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손. 제공 | FC안양

'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이용수기자] 90년대 K리그를 떠들썩하게 한 푸른 눈의 한국인. 러시아인으로 한국 땅을 밟았지만 28년째 한반도를 떠나지 않고 한국 축구에 몸담고 있는 특별한 주인공 신의손(58‧발레리 사리체프)을 만났다. 신의손은 현역 시절 일화 천마에서 골문을 지키며 당시 한 번도 이룬 적 없는 K리그 3연패를 일궜다. 뛰어난 실력 만큼이나 주목받은 그는 K리그 1호 귀화자이기도 하다.


K리그 베스트일레븐 6회에 빛나는 신의손은 은퇴 후 지도자로서 남녀 프로를 모두 겪었을 뿐 아니라 20세 이하(U-20) 청소년 축구대표팀에서도 활약했다. 지금은 현역시절 영광의 순간을 함께한 고정운 FC안양 감독의 곁에서 골키퍼 코치를 역임하며 큰 꿈을 꾸고 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신의손의 영광스러웠던 순간 그리고 그의 현재 이야기에 집중해보자.


인터뷰를 마친 신의손이 미소 짓고 있다. 이용수기자 purin@sportsseoul.com

◇K리그 역사가 기억하는 '신(神)의 손' 사리체프


91년 겨울 한국 땅을 밟고 92년부터 일화 천마의 유니폼을 입고 뛴 그는 당시만 해도 발레리 사리체프였다. 지난 1978년 러시아(당시 소련) 프로 축구에서 데뷔한 그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었다. 91년 소련 축구의 해체로 K리그와 연을 맺은 사리체프는 한국 나이 33세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미지의 땅에 발을 내디딘 셈이다.


"내게는 K리그라는 동기부여가 있었다. 한국에 오기 직전에는 '소련리그 올해의 골키퍼'로 선정됐다. 이미 소련에서 우승 트로피, MVP 등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룬 상황이었다. 몸도 문제 없었고 새로운 도전이 재밌었다. 나는 우승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일화 천마는 89년 창단되서 우승경험이 전무한 팀이었다. 그래서 나는 팀이 우승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우승만 생각했다"


우승 DNA를 심어주고자 했던 사리체프는 일화 천마를 이끌고 93~95년 3년 연속 K리그 정상을 차지했다. 3년 연속 팀 최소 실점인 0점대(0.87) 실점율을 기록한 그의 우승 열망은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AFC챔피언스리그의 전신)과 이듬해 아시안 슈퍼컵,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아프리카 우승팀과 대결)까지 이어졌다. 그의 활약 덕분에 95년 K리그에 외국인 골키퍼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토종 골키퍼의 경쟁력이 약해지면서 프로연맹은 97년부터 단계적으로 제약을 뒀고 99년에는 외국인 골키퍼 영입 및 출전 금지 규정이 제정됐다. 그렇게 강제 은퇴의 길에 놓인 그는 안양 LG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년 뒤에는 귀화 시험을 통해 다시 선수생활을 이어갔고 그의 나이 45세에 현역을 은퇴했다.

제공 | FC안양

◇신의손이 골문 지킨 일화천마, 레버쿠젠도 문제 없었다


신의손이 지키는 골문은 공이 그의 손을 지나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신의손 혼자 팀의 우승을 이끈 건 아니었다. 당시 일화 천마에는 신태용, 고정운, 이상윤, 박남열, 김이주 등 쟁쟁한 선수들이 즐비했다. 박종환 감독의 지도 아래 팀이 하나로 움직였고, 모두 '우승'이라는 강한 열망을 품고 정진했다.


"축구는 혼자 우승할 수 없다. 당시 우리팀 선수 구성이 좋았다. 분위기도 좋았다. 선수들이 우승 하나만 바라봤다. 이건 모두 박종환 감독 덕분이었다. 박 감독은 내가 겪은 감독 중 최고의 감독이다. 팀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카리스마가 있었다. 별말 없이도 선수들을 이끄는 힘이 있었다. 그 덕분에 선수들도 열심히 운동했고 한 마음으로 역사를 이룰 수 있었다."


당시 일화 천마는 아시아무대를 제패한 무법자였다. 무서울 게 없는 팀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K리그 1강으로 평가되는 전북 현대 그 이상의 위세를 떨쳤다.


"일화 천마는 당시 세계 축구의 중심이었던 독일 축구와 비슷했다. 실력 차이는 있었지만 스타일이 비슷했다. 94년 시즌 끝나고 바로 팀 전체가 유럽으로 휴가를 떠났다. 전지훈련이 아닌 휴가였다. 당시 바이엘 레버쿠젠(독일)과 연습게임을 했는데 우리가 1-0으로 승리했다."


◇5분만 버텼으면 우리 기억 속 무실점 경기 수는 '10'


지금은 불혹을 넘긴 46세까지 현역 생활을 보낸 뒤 은퇴한 골키퍼 김병지가 K리그의 역사지만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신의손이 '레전드'였다. 그는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무실점 기록을 K리그 역사에 새겼다. K리그 통산 320경기 357실점을 기록한 사리체프는 93년 4월10일부터 5월28일까지 8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을 세웠다. 이는 25년째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하지만 그는 당시 10경기 무실점도 가능했다며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8번째 경기를 무실점으로 막고 9번째 경기에서 종료 5분을 남겨두고 부산 대우 로얄즈의 류웅렬에게 실점했다. 중요한 건 10번째 경기도 무실점으로 막았다는 것이다. 그 때 당시 5분만 더 집중했더라면 내 기록이 10경기까지도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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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사리체프, '지도자' 신의손 되기까지


신의손은 지난 2000년 2월 23일 귀화시험을 치른 뒤 귀화에 성공해 3월부터 한국인으로 국내 무대를 누볐다. 그러나 귀화 전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98년 시즌이 끝난 뒤 더 이상 그는 K리그에서 뛸 수 없었다. 외국인 골키퍼 영입 및 출전 금지 규정 때문이다. 당시 그는 고민 중 조광래 당시 안양 LG 감독의 제안을 받고 골키퍼 코치로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규정이 바뀌면서 더 이상 뛰지 못하니 스트레스를 받았다. 앞이 막막했다. 러시아로 돌아가는 것도 고민이었다. 내 나이 38세였다. 그 때 내게 첫 번째 찬스를 준 게 조광래 감독이다. 99년 1년간 골키퍼 코치로 활동했다. 선수들을 가르칠 때 내가 운동하던 방식 그대로 가르쳤다. 나는 당시 한국에 온 뒤로 줄곧 골키퍼 코치 없이 혼자 운동했다. 나만의 훈련 프로그램이 한국 선수들에게 맞지 않았다. 시즌이 끝나서야 내 실수를 알아차렸다. 2000년 현역에 복귀했다가 다시 코치 생활을 하면서 생각을 많이 바꿨다. 한국 골키퍼들에게 좋은 훈련 프로그램이 뭔지 고민 많이 했다. 99년 1년은 지도자로서 나를 바뀌게 한 시간이었다."


K리그의 규정 변경으로 강제 은퇴한 신의손은 2000년 다시 그라운드에 복귀해 2004년까지 4년간 플레잉 코치로 더 뛰어다녔다. 모두 스스로 몸을 관리하고 준비한 덕분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다시 현역으로 뛸 수 있었던 건 조 감독의 공이 컸다. 조 감독의 제의로 귀화를 선택했고 신의손은 한국인으로서 K리그를 뛸 수 있었다.


"골키퍼 코치로 선수들을 지도하던 중 (귀화 얘기를) 들어 처음에는 농담으로 여겼다. 그런데 2주 뒤에 재차 묻길래 '진짜냐?'고 물었다. 이에 조 감독이 '그래 진짜야'라고 해서 도전하게 됐다. 그게 조 감독이 내게 준 두 번째 찬스였다. 내 생각에는 몸이 좋았다. 그래서 찬스를 잡았다. 귀화 시험이 정말 어려웠다. 예전에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의 통역을 맡았던 분에게 두 달간 도움을 받았다. 역사, 문화 등 한국 귀화 시험을 도와준 덕분에 준비할 수 있었다. 간신히 커트라인을 넘긴 뒤 2차 면접을 봤고 운 좋게 통과했다. 덕분에 K리그 선수등록 마지막날에 간신히 선수 등록을 하고 뛸 수 있었다."


제공 | FC안양

◇친정으로 돌아온 신의손, 옛동료와 영광 재현을 노린다


안양 LG에서 골키퍼 코치를 시작해 경남FC(2006~07) 대교 캥거루스(2008~2011) U-20 청소년 축구대표팀(2009~10) 부산 아이파크(2012~2015) 이천대교여자축구단(2016~2017) 등을 거쳐 FC안양에 올 시즌부터 골키퍼 코치로 자리잡았다. 안양의 팀은 바꼈지만 어떻게 보면 친정으로 돌아온 그는 일화 천마 당시 영광을 함께 이룬 고정운 FC안양 감독과 영광의 재현을 꿈꾸고 있다.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축구를 즐겨야 한다. 일화 천마에서 뛸 때 나와 동료들은 축구를 즐겼다. 즐겨야만 열심히 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힘들 뿐이다. 그 당시 대기록은 모두가 즐겼기에 가능했던 기록이다. 또 박종환 감독의 리더십도 한 몫했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이 고정운 감독에게도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수장은 이런 덕목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팀에 처음 와서 고 감독과 만나자마자 '예전에 우리가 했던 것처럼 우승을 여기(안양종합운동장)서 이루자'고 말했다."


pur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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