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박준범 인턴기자] 현역 15시즌 동안 손민한(43)은 1743.1이닝을 소화하며 7258명의 타자를 상대했다. 그는 숱한 상황과 다양한 타자들을 특유의 완급조절과 칼날 제구력으로 요리했다. 그의 야구인생 역시 여러 부침이 있었지만 '불혹'까지 마운드에 오르며 롱런했다.


부산고-고려대학교를 졸업한 손민한은 199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에 지명받았다. 구단도 팬들도 손민한에게 많은 기대를 했지만, 프로 무대의 출발은 순조롭지 않았다. 데뷔전에서 손민한은 끝내기 폭투를 기록하며 패전의 멍에를 썼고, 이후 3년간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3년의 부침을 겪은 손민한은 2000년 비로소 제 모습을 찾았다. 12승 7패 평균자책점 3.20을 기록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그리고 다음해 15승으로 다승왕 타이틀을 거머쥐며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2005년에는 18승을 거두며 다승왕, 평균 자책점 1위 그리고 정규시즌 MVP에 올랐다. KBO 출범 이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팀에서 MVP를 수상한 건 손민한이 최초였다. 2006년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orld Baseball Classic)에서는 당시 메이저리그(ML) 최고 타자 알렉스 로드리게스(약칭 A-로드)를 3구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마에삼(마! 에이 로드, 삼진 잡아봤나)'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는 암흑기 롯데의 한 줄기 빛이었다. 팀의 부진에도 2005년부터 4시즌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올렸다. 이런 그에게 팬들은 '민한 신(信)'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하지만 롯데와 이별은 그리 좋지 않았다. 2008년 롯데와 자유 계약(FA)을 체결한 그는 2009년 14경기에 출전해 6승 5패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손민한은 같은 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했지만 마운드에 서 보지 못하고 어깨 관절경 수술을 받았다. 그의 재활은 순조롭지 못했고 2010~2011년에는 한 차례도 경기에 나서지 못한 채 결국 방출됐다.


손민한에게 아픔은 또 있었다. 그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제6대 선수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하지만 그가 회장을 맡을 당시 비리 사건이 대두되면서 연루설과 책임론이 불거졌다. 손민한은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그를 향한 비난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제7대 회장인 박재홍(現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 자신의 은퇴 기자회견에 손민한을 불러 사과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고, 손민한은 제8대 회장 선출 임시 총회장을 찾아 재차 사과의 뜻을 전하며 그에 대한 논란은 잦아들었다.


그렇게 그는 현역 생활 연장 의지를 밝혔고 2013년 4월 NC 다이노스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해 6월 5일 마산 SK전, 1378일 만에 1군 경기 복귀 마운드에 발을 디뎠다. 상대 투수는 SK의 에이스 김광현이었지만 손민한은 5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1407일 만에 승리투수가 됐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복귀 후 6월 한 달 동안 4경기에 선발 등판해 3승을 챙기며 노장의 건재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2014년 시즌 도중 불펜으로 전환해 마무리 투수로도 뛴 손민한은 2015년 선발투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그는 당당히 선발의 한 축을 담당했다. 11승을 거두며 7년 만의 10승과 동시에 리그 역대 최고령 10승을 기록하는 겹경사를 누렸다. 여기에 40세 3개월 3일의 나이로 최고령 선발 3위에 이름을 올렸고, 감독 추천 선수로 올스타전에 출전하는 기쁨을 맛봤다. 뿐만 아니라 포스트시즌 두산과의 3차전에 등판해 5이닝 3피안타 2실점(1자책)으로 포스트시즌 통산 최고령 선발 승리 투수가 됐다. NC의 이재학, 이민호 등 젊은 투수들은 더그아웃에서 손민한 옆에 앉아 그의 모습에서 하나라도 배우려 노력할 정도로 그는 본보기였다.


그렇게 손민한은 눈부셨던 2015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고, NC는 2016년 7월 6일 홈구장인 창원마산구장에서 박명환, 이혜천과 함께 은퇴식을 거행하며 그와의 아름다운 이별을 고했다. 은퇴 후 손민한은 NC와 연고 지역에 있는 유소년 야구팀 순회 코칭 프로그램인 '손민한과 놀자'를 진행 중이다.


손민한은 강속구를 뿌리는 투수는 아니었지만 뛰어난 제구력과 특유의 완급조절로 타자들을 상대했다. 그가 선수협 문제 이후 NC에서 복귀 절차를 밟을 때도 기대보다 우려가 컸다. 하지만 그는 모든 우려를 불식시키고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라는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했다. 그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팬들에게 '민한 신'으로 기억될 것이다.


beom2@sportsseoul.com


사진 l 스포츠서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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