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 입단식(2001.12.23)
보라스사단. 왼쪽부터 알렉스 로드리게스(Alex Rodriguez,텍사스 레인저스 야구선수),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 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 야구선수) <알링턴(미 텍사스주)> 2001-12-23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계약을 체결한 순간에는 모두가 웃고 있다. 천문학적인 액수를 거머쥔 선수는 물론, 구단도 거액을 투자한 특급선수가 팀을 정상으로 이끌기를 기대한다.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밝은 미래를 응시한다. 그러나 계약 막바지에는 상황이 180도 변한다. 코리안 빅리거 중 투수와 타자로 가장 굵직한 발자국을 찍은 박찬호와 추신수도 마찬가지다.

공통분모가 많다. 둘 다 텍사스와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2001년 12월 박찬호는 5년 6500만 달러, 2013년 12월 추신수는 7년 1억30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당시 투수와 외야수 포지션 연봉 순위 5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가치는 충분했다. FA(프리에이전트)가 되기 전 박찬호는 빅리그를 대표하는 철완이었다. 선발투수로 자리매김한 1997시즌부터 2001시즌까지 5연속 시즌 190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구위도 ‘특급’이었다. 야수진에 비해 투수진이 유난히 약했던 텍사스가 박찬호에게 거액을 투자한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추신수도 ML 최정상급 외야수이자 리드오프였다. 공수주 모두 능한 5툴 플레이어였고 FA를 앞둔 2013시즌에는 개인통산 세 번째 20-20을 달성했다. 출루율 0.423으로 신시내티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나이도 최전성기였다. 박찬호와 추신수는 각각 만 29세, 만 31세부터 텍사스와 동행을 시작했다.

추신수
3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 글로브 라이프 파크에서 열린 ‘2017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와 시애틀 매리너스 경기에서 텍사스 2번타자 겸 우익수 추신수가 첫타석에 이어 3회말 두번째 타석에서도 안타를 터뜨리고 있다. 추신수는 이날 4타수 2안타 2득점으로 팀승리를 견인했다. 2017.08.03. 스포츠서울DB

하지만 둘 다 부상에 따른 기량저하와 마주했다. 특히 박찬호는 2001시즌 FA 대형계약을 의식하고 허리 통증을 참으며 마운드에 올랐다가 급격히 하향곡선을 그렸다. 구속이 떨어졌고 부상자 명단(DL)에 오르는 경우도 빈번했다. 추신수도 계약 첫 해부터 부상에 발목이 잡혔고 두 번째 해에 반등에 성공했으나 이후 이런저런 부상에 시달리며 2016시즌 48경기 출장에 그쳤다. 2018시즌 현역 최다연속경기출루(52연속 경기)를 기록하고 통산 첫 올스타전 출장이라는 명예도 누렸지만 후반기들어 타격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졌다. 무엇보다 잦은 부상으로 인해 컨디션 관리를 목적으로 지명타자로 출장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2018시즌 출장 경기에 절반 이상인 85경기를 지명타자로 나왔다. 어느덧 추신수 이름 앞에 우익수보다는 지명타자가 자주 붙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오프시즌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트레이드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박찬호는 FA 계약 4년차에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됐다. 추신수 또한 현지언론으로부터 “이번 겨울이 추신수가 트레이드될 수 있는 적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텍사스는 에이스 마이크 마이너까지 트레이드 대상으로 삼으며 리빌딩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휴스턴과 전력 차이가 큰 만큼 긴 호흡으로 미래를 건설 중이다. 냉정히 봤을 때 텍사스의 미래에 2020시즌까지 2년 동안 4200만 달러를 받는 추신수는 없다.

이처럼 용두사미가 된 대형계약은 박찬호와 추신수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빅리그 FA 대형계약의 대다수가 비슷한 새드엔딩으로 마무리된다. 박찬호와 비슷한 시기에 특급 영건으로 주목 받았던 마이크 햄튼도 콜로라도와 FA 계약 체결 후 내리막을 걸었다. 2013년 겨울 추신수와 함께 FA 시장에 나와 양키스와 7년 1억5300만 달러 계약을 맺은 외야수 자코비 엘스버리는 2018시즌 부상으로 단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다. 2014년 겨울 보스턴이 야심차게 영입한 파블로 산도발과 헨리 라미레즈는 보스턴 유니폼을 벗었지만 여전히 보스턴으로부터 거액의 연봉을 받고 있다. 이러한 빅딜 후유증으로 인해 2년 연속 메이저리그 스토브리그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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