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네아키라(일본복싱)
재일교포 출신인 야마네 아키라 전 일본복싱협회 회장이 최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가진 스포츠서울과 단독인터뷰에서 일본 언론에 실린 자신의 기사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일본 아마추어 복싱의 구세주, 그의 회장 사임으로 복싱계는 끝이 날 것인가.’

최근 일본 한 주간지는 정부 지원금 유용과 판정 조작 의혹, 조직폭력 연계설 등으로 곤혹을 겪다가 자진 사퇴한 재일교포 출신 야마네 아키라(79) 전 일본복싱협회 회장을 이같이 조명했다. 이 주간지는 ‘야마네 회장은 동·서로 분리된 일본 복싱을 통합하고, 발전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여름 지탄의 대상으로만 여겨진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뤘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심드렁한 평가가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일본 스포츠 전문지 ‘넘버’도 ‘야마네의 본모습’이라는 제하의 특집 기사를 실었다. 더 직설적이었다. 이 매체는 ‘야마네 회장을 모르는 사람은 그저 폭력단의 두목 같은 무서운 풍모로 나쁜 인상을 받았을지 모른다’며 ‘지금까지 취재를 통해 접한 그는 인상과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또 ‘지원금 부정 사용을 추궁받았지만 실제 그의 주머니로 들어가지 않았다. 여러 방송국에서도 그의 실체를 취재했으나 실제 방송이나 기사에선 그에 대한 긍정적인 목소리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야마네 전 회장은 일본 복싱계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부산에 형제를 둔 그는 1990년대 일본복싱연맹 상벌위원장을 비롯해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일본대표팀 감독을 지냈고, 2011년 일본복싱연맹 회장에 취임했다. 세계챔피언을 육성하는 엘리트복싱과 생활체육 저변 확대에 모두 이바지하면서 분열된 일본 복싱을 단결시키는 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결과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일본 복싱에 48년 만에 금메달(동메달 1개 포함)을 안겼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올 여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예기치 않은 파도가 몰려왔다. 도도부현 협회 임원 및 전 올림픽 국가대표 등 복싱계 333명이 모인 ‘일본 복싱을 재건하는 모임(333모임)’이 야마네 회장의 비위 행위 고발장을 작성, 일본올림픽위원회(JOC)에 전달한 것이다. 누구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일본 여러 매체 인터뷰에 응했으나 이상하리만큼 그의 해명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급기야 한 유명 방송프로그램 인터뷰 제안에 ‘생방송’을 역제안, 극적으로 성사됐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해명했는데, JOC와 일본 스포츠청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복싱연맹 제삼자위원회에서도 야마네 회장의 일부 지원금 부정 사용 등이 인정된다는 발표를 내놨다. 결국 지난 8월8일 야마네 회장은 수장직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생방송을 본 일본인 사이에선 ‘야마네 신드롬’이 일어났다. 그의 캐리커쳐를 입힌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렸고, 그를 다루는 방송프로그램 시청률은 고공행진을 했다. “난 목숨을 걸고 했다”, “부모 같은 마음으로 했다” 등 그가 한 말은 젊은이 사이에서 ‘어록’처럼 번졌다.

풍파를 겪은 뒤 최근 부산을 향하던 야마네 전 회장을 서울 한 호텔에서 만났다. 불명예 퇴진에도 일본인의 따뜻한 시선, 그에겐 모든 것을 포기하고자 한 순간 한 줄기 빛과 같았다고 한다. 당시 어떠한 말을 한 것일까. 그간 불거진 논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답을 들었다. 야마네 전 회장은 “이 사건은 교포 출신인 나를 수장직에서 끌어내려는 계획된 음모였다”며 “현 집행부를 장악한 세력이 오래 전부터 일본 내부 복싱계 주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나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올초 한 대학에서 폭행 사건이 발생했는데, 중앙연맹이 연루된 것처럼 꾸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 집행부 임원은) 내게 ‘사건을 해결할 사람은 자신들밖에 없다’면서 인사에도 개입하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중심이 돼 교포 출신 회장을 끌어내리려는 333모임이 결성됐다는 것이다.

일부 언급된 논란에 대해서 그는 “전국대회에서 특정 지역(나라현) 선수가 유리한 판정을 받았다며 내가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내가 나라현 출신 회장이기 때문”이라며 “여러 방송에서 내보낸 화면을 보면 나라현 선수가 링에서 불리한 장면만 모아두고 마치 판정 이익을 얻은 것처럼 여론을 왜곡했다”고 말했다. 지원금 부정 사용에 대해서는 “그 돈은 A선수를 지원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다만 나는 미래를 생각해서 그 선수에게 유망주 2명과 나눠서 사용할 것을 권했다”며 “A도 찬성했다. 그런데 나중에 그가 333모임과 어우러져 부당 사용으로 고발했다”고 했다. 지원금 쓰임 범위를 자신이 바꾼 것은 인정하나, 어디까지나 해당 선수와 협의를 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333모임이 이를 미끼로 ‘개인적 용도 사용’으로 부풀렸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그는 사비로 A에게 돌아가야 할 지원금을 모두 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50~60년전 ‘야쿠자’로 불리는 일본의 폭력단과 관계를 맺은 얘기를 부각하면서다. 만 10세 때 일본에 온 뒤 산전수전을 겪은 그는 “(20대 시절 야쿠자 측) 사람들과 어울렸던 건 사실”이라며 “다만 금세 그들과 멀어져 살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포츠청에서는 내가 과거 폭력단과 교류한 것만으로도 사임 사유가 된다더라”고 했다.

333모임과 스포츠청의 이같은 처사에도 일본 젊은 이들이 그에게 마음을 연 건 특정한 범죄 행위 없이 어둠의 공간에서 벗어나 복싱계에 오랜 기간 헌신한 점에서다. 그는 “일본에서는 교포 출신을 차별하는 문화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젊은 시절 한때의 잘못된 선택이 문제라면 내 책임이다. 벌을 달게 받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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