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김대령기자]엄밀히 말하면 조원광은 '리와人드' 코너의 취지와는 조금은 거리감이 있는 선수다.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토대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완성한 선수라고는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인기 속에 화려한 커리어를 보낸 스타 선수가 회고하는 선수 생활만큼이나 아쉬움이 짙게 남는 경력을 가진 선수가 말하는 과거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문득 떠오른 선수가 조원광이었다. 한때 한국 축구팬의 큰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선수였던 만큼 은퇴 후 근황에 관한 소식이 언론을 통해, 또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간간이 전해졌다. 그럴 때마다 응원하는 댓글도 많았지만 '거품이 낀 선수' '아버지의 후광으로 뜬 선수' 등 날선 댓글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곤 했다. 진짜 그런 선수였을까 더욱 더 궁금해졌다.


그렇게 조원광을 그가 코치로 재직하고 있는 경기도 동두천 청룡축구클럽의 숙소 옆 카페에서 만났다. 그가 인사 후 꺼낸 첫 마디는 "제가 할 인터뷰 코너가 아닌 것 같은데 왜 저를…"이라는 겸손의 말이었다.


▲맨유부터 스타드 렌, 에인트호번까지…조원광에 쏟아진 관심


축구인 집안에서 태어난 조원광은 초등학교 3학년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고 한양중학교 시절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발군의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자 그의 아버지는 더 큰 무대에 하루라도 빨리 발을 들이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 조원광의 중학교 중퇴를 결정했다.


유망주로 이름을 떨친 조원광은 국내외의 여러 팀에서 오퍼를 받아둔 상황에서 일단 벨기에로 향했다. 그는 "수원과 안양(현 FC서울) 입단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당시가 2001년 10월께였는데 일단 다음 시즌까지 시간이 좀 있는 상황이었다. 마침 벨기에의 앤트워프에서 함께 훈련하자는 제의를 받고 전북 현대 입단을 앞두고 있던 남궁도, 김현기 등 형들과 함께 벨기에에 잠깐 다녀오기로 결심했다"라고 이야기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야기가 나온 건 이때였다. 당시 앤트워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맨유는 앤트워프 측으로부터 조원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귀화를 전제로 입단을 제의했다. 이에 관해 그는 "사실 그땐 해외축구가 지금처럼 큰 인기를 끌 때가 아니었다. 당시 중학교를 중퇴한 어린 나이에 맨유가 그렇게 대단한 팀인지도 몰랐다. 훈련하러 오라고 해서 왔는데 그런 제의가 있다고 하길래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국내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전했다"라고 회상했다.


그렇게 조원광은 국내로 돌아와 계약금 3억5000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안양에 입단했다. 그는 "뛰어난 형들과 함께 뛰니 실력이 빠르게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라며 안양 시절을 기억했다. 그러나 안양에서의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입단 당시 해외 이적이 약속되어 있어 구단에 양해를 구하고 프랑스로 건너갔다. 1부 리그 스타드 렌에서도 입단 테스트 제의가 왔다. 혼자 파리에서 렌으로 떼제베를 타고 가 2~3주 동안 합숙 생활을 하며 훈련했고, 합격점을 받아 입단 계약서까지 받았다. 이적료까지 어느 정도 주겠다는 제의를 들고 안양으로 돌아왔지만 안양에서 더 높은 이적료를 불러 최종적으로 이적이 결렬됐다"라고 당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성과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이야기를 건너건너 들은 또 다른 1부리그 팀 소쇼가 관심을 보인 것. 지금은 2부리그에 속해있지만 당시 소쇼는 유럽축구연맹(UEFA) 컵에 출전하는 중상위권 팀이었다. 조원광은 "아프리카 선수 한 명, 아시아 선수 한 명을 찾고 있던 소쇼가 나를 점검하고 싶다며 테스트 초청장을 보냈다. 어디에 보내야 할지 몰라 대한축구협회로 보냈는데 두 달이 지나고 나서야 아버지가 우연히 발견했고 뒤늦게 부랴부랴 다시 프랑스로 갈 준비를 했다"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시기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또 도착했다. 2003년 여름 피스컵 참가를 위해 한국을 찾은 PSV 에인트호번을 지휘하던 거스 히딩크 감독이 팀에 합류해 함께 훈련을 해보자고 권한 것. 그는 "연습경기를 뛰었는데 평가가 괜찮았던 것 같다. 그래서 한국 올림픽 대표팀과 평가전에 에인트호번의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가끔 피스컵에 뛰었다고 알고 있는 분도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21세에 포기한 유럽 생활, 아쉬움 남아"


여러 곡절 끝에 소쇼에서 합격점을 받으면서 최종 행선지는 소쇼로 가닥이 잡혔다. 유소년 계약이 아닌 프로 계약을 체결했고 안양에 이적료까지 지급했다. 동아시아의 어린 무명 선수에게 파격적인 투자였다.


그렇게 조원광의 프랑스 생활이 시작됐지만 순탄치 않았다. 대표팀에선 2004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청소년(20세 이하)선수권대회 우승 멤버로 활약하는 등 주가를 높였으나 소속팀에선 두 시즌째 2군 리그에서 활약했다. 여기에 자신을 데려온 기 라콤브 감독까지 교체되자 조원광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신임 감독은 임대를 가거나 한국으로 돌아갈 것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제안했고 그렇게 조원광은 국내 무대로 발길을 돌렸다.


"솔직히 도망친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몸은 괜찮았다. 하지만 아시아 청소년 대회에서 우승도 했고 이듬해까지 청소년 대표팀에 계속 선발됐다. 그래서 한국에서 다시 몸을 만들고 도전을 이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맨유 이야기는 당시에는 실감도 나지 않았고 지금도 크게 아쉽진 않다. 오히려 이 선택이 가장 아쉽다"


이때 나이는 21세. 현재 지로나에서 뛰고 있는 백승호의 나이와 같다. 1군에 데뷔하지 못했다고 지나치게 조급해할 나이가 아니었지만 일찌감치 프로 생활을 시작해 마음이 지쳐있던 그는 도피성 복귀를 결정했다.


▲"프랑스에서 했던 도피를 다시…지금은 반성"


하지만 이마저도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2006년 겨울 이적 시장이 끝난 봄에 귀국하는 바람에 수개월을 쉬었다. 내셔널리그 고양 국민은행이 승격될 경우 입단하기로 이야기가 됐지만, 팀 승격이 거부되면서 입단마저 무산되는 아픔도 겪었다. 결국 테스트 끝에 2007년 여름에야 인천에 입단했다. 2군에서 컨디션을 끌어올렸으나 오랜 기간 쉰 몸은 쉽게 올라오지 않았고, 하재훈 감독의 부름을 받고 2009년 내셔널리그 천안시청으로 향했다.


천안시청에서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풀 시즌을 주전으로 뛰었다. 그는 "감독님이 측면 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할 것을 권유해 측면 수비수로 뛰었다. 포지션을 바꾸고 주전으로 뛰니 바로 프로 무대에서 제의가 왔다"라고 전했다.


조원광을 부른 팀은 박경훈 감독이 이끌던 제주였다. 그러나 이번엔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그는 "내셔널리그 팀은 전국체전에 나간다. 제주 입단 직전 전국체전에 출전했는데 마지막 경기에서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해 오랜 기간 재활에만 매달렸다. 축구 인생에서 가장 힘든 기억이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결국 다시 천안시청으로 돌아왔다. 후반기 천안의 반등을 이끌었지만 은사인 하재훈 감독이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나게 되면서 조원광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했던 도피를 이때 또 했다. 지금은 반성한다. 어린 나이부터 축구를 해오다 보니 그땐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그래서 이른 나이에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라고 털어놨다.


▲지도자가 된 후 깨달은 '한 계단씩 올라서는 즐거움'


은퇴 후 잠시 축구와 떨어져 있겠다며 카페를 창업한 그는 다시 이끌리듯 축구계로 돌아왔다. 천안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현재는 최정민 감독의 부름을 받아 동두천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엘리트 축구클럽에서 코치로 재직하고 있다.


선수 시절엔 최고의 유망주로 각광받았던 그가 지도자로서는 맨 아래부터 닦아나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는 "처음엔 4, 5세를 가르치며 지도자를 시작했다. 이후 한 단계씩 올라와 지금은 엘리트 고등부를 가르치고 있다. 바로 성인 프로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것들을 많이 느끼고 있다"라며 '차근차근'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아쉬움이 많았던 선수 시절 역시 자양분이 됐다. "짧게, 혹은 길게 여러 유럽 팀에 머물면서 훈련 시스템이나 유소년 시스템을 눈여겨봤다. 그때 경험한 것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려고 노력한다"라며 웃었다. 그는 "지도자도 좋은 분들만 만났다"며 조광래 이영진 김귀화 신재흠 장외룡 하재훈 이도영 라콤브 감독 등 한 명 한 명 이름을 거론하며 감사함을 전했다.


최근엔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B급 지도자 자격증은 수석 합격했고 올해 진행된 지도자 보수교육에 가장 많이 참가했다. 목표는 A급 지도자 자격증. 그는 "엘리트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이상 장기적인 목표는 프로팀 지도자"라며 선수 시절 못지않은 의지를 불태웠다.


daeryeong@sportsseoul.com


사진ㅣ윤소윤 인턴기자 younwy@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DB, 조원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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