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 스포츠서울 칼럼니스트] 2005년 3월 17일 워싱턴 DC는 시끄러웠다. 미 하원에서 사상 초유의 메이저리그 선수들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금지약물 스테로이드의 만연으로 청소년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면서 의회까지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선 것이었다.

소환당한 선수는 약물복용 혐의자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 라파엘 팔메이로, 호세 칸세코(당시 은퇴), 커트 실링 등이었다. 칸세코는 MLB 선수들의 70% 이상이 약물을 복용한다고 폭로한 책을 출간한 주인공이었다. 청문회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장본인이나 다름 없다. 약물 혐의가 없는 실링은 약물 선수들을 신랄하게 비난해 실태를 털어 놓는 의회측 증언자였다. 청문회는 5시간 30분 동안 하원의원들의 집중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나 청문회를 마친 뒤 후폭풍은 거셌다. 전문성 부족한 질문을 던진 것은 물론 청문회를 마친 뒤 이들 MLB 슈퍼스타들과 기념촬영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선수들의 증언도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팔메이로는 선서까지 하고서도 의원들 앞에서 “자신은 한 번도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는데 얼마 후 거짓으로 들통났다. 맥과이어의 청문회 태도는 지금까지도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3년 후 상원에서 열린 스테로이드 청문회는 이런 전철을 밟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2005년 청문회가 시작되기 전 공화당 하원의원 짐 버닝(2011년 타계)은 “스포츠가 왜 하원 청문회까지 오게됐느냐”며 개탄했다. 메이저리그가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정치권까지 나선 것에 대한 실망의 질타였다. 투수 출신인 버닝은 MLB 명예의 전당 회원이기도 하다. 디트로이트, 필라델피아, 피츠버그, LA 다저스 등에서 17년을 활동한 버닝은 통산 224승184패 방어율 3.27을 기록했다. 은퇴 후 켄터키주에서 하원의원으로 6선했고 상원의원도 역임했다. 문무를 겸비한 정치인이다.

1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는 사실상 코미디에 가까웠다. 국회의원들이 나름대로 준비해서 선동열 감독에게 국가대표선수 선발 과정에 얽힌 의혹을 질문했지만 한마디로 난센스였다. 기록으로 대표팀을 선발하려면 대표팀 감독은 필요치 않다. 아무나 앉히면 된다. 애초에 대표팀 선발과정은 국정감사 깜냥도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야구팀 감독은 왜 ‘매니저’라 부르고 고 다른 종목은 감독을 ‘코치’라고 부르는지를 알아야 기록과 상관없이 대표팀에 발탁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야구는 필드에서 뛰는 선수보다 더그아웃에 있는 선수가 훨씬 많다. 이들을 관리하는 게 야구다. 다른 종목은 실력대로 뽑고 출전시키면 된다. 관리 부문이 야구보다 덜하다.

대한민국에서 스포츠는 이슈가 있을 때만 등장하는 분야다. 문화가 아니다. 반면 미국은 어렸을 때부터 운동이 몸에 배어 있다. 학창 시절 운동을 하지 않고서는 리더가 될 수 없다. 최근의 예만 들어도 국내에서도 좋아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옥시덴칼 칼리지 농구팀 멤버였다. 아들 조지 부시는 유일한 리틀리그 선수 출신 대통령이다.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은 풋볼(미식축구) 명문 미시건 대학의 타이트 엔드 출신이다. 프로 NFL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와 그린베이 패커스의 영입을 거절하고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했다. 예일대에서 풋볼 팀 코치를 지내기도 했다.

한국의 정재계 리더 가운데 학창 시절 선수처럼 비지땀을 흘리면서 운동을 해본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그들은 스포츠인의 고충을 모른다. 스포츠는 희생정신, 협동심, 리더십을 터득하는 과정이다. 미국 사회는 기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메이저리거, NBA, NHL, NFL 선수들에 대해 존경심으로 출발한다. 그곳에 도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동열 감독을 증인으로 채택한 국회의원은 디자인 전문가로 알려졌다. 그 국회의원에게 섣부른 지식으로 디자인과 관련된 질문을 한다면 당사자는 어떻게 대응할까. 선 감독의 심정이 그랬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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