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지

[스포츠서울 조성경기자] 더이상 방송이 TV로 대변되는 시대가 아니다. 웹부터 모바일 등 수많은 플랫폼들이 다양한 콘텐츠를 쏟아내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플랫폼의 변화로 인한 콘텐츠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러나 아직 뭐하나의 절대우위를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급변하는 흐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혹은 어떻게 시장을 리드할 것인가가 방송업계의 화두다. KBS 예능국 PD에서 SM C&C로 이적해 활약하고 있는 이예지 콘텐츠 기획본부 본부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이예지

◇콘텐츠 산업 키워드1=IP

이예지 본부장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레드벨벳 등 SM엔터테인먼트의 가수들을 주인공으로 한 웹예능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네이버부터 카카오, 옥수수,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요즘 떠오르는 플랫폼들을 통해 콘텐츠를 내놓으며 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방송사들에 비하면 분명 후발주자여서 갈 길이 먼 외주제작사이지만, 이제는 앞서가는 발걸음으로 업계를 선도하는 모습이어서 더 궁금증이 쏠리는 것.

이에 이예지 본부장은 “콘텐츠 산업에서 일하는 모두가 다 어려운 상황이다. 플랫폼의 변화로 인해서 온라인과 일하는 회사가 좀더 여유가 있어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한, “CD에서 MP3로 변한 시대처럼 그냥 그렇게 시대가 변한 것처럼 업계가 변한 거지 우리가 대단한 노림수를 가지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다”고 비유했다.

대단한 노림수는 아니었지만, 현재에 이르게 한 가장 큰 명제는 있었다. 이 본부장은 “포인트는 IP(지식 재산권)를 갖는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존에는 방송사와 외주로 일할 때 IP를 가질 수 없으니까 후속 콘텐츠 사업을 할 수 없는 구조였다. 제작 대행에서 멈추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프로그램의 권리를 우리가 가지고 있어서 파트너가 온라인 플랫폼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현재 네이버, 카카오, 옥수수 등과 협업중이다. 그러다 보니까 플랫폼마다 타깃이 다르다. 그것에 맞춰서 프로젝트를 하니까 생물처럼 변하더라”라고 하면서 “그런 이유가 지금의 일의 방향성을 갖게 한 또 다른 한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예지 본부장은 콘텐츠의 변화, 업계의 변화를 몰고 온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고 봤다. 그는 “온라인 플랫폼도 고민이 많다. 유튜브가 워낙 강력하니까 그렇다. 국내 플랫폼들은 고민이 많은 만큼 소비자에 대한 조사를 많이 한다. 지금의 10대는 거의 TV를 안 본다고 봐도 무방한 조사결과가 나온다”면서 “저희가 만들어내는 콘텐츠를 보는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이 바뀐게 (콘텐츠의 변화의)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예지 본부장은 “물론 플랫폼의 변화가 콘텐츠의 변화에 가장 첫번째 이유이기는 하겠지만, 정말 뭐가 우선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것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말할 수 있는 수학공식처럼 딱딱 떨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신중하게 말했다.

SM 오리지널 콘텐츠 포스터

◇콘텐츠 산업 키워드2=스타산업

그가 내놓는 웹예능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이유가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K팝스타가 출연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최고의 K팝스타들을 대거 보유한 SM 산하의 제작사라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는 강점이 된 것이다. 이 본부장도 “우리는 아티스트의 소비층도 명확한 편이고, 이들을 활용해서 만드는 콘텐츠도 타깃이 명확해서 그런 부분에서 만드는데 유리했던 건 맞는 것 같다”고 인정을 했다.

스타가 콘텐츠로 확장하는 모습은 일반인들도 1인 미디어로 유명세를 타는 시대에 당연한 현상이다. 이 본부장은 “SM은 아티스트라는 IP를 가지고 있는 회사인데, 이걸 콘텐츠 IP로 확장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엑소, 레드벨벳, 슈퍼주니어 등 아티스트를 가지고 예능 브랜드를 만드는데 1~2년을 주력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부가사업 면에서 외주제작사가 더 유리한 면을 말하기도 했다. KBS에서 SM C&C로 이직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KBS에서 일할 때 마지막에 기획을 하다가 이런 일을 하면 재밌겠다 싶은게 콘텐츠를 확장하는 것이었다. 뮤지컬을 한다든지 부가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획안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방송사 안에서 부가사업으로 프로그램이 확장되는게 쉽지 않더라. KBS로 치면 (자회사인)KBS미디어에서 해야할 일이지 KBS 예능국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한계를 느꼈다. 연예인은 어떤 프로그램을 하면 프로그램의 인기로 그 수혜가 큰데, 그 프로그램이나 제작자는 방송이 송출됨과 동시에 그 노력이 증발되는 느낌이었다. 부가사업을 할 수 있는 스타산업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이 같은 이유가 이 본부장이 다른 채널, 다른 방송사가 아닌 외주제작사로 이직한 이유가 됐다. 이 본부장은 “tvN이나 JTBC도 매력적인 곳이기는 하지만, 업의 형태는 변화가 크게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방송국에 있을 때에는 부가사업을 하는게 어렵다는 걸 느꼈는데, 여기서는 음원이든 콘서트든 쇼핑이든 연계된 부가사업을 하는게 생각보다 쉽게 의기투합해서 할 수 있는게 좋다”고 밝히며 ‘슈퍼TV’의 탄생을 예로 들었다. “일례로 슈퍼주니어의 예능인 ‘슈주 리턴즈’를 하면서 멤버들에게 패딩 판매에 대한 홍보회의를 시켜보니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많아서 CJ오쇼핑까지 나가게 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슈주 리턴즈’를 하고서 CJ와 공동IP로 같이 만들자는 제의가 와서 채널형으로 ‘슈주 리턴즈’를 바꾼게 ‘슈퍼TV’였다. 그렇게 하면서 여기까지도 갈 수 있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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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산업 키워드3=스토리

이예지 본부장이 “모두가 힘든 시기인 것 같다. 스타부터 광고주, 플랫폼 등 굉장히 많은 파트너를 만나는데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고, 고민들이 많다. 매해 키워드가 확확 바뀌는 걸 느낀다”고 한 만큼 그 역시도 다양한 화두로 고민중이다. 해외에서도 인정해주는 K팝 스타들을 앞세워 글로벌 플랫폼들에도 당당히 위력적인 콘텐츠를 선보일 계획을 세워볼만도 한데, 이예지 본부장은 “예능에 대한 저평가”를 이야기하며 지금의 고민을 들려줬다.

그는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만났을 때의 차이”라며 말문을 열면서 “유튜브는 뮤직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아서 K팝 스타에 대한 관심이 많다. 방탄소년단도 유튜브로 성장했다고 보고 K팝 스타에 대해 우호적이다. K팝 스타가 없는 좋은 기획의 콘텐츠도 좋아하지만, K팝 스타가 있다고 하면 더욱 좋아한다. 네이버도 외국에서도 다 볼 수가 있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조회수라는 시청률보다 더 정확한 데이터를 받아볼 수가 있는데, 팬덤이 굉장히 중요해서 우리가 분명히 우위에서 시작하는 메리트가 있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스토리가 있냐, 없냐로 구분한다. 예능이 콘텐츠의 가치에 있어서 드라마보다 좀 떨어진다고 보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뒤이어 “유료와 무료의 경계의 이야기인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유료 플랫폼이다보니까 소비력이 있는 층이 보는 곳인데 스타의 팬덤이 유료채널 가입까지 가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넷플릭스는 예능을 아티스트의 콘텐츠로만 보는 것 같다. 스타의 콘텐츠라는 그림자에 가려져 예능이 드라마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면서 “그래서 웹드라마를 웹예능보다 더 많이 하는 이유인 것도 같다. 총 제작비는 웹드라마나 웹예능이나 큰 차이가 없는데 결과물에 대해서 책정해주는 가격이 굉장히 다르다. 웹예능에 스타가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예능이라는 이유로 저평가 받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웹예능의 가능성을 밝게 보는 이유는 “팬심에 입각해서 볼때 예능이 좋다. 그들이 뭘 좋아하는 지 충분히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이예지 본부장은 “예전에 KBS PD 시절 예능의 장점을 묻는 질문에 했던 대답이 예능은 물과 같다는 것이다. 어떤 병에 담든 그 모양대로 담겨서 사람들에게 스밀수 있다. 그래서 예능이 좋다”고 이야기했다.

이예지 본부장은 “KBS PD 시절 내가 만든 콘텐츠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이 있었다. 공영적인 콘텐츠가 개인적으로는 제 스스로의 존재감을 느끼는 거였다. 방송이 세련되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게 예능이라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그런 이유로 “TV가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잃고 문화의 리더라는 느낌을 잃으면서 TV에서 나오고 싶었다”는 그는 “지금은 스타산업과 연계된 콘텐츠로 잘 하고 있지만, 앞으로 무엇이 더 우선이 되어야할까 하는 본질적인 고민도 있다”고 했다.

“점점 소비자 맞춤형 콘텐츠로 가고 있다 보니 좋은 기획을 해서 소비자에게 퍼뜨리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많은 것들과 타협을 하게 된다. 뭐가 맞다, 틀리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갈증은 있는 것 같다. 각 기획 단계에서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넣고 싶고, 선보이고 싶은것도 있는데, 이 순서로 일하기에는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결국 시작은 플랫폼의 변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콘텐츠의 변화에 가장 큰 핵심은 소비자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넷플릭스가 요구하는 스토리와 이예지 본부장이 말하는 메시지를 같은 결로 놓고 보면 웹예능의 가능성은 더욱 밝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cho@sportsseoul.com

사진| 강영조기자 kanj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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