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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두루미가 순천에 왔다. 세계적 희귀종이다.
[순천=글·사진 스포츠서울 이우석 전문기자] 두루미는 철새,태곳적부터 한반도를 찾아 겨울을 보냈다. 오랜 손님이요 이웃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귀한 흑두루미가 순천에 왔다고 해서 내려가봤다. 천연기념물 228호인 흑두루미는 전세계 단 1만7000여 마리만 살아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멸종위기종(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자료목록 취약종) 귀빈이라 이들을 맞이한다는 마음부터 설랬다.커피 2리터는 족히 들어갈 ‘텀블러’같이 생긴 600㎜ 렌즈도 챙겼다. 새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새털이 가득 든 점퍼도 챙겼다. 람사르 습지 도시 순천을 찾았다. 순천만 대대포구 인근 논에서 그들을 만났다. 궁금하던 페친을 실제 떼로 만난 듯 무척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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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엔 철새, 바다엔 꼬막이 있다.
◇겨울 순천행

순천을 찾았다. 세상좋다. 스머프를 위해 설계한 KTX고속열차를 탔더니 3시간도 채 안걸려 벌써 순천 시내에 도착했다. 꼬막향이 진동하는 듯 했다. 두루미도 식후경. 먼저 꼬막을 만났다. 졸깃졸깃 탱글탱글한 꼬막에 겨울 맛이 들었다. 한정식집이지만 제철 꼬막이 주를 이룬다. 서울에서도 흔한 것이 꼬막이지만 삶아내는 솜씨가 전혀 다르다.

꼬막이 나지 않는 고장에선 그냥 도시락 반찬처럼 껍데기를 까놓고 양념장을 발라먹게 마련이다. 하지만 순천에선 꼬막을 양념 없이 그대로 먹는다. 양념이 육즙이면 충분하다. 특히 참꼬막은 껍데기가 벌어지지않게 삶아야 한다. 그래야 가득 품은 육즙까지 후루룩 먹을 수 있다. 식당 한켠에 패총을 만들어놓고 새를 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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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가 순천만에서 겨울을 난다. 이중 흑두루미는 굉장히 귀한 종이다. 사진은 청둥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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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대대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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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기머리물떼새도 한마리 찍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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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가 순천만에서 겨울을 난다. 덕분에 관광객도 순천만을 찾는다.

대대포구. 역시 많은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갈대밭 데크를 누비고 있다. 하늘엔 오리떼가 날아들고 몇몇 가족이 신기한 생태 에어쇼를 구경하고 있다. 땅에도 있다. 갯벌에 서있으니 만화영화 딱따구리처럼 생긴 새 한마리가 껑충껑충 다가왔다. 정수리에 긴 털을 세운 헤어스타일이 딱 ‘김무스’아니면 ‘로드 스튜어트’다. 이름은 댕기머리물떼새. 한반도를 찾는 겨울 철새로 이 역시 위기근접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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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은 탐조여행의 성지다.

갯벌 뚝방을 중심으로 반대편 논밭은 굳건히 통제가 되어있다. “가르르 가르르”,“꾹꾸꾹꾸” 소리가 들린다. 청둥오리(아주 어렸을 적엔 청동오리인줄 알았다)가 와글와글한데 멀리 시커먼 녀석들이 눈에 띈다. 출근시간 9호선 국회의사당역처럼 많이도 모였다. 눈이 커졌다. 확실히 ‘포스’가 다르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걷는 자태가 우아하고 도도하다.

“오늘은 1592마리 있습니다.” 안내를 맡은 순천시청 이승희 주무관이 말했다. “엥? 그걸 어찌 알아요?” “저희가 일일이 다 세요.” 믿어지지 않았다. “하하하하! 그럼 저기 잔뜩 있는 오리는 대체 몇 마리 입니까.” “3만4000마리 정도 됩니다.”

“왜 쟤네들은 ‘정도’인가요?” 내 질문에 빈정거린 투가 역력했을까 걱정했지만 바로 명확하고도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10마리 단위로 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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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중인 청둥오리.

탐조전망대로 향했다. 순천시가 식당 건물을 매입해 개조했다. 새들이 놀라지 않게 이 안에서 망원경으로 관찰해야 한다. 전세계에 살고있는 흑두루미 중 10%를 지금 내가 보고 있다. 감격했다. 고개를 처박고 낟알를 주워먹는 놈,부리로 제몸을 긁는 놈,고작 4~5m를 날아 이동하는 놈,(걷는 게 빠를 듯)시꺼먼 놈들이 모여 제각각 여유를 부리며 겨울을 나고 있다. 으쓱대며 ‘텀블러’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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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를 데려온 흑두루미 가족.

놈들은 겁이 많다. 특히나 새끼를 데리고 날아온 가족은 더 그렇다. 조그만 소리나 움직임에도 놀란다.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싶다고 소릴지르거나 돌을 던지면,다시는 이곳을 찾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얘기다. 새벽까지 술 마시다 부모 몰래 방에 들어가는 대학생처럼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들어갔다.

놈들이 내 카메라 촬상소자에 들어왔다. 숨길 수 없는 증거를 남기리라. 세계 흑두루미의 10%를 내가 촬영했다. 괜한 자부심이 생겨난다. 미안하지만 오리에는 눈길이 가지 않는다. 만약에 아프리카 초원에서 어슬렁거리는 사자를 봤는데 누가 물소같은 것을 찍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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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는 올해 순천방문의 해를 맞았다.

‘2019 순천 방문의 해’를 맞는 순천시는 올해 첫 테마로 흑두루미를 내세웠다. 신년에는 역시 학이다. 계절을 반영한 화툿장에도 1월 일광에 학을 그려넣었잖은가. 흑두루미는 재두루미,두루미와는 종류가 다르다. 하얀색,회색,까만색 각각 깃털색도 크기도 다르다.(사실 모두 천연기념물이며 멸종위기종이다) 흑두루미는 색이 검어 노을 지는 하늘에 몇 마리가 함께 비상하는 모습은 더욱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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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상공을 나는 흑두루미.

해가 저물면 날아오를 것이라고 했지만 그전에 추위에 내가 먼저 저물고 말 것 같아 아쉬움을 뒤로 하고 대대포구를 떠났다. 나 떠나는 대대포구 하늘엔 흑두루미 몇 마리가 환송 비행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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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두루미와 ‘그냥’ 두루미.

◇학(鶴)!, 이런 새였어?

취재 이후 두루미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했다. 이래서 여행은 학교라 부른다. 숙제까지 내주니 말이다. 두루미. 한자로는 학(鶴)이다. 다른 새가 아니다. 하지만 학은 뭔가 고고한 느낌이고 두루미라 부를 때는 왠지 오래 살기만하는 장수의 아이콘이 된다. 이게 모두 서영춘 임희춘 콤비의 만담 ‘서(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탓이다. 사실 두루미는 오래 살긴 한다. 두루미는 보통 30~50년을 살고 거북이 역시 비슷하다. 사실 그 이름 중엔 동방삭(3000살)이나 므두셀라(969살)가 더 오래 살았고,조류 중에는 앵무새가 가장 오래사는데 약 80~90년을 산다고 하니 만담 대사를 바꿔야 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람들이 헷갈리는 것 중 하나가 두루미와 학,황새 심지어 백조 등인데 두루미는 학이고 뚱뚱한 황새보다는 말랐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로 유명한 해오라기(왜가리 종류)와도 또 다르다. 숫자 ‘2’를 닮은 백조(고니)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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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순천만에는 다양한 철새가 있다.

아무튼 두루미는 예로부터 영물로 대접했다. 우아한 걸음걸이와 자태를 선비로부터 인정받았다. 궁중에서 추던 학춤(鶴舞)은 향악정재에 들었고 문인들도 학을 그렸다. 심지어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도 등장하니 선사인들도 학을 영묘하다 느꼈을 것이다. 먼 훗날 학생들은 종이로 천 마리 학을 접어 짝사랑에게 선물하고 전영록은 이를 노래해 대단한 히트를 쳤다.

결국 충무공보다 고액의 500원짜리 주화에 등장하기도 한다. 국내 모든 화폐에는 이(李)씨거나 그 일가만 들어가는데 감히 새가 당당히 들어간 것이다. 그런 두루미가 왔으니 아니 반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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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은 먹이제공 등 철새를 위한 다양한 지원을 한다. 그래서 매년 많은 철새들이 이곳을 찾아든다.

순천시는 흑두루미에 대해 칙사 대접을 한다. 10년 전인 2009년 순천만 인근 전봇대를 모두 철거했다. 인근 식당과 양계 농장을 철거하며 흑두루미가 머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습지 인근을 ‘흑두루미 희망농업단지’로 지정하고 이곳에서 재배한 친환경 유기농 쌀을 전량 구매해 흑두루미 등 철새들에게 먹이로 제공하고 있다. 그동안 한반도를 찾는 철새들이 확 줄어든 것은 추수 후 지푸라기를 하얀 비닐로 죄다 포장하는 바람에 낟알가리가 없어진 탓이란 분석도 있다. 아예 순곡을 뿌려주니 흑두루미 덕에 청둥오리도 댕기머리물떼새 등도 잘 얻어먹고 다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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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국가정원 꿈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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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국가정원

◇생태관광 1번지

순천만 너른 연안습지를 품은 순천은 ‘대한민국 생태관광 1번지’로 불린다. 정치1번지,유머1번지처럼 1번지는 대표성을 띤다. 세계 5대 연안습지 순천만 뿐 아니다. 순천만으로 연결된 국가 정원을 가꿔놓았고 와온 해변 등 자연 그대로의 생태가 유지된 곳이 많다. 그 덕에 지난해 7월에는 순천시 전역이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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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국가정원 멕시코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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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국가정원 중국 정원.

순천만국가정원은 지난 2013년 국제정원박람회가 끝난 후 박람회장을 존치해 조성한 공원이다. 독일 멕시코 중국 영국 한국 등 각국 테마 정원과 다리 숲 등 여러 볼거리를 둔 정원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둘러보는데 반나절 이상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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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국가정원 꿈의 다리.

지금은 비록 겨울이지만 그나마 일조량이 많고 따뜻한 순천의 기후에다 하얀 겨울에 색을 더하는 다양한 수종이 있어 을씨년스럽지 않다. 홍학이 살고 있는 연못,옥상정원 등을 누비며 ‘겨울스럽지 않은’ 겨울날의 한때를 보낼 수 있다. 정원과 순천만을 잇는 모노레일(소형무인궤도차) ‘스카이큐브’도 있어 어디 테마파크에 놀러온 기분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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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와온해변 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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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와온해변 낙조.

겨울 순천의 매력이 또 한가지 있다. 낙조를 보는 것이다. 해야 365일 매일 지는 것이지만 겨울이 뭐 특별할까 생각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겨울엔 해가 일찍 저물기 때문에 저녁을 먹기 전에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여름에는 석양 무렵 주로 식당에서 거나하게 취해있게 마련이다. 게다가 추운 날일수록 시계가 좋고 맑아 선명한 불덩어리를 볼 확율이 높다. 심지어 일출은 말할 것도 없다. 느즈막히 일어나도 해오름을 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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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와온해변 낙조.

꼬막으로 유명한 와온마을에서 꽃섬 사이로 떨어지는 붉은 노을을 만났다. 마침 간조가 되면 갯벌을 온통 황금색으로 물들인다. 멀리 구름 사이로 사라지는 반토막 태양이 가슴에 남았다. 흑두루미의 신비로운 추억 역시 머릿속에 새겼고 꼬막과 닭구이는 내 피하지방에서 영원토록 함께할 기세다.

demory@sportsseoul.com

여행정보●탐조프로그램=

흑두루미는 3월이면 돌아간다. 순천만습지는 매년 3월까지 탐조 프로그램(1일 2회)을 운영중이다. 순천만습지 홈페이지에서 예약(무료). 순천만 천문대에서 망원경으로 관찰할 수도 있다.

●먹거리=

참꼬막과 새꼬막 등 제철 꼬막요리를 맛볼 수 있다. 순천은 한정식집이 유명하다. 싱싱한 제철 생선회와 솜씨좋은 남도 아낙의 다양한 찬과 함께 맛있는 밥을 맛볼 수 있다. 황전면에 위치한 금계포란은 토종닭구이를 잘하는 집이다. 호젓한 전원 속에 글자 그대로 ‘닭이 알을 품듯’ 들어앉았다. 별장처럼 근사한 독채 건물에서 닭구이를 맛볼 수 있다. 살짜기 양념한 닭을 손질한 다음 직화로 구워먹는데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토종닭은 푸짐해 한 마리를 2~4명이 먹을 수 있다. 순천 특산 고들빼기 등 맛깔나는 반찬도 어느 하나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 카페와 펜션,야외바베큐장 등을 함께 운영하고있다.(061)754-8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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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에코촌 한옥 유스호스텔

●잘곳=

순천만 에코촌 유스호스텔은 고즈넉한 한옥형 숙소다. ‘숨을 쉬는’ 한옥에서 절절 끓는 방에 등짝을 구우며 신선한 공기를 덮고 잠들고 싶다면 이곳을 찾으면 된다.

●둘러볼만한 곳=

돌담길 등 조선시대 초가 마을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낙안읍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선암사는 승선교(보물 400호) 등 아름다운 보물을 품은 고찰이다. 혹여 눈이라도 내린 날이면 눈쌓인 고즈넉한 절집 풍경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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