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선발출장 제외된 조현우와 손흥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E조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경기가 17일 인도네시아 반둥 시 자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렸다.선수들이 경기 전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2018. 8. 17.반둥(인도네시아)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반둥=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로테이션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하면 독이 된다.

김학범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 감독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로테이션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경기 일정이 타이트하고 실전 없이 인도네시아에 입성하기 때문에 조별리그에서 다양한 선수들을 활용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납득할 수 있는 판단이었다. 한국은 손흥민을 비롯한 유럽파 선수들이 늦게 합류하고, 당초 예정되어 있던 이라크와의 경기가 취소되면서 공식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그나마 수월한 조에 편성돼 조별리그 3경기서 다양한 선수, 전술을 실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김 감독은 17일 인도네시아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말레이시아와의 조별리그 E조 2차전 과감한 로테이션을 실시했다. 지난 1차전과 비교하면 베스트11 총 6명을 바꾸는 작전이었다. 나상호 대신 황희찬이 선발 출전했고, 허리 조합은 장윤호-이승모-황인범에서 김건웅-김정민-이진현으로 변화를 줬다. 오른쪽 윙백으로는 김문환 대신 이시영이 나섰다. 3백 구성은 황현수-김민재-조유민 그대로 갔으나 골대는 조현우가 아닌 송범근에게 맡겼다.

선발 라인업 절반 이상을 교체한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한국은 초반부터 조직력이 크게 흔들렸고, 전반에만 2골을 허용하며 순식간에 무너졌다. 축구에서는 ‘척추’가 중요하다. 최전방 공격수와 중앙 미드필더, 센터백, 골키퍼로 이어지는 중앙 라인을 의미한다. 조직이 갖춰지려면 척추가 튼튼해야 한다. 뼈가 건강하지 않으면 제대로 서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최전방에서 황의조가 버틴 것은 동일했지만 경기를 풀어가는 중앙 허리 라인이 모두 바뀐 것은 치명타였다. 황인범 없는 중원은 부정확하고 창조적이지 못했다. 선발로 나선 미드필더들은 패스 미스를 남발했다. 상대에게 역습을 허용하는 실수가 자주 나왔다. 그나마 후반 황인범을 투입해 상황을 타계하려는 김 감독의 선택은 합리적이었으나 흐름이 이미 넘어간 후였다. 장윤호처럼 부지런한 미드필더가 없어 3백이 상대 공격수와 바로 싸우는 상황도 자주 나왔다. 수비형 미드필더 김건웅이 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김 감독은 실점 장면에 대해 “앞에서 미리 커버해주지 못한 게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개인적인 실수를 차치해도 센터백이 발 빠른 윙어와 1대1로 직면하는 것은 조직에 문제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골키퍼 로테이션은 가장 치명적인 선택이 됐다. 1차전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조현우 대신 송범근을 투입했으나, 그는 한 번의 완벽한 실수와 또 한 번의 어설픈 플레이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로테이션을 해도 16강 진출을 확정한 후 3차전에서 하면 됐을 텐데, 너무 서둘렀다. 김 감독도 “제 판단 미스”라고 인정한 부분이다.

이렇게 된 이상 3차전부터는 최소한의 로테이션으로 최정예 팀을 꾸려야 한다. 말레이시아에 패한 상황에서 키르키스스탄에게 다시 한 번 당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로테이션도 좋지만 일단은 승리하는 게 먼저다. 팀을 지탱하는 척추에 계속해서 변화를 주면 또 어려움에 빠질지도 모른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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