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영-손흥민
토트넘 손흥민(오른쪽)이 19세 나이로 바이에른 뮌헨 1군 데뷔전을 치른 후배 정우영에 대해 진솔한 생각을 밝혔다. 런던 | 고건우통신원, 뮌헨 | 정재은 통신원

[런던=스포츠서울 한지훈통신원·김용일기자]“어린 선수니까 옆에서 조용히 지켜봐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손흥민(26·토트넘)은 만 19세 나이에 독일 분데스리가 최고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서 1군 데뷔전을 치른 정우영 얘기에 8년 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누구보다 뜨거운 10대 후반을 보낸 그였기에 후배 정우영의 마음과 심리를 잘 아는 듯했다.

손흥민은 29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인테르 밀란과(이탈리아)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B조 5차전 홈경기를 치른 뒤 공동취재구역에서 취재진 앞에 섰다. 정우영 얘기가 나오자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미완의 대기’로 불리던 정우영은 바로 전날 유럽 빅클럽 중 하나인 바이에른 뮌헨 붉은 유니폼을 입고 알리안츠 아레나 그라운드를 밟았다. 그것도 ‘꿈의 무대’로 통하는 챔피언스리그 무대였다. 손흥민도 후배의 가슴 뛰는 데뷔전 소식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정우영의 데뷔는) 한국 축구를 위해서도 너무나 좋은 일”이라며 “세계적인 팀에서 챔피언스리그에 데뷔했다는 것 자체로 축하받을 일”이라고 말했다.

가슴 벅찬 표정을 짓다가 손흥민은 진중하게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아직 어린 선수니까 조용히 지켜봐주는 게 좋지 않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뼈 있는 한마디였다. 손흥민과 정우영은 모두 고교 시절 독일 분데스리가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1군 데뷔에 성공한 사례다. 정우영은 인천 유나이티드 유스 팀인 대건고에 재학 중이던 지난해 6월 바이에른 뮌헨과 4년 6개월 계약을 맺었다. 지난겨울 U-19 팀에 합류해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여름엔 1~2군 팀을 오가면서 새 시즌을 대비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빅클럽 경쟁 구도에서 정우영은 특유의 재능과 성실함을 무기로 19세에 당당히 1군 그라운드를 밟았다.

사실 이런 성장 궤적은 손흥민이 먼저 밟았다. 연령별 대표에서 두각을 보인 그는 지난 2008년 동북고 1학년 재학 중 대한축구협회 우수선수 해외 유학 프로그램 대상자에 선정돼 함부르크 유스 팀에서 뛰었다. 아버지 손웅정 씨에게 축구를 배운 그의 남다른 기술은 신선했다. 2009~2010시즌 만 17세 나이에 2군 팀이 뛰는 4부리그 6경기(1골)를 소화했고 2010~2011시즌 마침내 1군에 입성했다. 챔피언스리그 데뷔는 정우영이 손흥민(만 21세 레버쿠젠 시절)보다 2년 빨랐지만 리그 데뷔는 손흥민이 더 빨랐다. 지난 2010년 10월30일 만 18세3개월22일의 나이로 FC쾰른전에 나섰다. 그것도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격했고 전반 24분 역습 상황에서 상대 골키퍼 키를 넘기는 환상적인 데뷔골까지 터뜨리며 한국 축구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3주 뒤 하노버전에서는 첫 멀티골까지 터뜨렸는데 스포트라이트가 온통 손흥민에게 쏠렸다. 그 기세는 이듬해 1월 카타르 아시안컵 최종 엔트리 승선으로 이어졌다. 10대에 박지성, 이청용 등 우상과 함께 A대표팀 태극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기쁨은 성장통이 됐다. 커다란 주목을 받은 그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당시엔 그것을 이겨낼 경험이나 노하우가 부족했다. 아버지 손씨가 대표팀 차출을 자제해달라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가 축구협회와 갈등을 빚는 등 예기치 않은 후폭풍에 마음고생도 했다. 어수선한 흐름에 후반기 한 골도 넣지 못하면서 데뷔 시즌을 마쳤다. 이듬해 역시 ‘기복 논란’에 시달리면서 컨디션이 들쭉날쭉했다. 그는 비시즌 맹훈련을 바탕으로 초심으로 돌아갔다. 1군 경험이 쌓이면서 스스로 이겨낼 힘이 생겼다. 마침내 2012~2013시즌 첫 리그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그 후 레버쿠젠~토트넘을 거치며 지금의 자리에 올라섰다.

손흥민VS정우영
그래픽 | 김정택기자

손흥민은 정우영이 자신처럼 너무나 큰 관심을 받아 혹여 현재의 흐름을 놓치지 않을까 우려했다. 실제 일각에선 정우영을 A대표팀에 뽑아 실험하자는 말이 벌써 들린다. 손흥민은 “나도 어린 나이에 독일 분데스리가 데뷔를 했는데 주변 분위기에 너무 들뜨면 나중에 실망도 커진다”고 말했다. 정우영에 대한 미디어와 팬의 관심과 응원을 지지하면서도 플레이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미래지향적으로 바라봐달라는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바이에른 뮌헨이 ‘손흥민 이적설’의 중심에 있는 팀이란 점이다. 손흥민은 “바이에른 뮌헨에서 (정우영과) 함께 뛰는 것을 상상해도 되느냐”는 취재진의 장난스런 질문에 살짝 미소지으며 “그건 잘 모르겠다. 토트넘도 그렇고 나도 토트넘을 좋아한다”고 선을 그었다.

나흘 전 첼시전에서 ‘원더골’로 11월 A매치 휴식 효과를 본 그는 이날 공격 포인트는 없었지만 후반 교체로 들어가 분위기 반전의 디딤돌을 놓았다. 특히 후반 35분 결승골 과정에 숨은 조력자가 됐다. 무사 시소코가 공을 잡았을 때 손흥민이 순간적으로 오른쪽 측면으로 돌아 뛰었다. 인테르 수비수들이 손흥민에게 몸과 시선이 쏠린 사이 시소코가 공간을 재빠르게 파고들었다. 델레 알리를 거쳐 공이 크리스티안 에릭센에게 전달됐는데 시원한 왼발 결승골이 터졌다. 토트넘은 2승1무2패(승점 7·골득실 -1)를 기록, 인테르 밀란(승점 7·-1)보다 다득점에서 앞서 조 2위로 올라서면서 16강 진출 희망을 이어갔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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