런던올림픽이 최초다. 이전까지 최고 성적은 1948년 런던올림픽 8강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 8강이었다. 박용호 코치는 아테네올림픽 축구대표팀으로 출전해 최초의 메달에 도전했다. 당시 올림픽축구대표팀은 분위기도 좋았고 대진운도 따랐다. 박용호 코치는 올림픽 예선을 무실점으로 막고 본선 무대 1~2차전과 8강전을 뛰었다. 대표팀은 조별예선을 1승 2무로 마치고 8강에서 파라과이와 만났다.

“우리가 예선 무실점, 전승으로 본선에 올랐다. 수비수간 소통도 잘 됐다. 부족하더라도 협력 수비로 좋은 경기를 많이 했다. 하지만 본선 첫 경기에서 2실점하며 어려운 경기를 했고 두 번째 경기는 무실점으로 막았다. 세 번째 경기는 내가 출전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3차전인 말리전에 당시 사령탑인 김호곤 감독이 내가 아프리카 선수들에 비해 스피드가 밀릴 것으로 생각하셨기에 다른 선수를 기용한 것같다.”

8강 당시 한국은 먼저 3실점 뒤 이천수의 2골로 추격했다. 그러나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초반 실점으로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한국의 4강 진출을 기대해볼 수도 있었다. 또 4강 대진이 이라크였기에 최초의 올림픽 메달도 기대할 수 있었다.

“당시 실점할 때 순간적으로 집중을 잃었다. 한 번 실점하니 연달아 먹혔다. 반포기 상태로 경기를 치렀다. 후반에 이천수의 2골로 따라가면서 분위기를 반전했다. 그래서 아쉬운 경기 중 하나로 기억 남는다. 군대 문제가 걸렸기에 부담이 많았다. 너무 긴장되다 보니 철저하게 준비하기 위해 너무 오버했다. 그래서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 아쉬움이 남는다.”

박용호
FC서울에서 활약한 박용호.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주장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린 FC서울 시

박용호 코치는 프로 데뷔 후 군대를 다녀온 2년을 포함해 11년간 FC서울에서 뛰었다. FC서울에서 숱한 추억들 중 가장 오래 남는 건 주장으로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기억이다. 지난 2010년 빙가다 감독이 FC서울에 선임됐을 당시 주장을 맡은 박용호 코치는 우승의 추억을 남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2010년 우승 전까지만 해도 FC서울은 우승권이 아니라 중상위권이었다. 빙가다 감독이 내게 주장을 맡긴 후 나는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선수들과도 대화를 많이 했다. 경기 때마다 팀 미팅을 하는데 미팅 후 선수들과 시간을 갖고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얘기를 했다.”

주장으로서 책임지고 선수단과 소통한 박용호 코치는 FC서울의 리그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이는 당시 팀 핵심 공격수 데얀과 빙가다 감독의 불화를 풀기 위해 다리를 놓은 덕분이었다. 박용호 코치가 강조하는 소통이 빛난 순간이었다.

“2010년 K리그 2차전 강원 원정이었는데 그라운드에 눈이 많이 쌓인 날이었다. 공도 노란공으로 바꿔 북유럽처럼 축구를 했다. 당시 데얀이 교체되며 감독에게 불만을 표출해 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빙가다 감독이 정말 화가 나 ‘다시는 쓰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다. 이튿날 데얀과 충분히 얘기하고 감독을 찾아가 중재를 했다. 그 일이 잘 풀린 뒤로부터 경기도 승승장구했다. 당시 수원에게 진 1경기 빼곤 홈에서 무패를 기록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박용호 코치
인천유나이티드 박용호 코치가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촬영에 임하고 있다. 이용수기자 purin@sportsseoul.com

◇지도자 박용호의 축구 철학 속엔 명장들이 숨어있다

FC서울에서 11년간 있었지만 선수 말년에는 부산과 강원에서 뛰었다. 다양한 지도자를 경험한 박용호 코치는 스승들에게서 배운 내용으로 지도자로서 기본을 다졌다. 프로생활의 기본을 가르친 조광래 감독(현 대구FC 단장)과 FC서울에서 뛸 당시 엄마 같은 따뜻함으로 뛰지 못하는 선수들까지 살핀 이영진 코치(현 베트남축구대표팀 수석코치) 그리고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며 걸음마를 배운 최윤겸 감독까지 다양한 스승에게 배운 내용을 토대로 축구 철학을 만들고 있었다.

“조광래 단장은 프로의 정신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줬다. 프로에 하루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운동시키며 내 프로 생활의 밑거름을 만들어주셨다. 이영진 코치도 많은 영향을 줬다. 당시 막내 코치였던 이 코치는 우리와 소통도 자주 하고 기술도 많이 알려줬다. 특히 톱 플레이어보다 손길이 더 필요한 선수들을 더 챙겼다. 선수들의 마음을 많이 얻는 것을 보고 나도 지도자가 되면 많은 지도자가 놓치는 부분까지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윤겸 감독은 좋은 점이 많아 본받고 싶다. 절대로 선수를 탓하지 않는 지도자다. 최 감독처럼 되는 게 내 첫 번째 목표다. 최 감독 밑에서 배울 때 누구든 다 존중하니 구성원이 감독을 위해 뭐라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보고 싶은 선생님, 가슴 속, 머릿속에 남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pur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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