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완
KIA 나지완이 16일 광주 SK전에서 9회말 극적인 동점 2점 홈런을 쏘아 올린 뒤 특유의 세리머니로 기쁨을 표하고 있다. 사진제공 | KIA 타이거즈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KIA가 중대 기로에 섰다. KBO리그 정규시즌을 5위로라도 마쳐 와일드카드결정전 진출을 이뤄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디펜딩챔피언이 가을잔치의 방관자가 되는 치욕을 맛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선수단 전체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일궈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높은만큼 코칭스태프도 이름값에 연연하지 않고 그라운드 위에서 드러나는 기세를 냉철하게 살펴야 한다.

KIA는 17일 현재 4위 넥센과 4경기 차로 뒤진 6위에 머물고 있다. 이대로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될 경우 KIA는 2010년 이후 8년 만에 가을잔치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팀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더 굴욕적인 사실은 2009년 통합우승의 위업을 이루고도 이듬해 5위에 그쳐 포스트시즌 탈락을 맛본 팀 역시 KIA라는 점이다. 2경기 차로 앞선 5위 LG와 가까스로 순위를 맞바꿔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르더라도 8년 전 순위와 다를 바가 없다. KIA에 앞서 포스트시즌에 탈락한 디펜딩챔피언은 2005년의 현대 유니콘스다. 당시는 현대가 모그룹 재정 악화로 급격히 내리막을 걷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2010년과 올시즌의 KIA는 탄탄한 모기업의 지원을 등에 업었고 우승후보로 손꼽히는 전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자칫 ‘우승 이듬해 곤두박질’이 구단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될 우려도 있다.

[포토] KIA 문경찬, 쓰라린...역전 홈런...
KIA 문경찬이 21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진행된 SK와의 퓨처스리그 2차 서머리그 경기에서 6-5로 앞선 7회 다섯번째 투수로 등판해 최승준에게 역전 스리런 홈런을 허용하며 씁쓸한 모습을 보이고있다.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지금이라도 디펜딩챔피언의 위용을 고스란히 발휘한다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그려보면 넥센보다 8경기, LG보다 7경기를 덜치른 게 유리한 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경쟁 상대는 경기를 치러 놓고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데 KIA는 시즌 끝까지 매 경기 사활을 걸면 된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자력으로 4위를 탈환하는게 쉽지 않다. 때문에 KIA 김기태 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태프는 더욱 냉정한 시각으로 경기를 운영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IA는 여전히 이름값에 연연하는 선수단 운용으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16일 SK와의 홈경기가 단적인 예다. 9회초 2사 후 무서운 기세로 아웃카운트를 잡아나가던 문경찬 대신 윤석민을 마운드에 올렸다. 4-4 동점 상황이었고 일발장타가 있는 로맥의 힘을 고려하면 제구가 좋은 윤석민이 더 믿음직스럽다. 지난 12일 마산 NC전에서 9회말 당한 뼈아픈 역전패 아쉬움을 단시간에 털어낼 기회이기도 했다. 물론 ‘건강한 윤석민’이라는 전제가 따라 붙는다. 어깨 수술후 재활시즌을 치르고 있는 윤석민은 나흘 만의 등판에서 첫 타자 로맥을 볼넷으로 내보낸 뒤 한동민과 이재원에게 연속 장타를 맞고 마운드에서 물러났다. 나지완의 끝내기 안타로 힘겹게 승리를 거뒀지만 KIA는 벤치의 실책으로 성장 중인 젊은피와 재기를 노리는 베테랑을 동시에 잃었다.

[포토]KIA 윤석민, 승리를 지켜내지 못하다니!
KIA 윤석민이 8일 고척돔에서 열린 넥센전 8회 등판해 투구하고 있다.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어린 투수는 박빙 승부에서 상대 중심타선을 깔끔하게 막아내면 엄청난 자신감을 갖는다. 자기 공을 믿고 던지는 힘이 생긴다. 그러나 문경찬은 이날 강판으로 ‘잘 던져도 선배들에게 밀리는 투수’라는 인식을 갖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윤석민은 2연속경기 구원 실패로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만 더 키웠다. 수술 후 재활시즌을 치르는 선수는 한 두 경기 안좋은 결과를 내면 심리적으로 더 큰 충격을 받기 마련이다.

평시라면 경기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베테랑들이 제 역할을 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있다. 승부처에서 베테랑들의 활약이 절실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올시즌 KIA 베테랑들은 희망보다 실망을 더 많이 전했다. 게다가 지금의 KIA는 매 경기 결승전 모드다. 이날 생애 첫 5안타(2홈런)에 끝내기 안타까지 때려낸 나지완처럼 소위 ‘단기전에 미치는 선수’가 매경기 나타나야 목표에 근접할 수 있다. ‘미치는 선수’의 기운을 읽는 냉철한 직관은 코칭스태프의 섬세함에서 나온다.

단기전의 귀재로 불리는 베테랑 감독들은 “때로는 선수 등 뒤의 이름을 지우고 경기를 보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마운드 위에서 풍기는 기백이 상대 타자를 압도한다면 고졸 신인투수라도 그대로 밀고가는 게 좋다. 어차피 감독은 책임지는 자리라 패하면 비난을 받기 마련이지만 그 속에서 투수 한 명이 성장한다. 투수 한 명 키우는게 쉽지 않은 현실에 이런 기회를 등 뒤의 이름 때문에 날려버리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고 입을 모은다. 불명예 탈출을 노리는 KIA가 한 번은 곱씹어볼 부분이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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