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글‧사진 이용수기자] 한국 탁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전설을 꼽으라면 빼놓을 수 없는 이가 바로 유남규(50·삼성생명여자탁구단 감독)다. 유남규 감독은 탁구가 공식 종목으로 채택된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초대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모두 그가 흘린 땀방울 덕분이었다.


한국 탁구계에 다시 탄생하기 힘들 정도의 재능과 노력을 보여준 유 감독은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유승민이 재차 금메달을 목에 걸기 전까지 16년간 한국 탁구를 대표했다. 선수와 지도자로서 세계 무대를 제패한 그는 이제 한반도에 '탁구붐'을 일으키기 위해 준비 중이다.


딸 예린(10·수원 청명초4) 역시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탁구 유망주로 쑥쑥 자라고 있다. 유 감독은 딸의 미래를 위해 두팔 걷어붙이고 한국 탁구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지난 14일 개막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남녀 탁구는 오는 26일부터 치열한 경쟁에 오른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남녀 탁구는 메달권을 바라보고 준비하고 있다. 유 감독이 바라본 이번 대회 한국 탁구의 성적, 그리고 그의 탁구 인생은 어떤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스스로와 약속 지킨 지독한 노력형 천재, 유남규


'장성(장수가 될 인물)'의 사주를 가지고 태어난 유남규 감독은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부모님의 바람과 달리 그가 관심을 가지고 즐긴 건 운동이었다. 유 감독은 어릴 때부터 축구, 태권도, 권투 등 다양한 운동을 즐겼다. 타고난 운동 신경은 전문가의 눈에 띌 정도였다. 동료들보다 1년 늦은 초등학교 4학년에 탁구를 시작했는데도 월등한 실력을 보여줬다. 왼손잡이가 귀한 탁구계에서 그는 지도자들이 탐내는 인재였다.


재능보다 빛난 건 타고난 끈기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목욕탕에서 우연히 복싱 세계타이틀전을 치르던 박찬희의 모습을 본 그는 어린 나이부터 태극 마크의 꿈을 키웠다. 유 감독은 "그 때 목표가 처음 생긴 거다. 국가대표가 돼서 금메달을 따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회상했다.


목표를 세운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 곳만 보고 달렸다. 유 감독은 "5학년 말부터 1년간 새벽 6시부터 1시간씩 운동하자고 내 자신과 약속했다. 그렇게 1년간 하면 국가대표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며 "당시에는 하루라도 빼 먹으면 안 이뤄지는 줄 알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했다"고 설명했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후배까지 동원해 결국 1년간의 새벽운동을 마쳤다. 6학년 때는 힘든 운동 탓에 동료 20명이 운동을 그만두기도 했지만 홀로 꿋꿋이 남았다.


하지만 부모님과의 약속이 발목을 잡았다. 탁구를 시작할 당시 초등학교까지만 운동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결국 중학교에 진학하며 6개월간 운동을 쉬었지만, 중학교 탁구부 지도자들의 간곡한 요청과 못다 이룬 꿈이 그를 다시 탁구대 앞에 세웠다. 노력형 천재인 그는 부산 용두산 공원에 혼자 올라가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며 복귀를 준비했다.


그리고 운동에 복귀한 뒤 참가한 첫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유 감독은 "당시 그 짜릿함은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독해서 갖고 싶으면 가져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힘든 운동을) 전부 이겨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력, 연구, 멘털 있었기에 한국 탁구 전설 유남규가 탄생했다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운동하는 법 그리고 1등하는 법을 터득한 유남규 감독은 승승장구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최연소 태극마크를 달았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첫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그의 태극마크 데뷔전은 선수로서 부담감이 큰 남북대결이었다. 1980년대 당시 남북대결은 목숨 걸고 뛰어야할 정도로 너나 할 것 없이 기피하는 경기였다.


당시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만난 북한팀에 자신있게 나설 선수는 유남규 뿐이었다. 어린시절부터 스스로 갈고 닦은 실력과 노력에 자신이 있었다. 유 감독은 "미팅에서 아무도 나가겠다고 하질 않더라. 그래서 내가 자신 있게 손 들어서 나간 것"이라며 "그런데 막상 시합장에 들어서니 엄청 긴장되더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결국 유 감독은 3점을 내주며 3-5로 북한에 패했다. 큰 경험을 한 그는 한 단계 성장했다. 유 감독은 "그 때는 자신감이라고 생각했는데 자만이었다. 나를 점검할 수 있었다"며 "반성하고 연구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모래주머니를 차고 야간 운동을 하는 등 고삐를 더 죄었다"고 말했다.


노력과 연구를 몸으로 터득한 유남규 감독은 해외 리그를 경험하며 정신적으로도 성장했다. 1986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대한탁구협회는 그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넓은 세계 무대에서 경험을 쌓게 했다. 당시 그는 스웨덴 리그에서 임대 선수로 1년간 여러 팀을 전전하며 산전수전을 겪었다. 유 감독은 "당시 한국 교민도 별로 없는 곳에서 혼자 이겨내는 법도 배우고 떨어진 햄버거도 주어먹어 봤다"며 "그 때 힘든 과정을 겪었기에 내가 (정신적으로)강해졌다"고 회상했다.



거친 경험을 하고 돌아온 유남규 감독은 1986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결국 일을 냈다. 남자탁구 단식 8강전에서 당시 세계챔피언이었던 중국의 장자량을 무너뜨린데 이어, 결승에서도 중국의 후이준을 3-0으로 가볍게 눌렀다. 유 감독은 당시 단식과 단체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유 감독은 "북한과 할 때는 준비 안 된 자신감이었지만 중국과 할 때는 준비된 자신감이었다. 바둑처럼 복기를 계속했다"며 "상대를 완벽하게 분석한 뒤에 시합장에 들어갔기에 자신 있었다"고 기억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는 경기 직전 그동안 준비한 상대 분석 노트를 화장실에서 홀로 보고 들어가며 경기 직전 자신을 정비했다.


88 서울올림픽은 유남규 감독에게 더 큰 부담이었다. 홈에서 열린 탓에 86년 큰 성과를 이룬 그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하지만 유 감독은 이 모든 걸 이겨냈다. 그는 "당시 부담을 이겨내는 건 두 가지 방법 밖에 없었다"며 "연습량을 늘려서 불안함을 떨치고 멘털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유 감독은 올림픽을 준비하는 600일간 매일 자기 전 금메달을 목에 거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계속했다. 경기 당일까지 꾸준히 자신감을 키운 그는 목표를 달성했다. 유 감독은 "내가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건 노력, 연구, 멘털이 준비됐기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아버지 닮아 기대되는 딸 유예린


지난 4월 제44회 회장기 전국초등학교탁구대회 여자 4학년 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한 유예린은 유남규 감독의 딸이다. 아버지의 타고난 재능을 물려받은 유예린은 또래보다 늦은 나이에 운동을 시작했지만 아버지 못지 않은 재능으로 기대감을 심어주고 있다. 유 감독은 "어릴 때부터 운동신경이 타고났다. 5~6세 때 체육대회에서 달리기를 하면 기본적으로 반 바퀴씩 차이가 났다"면서 "축구, 스키, 피겨 등에서도 재능을 보였다"고 말했다. 대개 5~6세에 탁구를 시작하지만 유예린은 또래보다 3년 늦은 나이에 시작했다. 그럼에도 빠른 기술 습듭력과 운동 신경, 체력 등으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운동스타 2세가 그렇듯 주변의 시선이 몰리기 마련이다. 기대와 격려는 오히려 2세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해 스트레스의 요인이 된다. 하지만 이 또한 2세들이 뛰어 넘어야할 산이다. 유 감독은 "짧은 기간 안에 좋은 성과를 보이니까 주변에서 기대가 크다. 그러다 보니 딸에게 스트레스가 된 모양이다"라며 "어느 날에는 자다 일어나서 '아빠 나 1등 못하면 어때?'라고 그러더라. 마음이 굉장히 아팠다. 나는 그럴 때마다 '괜찮다'며 심리적 안정을 주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유 감독은 딸이 탁구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경기 전에는 기술 조언을 하지 않는다. '예린아, 아빠가 뭐랬지? 웃으면서 상대방 한 번 속여봐'라며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멘털적으로 이겨내는 부분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말했다.


딸의 멘토가 된 아버지 덕분에 유예린은 성숙해졌다. 유 감독은 "올해는 차분해졌다. SBS '영재발굴단' 출연이 도움된 것 같다"며 "올해 침착하게 1등하는 것을 보고 '더 빠르게 성장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귀띔했다.



◇지도자로서도 금메달 목에 건 유남규 감독


지도자로서도 발군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1999년 선수 은퇴 후 2000년부터 제주 삼다수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해 신생팀이었던 구단을 지난 2005년 전국대회 4관왕에 올려놓았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한국 남자탁구대표팀을 이끌고 남자 복식 금메달을 따냈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16년만에 남자단식 금메달을 따낸 유승민을 올림픽 전까지 지도하기도 했다. '스타플레이어는 지도자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편견을 깨고 싶어 이뤄낸 성과였다.


수년간 남자 탁구 국가대표 지도자로 활약한 그는 현재 삼성생명여자탁구단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내가 남자 팀을 맡다가 여자 팀을 맡은지 2년 밖에 되지 않았다. 여자 선수 육성 시스템을 돌아보니 뿌리부터 잘 갖춰지지 않았더라. 지금부터 이를 잘 다지고 고치려고 한다"고 밝혔다. 선수와 지도자로서 한국 탁구에 큰 획을 그은 유 감독은 또다른 목표를 갖고 있다. 오래 전부터 꿈꿔온 탁구의 프로화다.



◇AG 성적 좋아야 탁구 프로화도 이뤄진다
한국 탁구가 프로스포츠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는 몇 차례 있었지만 모두 탁구계 내부적인 문제로 무산됐다. 하지만 얼마 전 2020년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유치한 만큼 한국 탁구의 백년대계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진행되는 시범경기는 프로 출범의 발판이다. 2008년부터 조양호 대한탁구협회장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꿈나무를 키워내고 성장의 밑거름을 준비한 탁구계는 이번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한 단계 도약할 계획이다.


유남규 감독은 "이제는 관중없는 스포츠,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스포츠는 생존하기 힘들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올리면 전국의 100만 탁구 생활체육인이 함께하는 '탁구붐'이 일어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이번에 스타플레이어가 한 명 나와야 한다"고 덧붙이며 이번 대회 성적에 자신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에이스 1~2명이 빠졌고, 일본도 에이스가 다 빠졌다. 남자 대표팀은 결승전까지는 무난할 것으로 생각된다. 여자도 중국만 피하면 괜찮다. 일본도 에이스가 나오지 않으니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분석했다.


끝으로 유 감독은 이번 대회 예상 성적과 관련 "남자 대표팀은 금메달도 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여자 대표팀 또한 충분히 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pur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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