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박준범기자]'캥거루 슈터' 조성원(47)의 현역시절은 화려했다. 선수생활 중 한번도 어렵다는 우승 트로피를 세번이나 들어 올렸고, 챔피언결정전 MVP(1999년)와 정규리그 MVP(2001년)도 수상했다. 또 마지막 시즌이던 2005~2006 시즌을 제외하면 선수생활 내내 두 자릿수 평균 득점을 놓쳐본 적이 없을 정도로 꾸준했다. 더욱이 그는 작은 신장임에도 높은 점프력과 정확한 슛으로 숱한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2005~2006 시즌을 끝으로 화려한 선수생활을 뒤로한 그는 은퇴 후 여자농구, 남자농구를 가리지 않고 지도자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왔다. 그리고 현재는 모교인 명지대학교 남자 농구부 감독으로 부임해 선수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캥거루 슈터' 뒤에 감춰진 부단한 '노력'


'조성원'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캥거루 슈터'로 대변되는 슛 폼이다. 높은 점프력을 바탕으로 한 그의 슛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었다. 여기에 왼발을 앞에 놓고 슛을 던지는 일명 '짝발 스텝'은 그의 전매특허였다. 그는 "'짝발 스텝'은 중학교 3학년 때 1년 선배가 슛을 그렇게 쏴서 배웠다. 당시만 해도 '짝발 스텝'을 쓰는 사람이 없었다. 슛을 쏠지, 안 쏠지 모를 때 올라가니까 수비 입장에서는 막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점프슛에 대한 비화도 공개했다. 그는 "사실 점프슛은 상무에 가서 쏘기 시작했다. 농구인생에서 첫 번째 고비였다. 상무에서 2년 동안 게임을 못 뛰면 대전 현대(現 전주 KCC)에서도 경기를 못 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줄넘기를 시작했다. 매일 밤마다 3단 뛰기를 하면서 코트를 누볐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점프슛이 완성됐다"고 덧붙였다.


◇'이-조-추 라인'의 비결은 팀워크


조성원은 자신만의 폼을 갖춘 채 1997~1998 시즌부터 현대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누빈다. 그가 합류한 현대는 '이-조-추(이상민-조성원-추승균) 라인'을 구축하며 '왕조'라 불릴 만큼 강력한 모습을 보였다. 1997~1998시즌부터 1999~2000시즌까지 3년 동안 정규리그에서 거둔 성적은 97승 38패. 승률은 71.8%에 달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가장 큰 강점은 팀워크다. 제가 제일 선배긴 하지만, 우리 셋은 거의 친구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세 명이 역할도 다 달랐고, 잘 맞았다. 재밌게 농구 했던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3~4쿼터에 10점, 20점을 지고 있어도 진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선수생활 동안 432경기에 출전한 조성원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1997~1998시즌 부산 기아(現 울산 현대모비스)와 펼쳤던 챔피언결정전 3차전을 꼽았다. 그는 "제 인생 경기다. 4쿼터에 성공한 3점이 그날 유일한 득점이자 결승골이었다. 앞서 자유투 2개를 놓친 상황이었고, 2연패 중이었기 때문에 그 3점이 안 들어갔으면 저는 여기에 없다"고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이어 "경기 후 제가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신선우 감독님이 '우리 팀에서 슛이 제일 좋은 선수는 조성원이다'라고 말했다. 감독님이 칭찬에 인색한 편이어서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감독님의 그 한 마디가 엄청난 힘이 됐고, 자신감도 많이 생겼다"고 신 감독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LG로 트레이드→김태환 감독과의 '시너지'


완벽한 팀워크로 두 시즌(1997~1998, 1998~1999) 통합 우승을 달성한 현대는 1999~2000시즌 서울 SK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무른다. 조성원은 곧장 양희승과 트레이드 돼 창원 LG 유니폼으로 갈아입는다. 현대가 이룬 두 번의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운 그였기에 아쉬움이 더했을 터. 하지만 그는 "아쉬움은 없었다. 당시 신선우 감독님이 '토털 바스켓'을 표방해서 장신 슈터를 찾았다. 제가 신장이 작다보니까 상민이에게 수비 부담이 가중됐다"면서 "키 큰 슈터가 있으면 전체적인 팀 밸런스가 맞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당시 트레이드는 방출을 위한 게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트레이드였다. 또 김태환 감독님의 공격적인 스타일이 저랑 잘 맞았기 때문에 저뿐만 아니라 팀 전체 득점력이 살아났다"고 진단했다. 그의 말대로 김태환 감독이 새로 부임한 2000~2001시즌 LG는 당시 리그에서 유일한 평균 득점 100점을 기록한 팀이었다.


조성원 역시 시즌 평균 25.7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정규리그 MVP 역시 그의 차지였다. 그는 LG에서의 활약에 대해 "오히려 현대에 있을 때 보다 부담이 더 없었고, 골대 자체가 커 보이던 시절이었다. 가서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고 솔직한 심정을 내비쳤다.


◇친정팀에서의 세 번째 우승 그리고 '눈물'


영광도 잠시, 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그는 "계단을 못 올라갈 정도로 무릎 부상이 심했다. 연골 쪽 문제도 있었고, 퇴행성관절염도 있었다. 훈련은 못 하고 시합만 뛰었다. 의사가 '수술 안 하고 1년 운동하고 그만둘래?, 수술하고 5년 더 뛸래?'라고 말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왼쪽 무릎을 더 많이 쓰다 보니까 그랬던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담담히 전했다.


부상의 여파로 조성원은 2002~2003시즌에는 서울 SK로 트레이드 됐고, 2003~2004시즌 도중엔 친정팀인 KCC로 유니폼을 갈아입는다. 다시 친정으로 돌아온 그는 신선우 감독, 이상민-추승균과 재회하며 현대의 영광을 재현했다. 운동을 하면서 무릎도 점점 좋아졌다. 그는 "복귀해서 너무 좋았다. 그렇다고 부담을 가지지는 않았고, 시합도 잘했다"고 회상했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조성원은 눈물을 흘렸다. 그는 "경기 종료 3분 전부터 눈물이 났다. 질 수가 없는 경기라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었다"면서도 "그렇다고 눈물을 많이 흘리지는 않았다. 나이가 몇인데 창피하게 펑펑 울 수 있겠는가(웃음)"라며 쑥스러워했다.


세 번째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 올린 조성원은 2005~2006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정한다. 그는 "처음에 '뛰는 시간보다 벤치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은퇴한다'라는 잘못된 생각을 했다. 선배가 되면 벤치에서도 후배들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많은데 제 자존심만 세웠다"고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계약 기간이 1년 남아있었지만, 허재 감독님이 '기량이 확 떨어져서 은퇴하는 것보다 지금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셔서 은퇴를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은퇴→쉽지 않았던 지도자의 길


은퇴 후 그는 곧바로 여자프로농구 국민은행(現 KB스타즈) 코치로 부임한다. 현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최병식 전 감독의 부름 때문이었다. 그는 "감독님의 제의에 바로 수락했다"고 전하면서도 "코치는 처음이다 보니 의욕만 앞섰고, 선수들에게 화를 많이 냈다"고 털어놓았다. 조성원은 2008년 최 전 감독의 후임으로 국민은행의 사령탑을 맡았지만, 시즌 도중 자진 사임했다. 또 2014년 남자프로농구 서울 삼성의 코치를 역임했지만, 해당 시즌을 마치지 못했다. 그는 "여유가 없었다.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되돌아봤다.


두 번의 뼈아픈 경험을 한 조성원은 2015년 10월 수원대학교 여자 농구부 감독으로 취임한다. 앞선 경험들은 그의 지도자 생활에 자양분이 됐다. 그는 "처음엔 운동을 안 시켰다. 축구도 하고, 발야구도 하고 그랬다. 선수들이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그랬더니 선수들이 농구를 신나게 하기 시작 하더라"라고 설명했다.


조성원의 리더십은 수원대를 2년 연속 결승 진출로 이끌었다. 하지만 두 번 모두 '강호' 광주대학교에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2017년 대학리그를 끝으로 그는 수원대 감독 자리에서 내려온다. 그는 "두 번 다 준우승을 해서 아쉬움은 있지만, 상대 팀이 워낙에 잘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진심을 내비쳤다.


◇조성원의 '눈높이 리더십' 그리고 '기다림'


조성원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모교인 명지대 남자 농구부 감독을 맡게 된다. 지난해 2승 14패로 리그 최하위였던 명지대를 올해 5승 11패, 9위에 올려놨다. 목표로 했던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지난 시즌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경희대와 한양대를 꺾기도 했고, '대학 최강' 고려대와의 대결에선 81-85, 4점 차 석패를 당했다.


무엇이 명지대를 탈바꿈시켰을까. 그는 "처음 제가 왔을 때 선수들이 다 따로 연습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한 팀이 됐다고 느껴질 때 운동을 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히면서 "저는 화를 안 낸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고 틀만 잡아준다. 감독은 도와주는 역할일 뿐"이라고 가르침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이어 "대학에서 4년 동안 선수의 스타일을 바꾼다는 건 힘든 일이다. 단점 보완보다 장점을 키워주는 방법이 더 효율적"이라면서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지도하려고 한다. 그래서 되도록 앉아서 이야기하고, 작전 타임 때도 앉아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그만의 확고한 지도자 철학이 느껴졌다. 지도자 철학에 관한 질문에 조성원은 한참을 생각한 뒤 "선수들에게 박수 쳐주고, 응원해주고. 잘하는 부분 더 잘할 수 있게 조금 더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제가 졸업시킨 선수들이 학교에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그만큼 프로에 가서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라고 부연설명하며 "선수들과 같이 생활하는 게 재밌다.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라며 제자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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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l 스포츠서울 DB, 조성원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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